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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섬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속임수의 섬 - 히가시가와 도쿠야, 북다, 2024

by 헌이

유명한 출판사 회장의 사망했다. 가족과 친척들은 유산 분배에 관한 유언장을 열기 위해 비탈섬에 위치한 기묘한 모양의 저택, 화강장에 모인다. 유언장을 읽고 유산을 나눈 밤, 아무것도 없어야 할 저택 중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두막과 빨간 얼굴의 도깨비가 나타나고, 한 남자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사망한다.



<속임수의 섬>은 유머 미스터리 장르의 선두주자인 일본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데뷔 20주년작이다. 거액의 유산, 태풍으로 고립된 섬, 뭔가 어긋난 듯한 가족들, 의문의 죽음 등 추리소설로서의 설정은 완벽하다.



그러나 이른바 ‘유머’는 끝내 적응하기 어렵다. 환갑을 바라보는 작가의 나이를 감안하면, 2024년 현재의 유머 코드와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유머를 구사하는 인물들도 크게 매력적이지 않으며, 탐정과 조수로 나오는 남녀 인물이 주고받는 농담도 별로 재미있지 않다. 이 부분은 확실히 취향이 걸릴 것 같다.



트릭도 아쉽다.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탓일까, 아니면 책 뒤표지의 문구 - “범인은 이 책을 읽는 당신이다. 네 말이야, 바로 너!” - 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섬이라는 거대한 밀실을 다소 애매하게 활용한 듯한 인상이 강하다.



책을 끝까지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모든 사건에 당위성이 부여된다. 무엇보다 화강장의 비밀을 알고 나면, 출판사 회장의 집착이랄까, 한 사람을 위한 애도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야기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기묘한 화강장에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니, 새삼스럽게 감동적이다.



가볍고 산뜻한 느낌의 추리/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다면 제격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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