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늙어가는 가장의 신음

집안의 기둥이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by Newfifty

어느 늙어가는 가장(家長)의 신음


무서운 아버지는

늘 날 울려놓고

남자는 우는 거 아니다 하셨다


잘못 했어요 눈물 쏟을 때

뭘 잘 했다고 우느냐 하셨다

못해서 우는 건데

혼나서 우는 건데

아버지의 엄한 문법은 대입시험보다 어려웠다


아버지에게서 살아있는 눈물을 보지 못한 채

나도 아버지가 되어갔다

나란 아버지는

아버지와 달랐다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또 울었다


함께해온 아내에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나 힘들어

말할 여백이 없어

울고 또 울었다


아빠 힘내세요

여보 아직 젊어요

따뜻한 응원이

등짝을 때리는 뜨거운 채찍처럼 아팠다


갈고 또 갈다가

언젠가 멈춰 설 그 곳에

누가 함께 있을까


아무도 없을 것 같아

울고 또 울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만든, 그 옛날의 누군가를 책망하게 된다. 왜 울면 안 되는데?

울고 싶을 때 울지 않으면 병(病)이 된다. 그래서 난 TV 보다가도 울고, 책 읽다가도 울고, 유튜브 보다가도 운다. 아내나 아이들의 따뜻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다가도 울곤 한다. 그냥 눈물이 나면 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당신이 나 대신 가정주부 했으면 더 섬세하게 잘했을 것 같다’고 놀리기도 한다.

한 선배는 나처럼 울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오랜 기간 쌓이면서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는 그 선배는 어느 날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아빠가 정년은 몇 년 남았지만 심신이 너무 힘들어서 회사를 더 못 다니겠다.” 그렇게 터트리지 않으면 자신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대학생 자녀의 반응이 그 선배를 더욱 좌절하게 했다. “아빠, 저는 아직 학생인데 지금 퇴사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이 대학생의 문제 제기가 잘못됐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일에도, 말에도 순서가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냥 “우리 아빠 많이 아프고 힘드셨구나”라고만 일단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대기업 임원은 한 명 있는 자녀 결혼시키고, 노후생활 대비까지 어느 정도 해놓고 퇴직했는데, 아내로부터 “당신은 기술직이어서 중국 같은 해외에 아직 일자리가 많다고 하네요”라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섭섭했다고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그 부인은 악의 없이 무심코 ‘100세 시대에 예순 나이이면 아직 청춘’이라는 의미로 얘기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에도 사람은 무너질 수 있다.

가장(家長)이 남편이든, 아내이든, 아니면 둘 다이든 ‘나는 논밭 가는 소처럼 계속 돈을 벌지 않으면 이 가정에서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것인가?’라고 느끼게 해선 안 되지 않나.

가족끼리라도 서로 기대어 잠시 쉴 수 없다면, 너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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