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보고 눈물이 흐릅니다
늙은 아버지의 어린 성적표
아버지 장롱 속
늙은 가죽 가방 안에서 발굴한
해방 후 공립국민학교 통지표
국어 90
사회생활 100
이과(理科) 100
산수 95
보건 80
학교까지 꼬박 1시간을 걸어가야 했지
비 오면 책가방 가슴에 꼭 안고 그 비를 다 맞아야 했어
오전 내내 덜덜 떨면서 공부하다 보면 점심때쯤에야 옷이 말라
부잣집 친구 숙제 대신해주고 공책 몇 장씩 얻어 썼지
먹을 게 없어 배고프고
배움에 배고프고 그랬지
아버지가 전해주던 옛날이야기
스쳐가듯 들었던 그 역사
누런 종이에
흐린 글씨로
선명히 새겨져 있다
‘각과 성적 우수하나 신체가 약하오니 가정에서 영양에 유의하시기 바람’
아버지는 1000만 영화 ‘국제시장’(황정민 김윤진 주연)과 비슷한 시대를 사셨다. 대한민국이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을 지나오셨다.
아버지는 ‘가난에 배고프고, 공부에 배고팠던 그 시절’을 종종 들려주곤 하신다. 식구는 많은데 먹을 게 없었고, 신문배달부터 구두닦이까지 안 해본 일이 없고, 공부는 잘했는데 공부할 공책이 없었고, 걸어서 1시간 걸리는 등굣길에 비나 눈을 맞으면 오전 수업 내내 추워서 벌벌 떨어야 했다 등등.
“이 가방 안에 내 역사가 들어있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장롱 안의 낡은 가방 하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다. 몇 달 전 어느 휴일 문득 그 가방 안이 궁금해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았다.
80년 넘게 살아오신 삶의 궤적을 연도별로 적어놓은 메모, 관심 가는 내용을 잘라 모아놓은 빛바랜 신문기사들, 사회생활 하시면서 받은 각종 표창과 증명서 등이 있었다. 그중 70여 년 전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성적표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각과 성적 우수하나 신체가 약하오니 가정에서 영양에 유의하시기 바람’. 한 담임선생님이 가정 통신란에 적은, 이 문구가 내 가슴에 박혔다. 집이 가난하고 먹을 게 부족해 신체가 약한 건데 어떻게 영양에 유의할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했던, 내 아버지(할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느냐’며 요즘도,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 생각날 때마다 눈물을 훔치곤 하신다.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은, 아버지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보는 내내 무심코 스쳐 들었던 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영화의 장면들처럼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장대비를 흠뻑 맞고 교실에서 덜덜 떨고 있는 ‘꼬마 시절의 아버지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꼬마를 지켜보는 중년의 아들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