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른’이 돼야 했던 큰딸들에게
조그만 큰 딸
백오십 조금 넘는 키
크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지만
나는야 큰 딸
둘째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큰 애가 그러면 안 되지
엄마
나 이제야 네 살이에요
엄마 등에 셋째
엄마 손에 둘째
그 행렬 제일 앞엔
언제나 큰 딸
혼날 땐 제일 먼저
먹을 땐 양보 먼저
엄마 젊었을 땐
동생들의 엄마
엄마 늙고 병든 뒤엔
엄마의 엄마
넓디넓은 그늘 만든
우리의 조그만 큰 딸
내 주변의 큰딸들(아내와 큰딸, 큰누님, 큰조카 등)은 모두 자신의 여동생보다 키나 체구가 작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 큰 걸까? 못 큰 걸까?
왜 큰아들(장남)은 집안의 기둥이란 이유로 ‘특혜와 특권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큰딸은 살림밑천이라고 표현되며 양보와 희생의 아이콘으로 그려질까. 그래서 키나 체구까지 동생에게 양보한 걸까?
우리 부부는 반듯한 성인으로 자라준 큰딸에게 요즘도 문득문득 미안할 때가 있다. 동생이 울고 보채면 큰딸이라도 얌전하고 의젓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다 보니 큰딸은 조금만 잘못해도 더 크게 혼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큰딸도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다는 자책이 뒤늦게 밀려든다.
엊그제도 직장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사는 큰딸과 통화하며 옛날 얘기를 나누다가 사과했다.
“엄마아빠가 지치고 힘들다고, 어린 너에게 ‘어른’처럼 행동해주길 기대했던, 그때의 엄마아빠가 후회돼. 미안해.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게. 사랑한다.”
우리 큰딸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큰딸들에게 더 큰 행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