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엄마의 불감증

"엄마만 하다 보니 내 자신이 사라졌나 봐"

by Newfifty

엄마의 불감증


엄마

이젠 엄마 건강만 챙기세요


요즘 얼굴빛 어두운 늦둥이 막내가 제일 걱정이다

니들 아버지도 하루하루 달라 내년이면 팔십다섯이야

열한 명 손자손녀의 건강을 매일 기도한다


엄마

엄마가 행복해야 우리 마음도 편해요


네가 지난번에도 행복했던 순간만 떠올리라 했잖아

그런데 속상하게 생각이 잘 안나

너희 오남매 키우면서 정신없었던 장면들만 기억나

아쉽고 서럽고 힘들고 속상했던 감정이 자꾸 올라와


엄마

엄마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이기적(利己的)으로 사셔야 돼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엄마만 하다가 내가 사라졌나 봐


엄마 사랑해


그래 고마워



내 어머니는 남편의 건강과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안에 중·고교생이 4명이나 되던 시절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7개를 싸야 하기도 했다. 학교급식은 없고, 중3 교실이나 고교에선 야간자율학습이 ‘강제’되던 때였다.


낳고 키운 오남매가 어른이 되고 가정도 일궈 손자손녀가 11명인 할머니가 되셨지만 내 어머니는 여전히 ‘그 옛날의 엄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신다. 자식 걱정, 손자손녀 걱정을 안고 사신다.


자식들에게 충분히 주셨기에 이제는 받기만 하며 사셔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신다. 온갖 풍파 다 이겨내셨으니 좋은 것만 드시고 좋은 것만 떠올리며 사셔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신다. 자식들이, 손자손녀들이 ‘자기 몸과 마음만 생각하시며 이기적으로 사셔야 한다’고 부탁하고 애원해도 그러지 못하신다.


요즘 TV에 보면 ‘엄마가 행복해야 자식도 행복하다’는 논리로 당당하게 자식들에게 ‘이거 사 달라. 저거 해 달라’는 엄마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신다.


행복도 연습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평생 남편 건강 챙기고 자식들의 성공을 기원하고 그걸 통해서만 기쁨과 행복을 느껴온 팔순 어머니에게 ‘이제라도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시라’는 주문은 어머니 처지에선 억울하고 가혹한 것 아닐까 싶다.


‘엄마만 하다가 나를 잃어버린’, 늙은 엄마의 행복 찾기. 그건 그의 숙제가 아니라, 자식인 나의 보답하기 프로젝트이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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