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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L Jan 04. 2022

<사피엔스> 인간의 역사에 대한 거대한 서사

책 제목: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사: 김영사

출간일: 2015년 11월 23일

분야: 인문

가격: 22,000원

페이지 수: 636쪽








미리 보는 장단점

장점: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담론. 최소 130권 이상의 책을 녹여내 설득력을 가미했다.

단점: 인지혁명에서 시작해 농업혁명 초반까지 이어지는 유인원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작년 한 해 가장 읽기 힘들었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600쪽이 넘는 거대한 책을 꼽을 것이다. 책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그건 또 아니다. 책 초반부에 나온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하는 등의 메시지는 정말 흥미로웠고, 초기 인류를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로 표현한 첫 단원의 제목도 매력적이었다. 아마도 취향 문제가 아닐까. 그냥 별 생각 없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집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고 후반부로 갈수록 책 읽기가 숙제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15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나타난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종교나 신화와 같은 집단 의식이 발생하는 과정(인지혁명)에서부터 시작해, 흔히 인류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는 오해(?)를 받는 농업혁명, 그리고 현대 문화를 이룩한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다루고, 끝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와 종말에 대한 제언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2장인 농업혁명 파트였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한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_124쪽
요즘 우리는 풍요와 안전을 누리고 있고 그 풍요와 안전은 농업혁명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농업혁명이 놀라운 개선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_126쪽




나는 여기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실제로 저자는 『총, 균, 쇠』를 많이 인용한다. 농업혁명 이전에는 더 여유롭고 풍요한 삶을 즐기던 인류가, 농업혁명 이후 좁은 지역에서 제한된 종류의 곡식에 의존하며 영양실조로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농협혁명은 덫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소수 권력자의 편안함을 위해 절대 다수의 인간들이 농사에 매진하며 하락된 삶의 질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은 저해되었고 망가졌지만, 어쨌든 농경은 시간의 확장을 가져왔다. 시간의 확장으로 인간은 사유의 시간을 누리게 되었고, 정치사회가 형성되었고, 축적된 잉여재산을 관리(혹은 독점)할 엘리트들이 양산되었다. 이후 인류 결속을 위한 신화가 탄생했으며 세계는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나온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 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 3. 상상의 질서는 상호주관적이다. (...)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을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 책 또한 완전무결한 이론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주장에 대한 반론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인류의 역사 자체를 다룬 '해석'이기에 그냥 저자의 말대로 '거대한 질문'을 제기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편하게 읽어나가면 된다. 사실 알맹이만 보면 인문학 책 같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철저히 과학적이었다. 이미 갖고 있는 공통된 오해 혹은 편견이 팽배한 상황에서 유발 하라리의 글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종을 바라보는 그의 새로운 시각이 매우 흥미롭기 때문은 아닐까.


인류 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내려간 문명의 항해기가 마무리될 무렵, 모든 학문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결국 저자도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관련 분야를 많이 읽었다면 저자의 결론이 뻔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은 과연 수렵채집인의 삶보다 더 행복한가?' 하는 그의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초인적 힘과 무한한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더 풍요로워졌는가? 글쎄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2611847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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