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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감치는북마녀 Jan 18. 2016

그 겨울, 알프

매글프로젝트- 겨울날의 정원

<그 겨울, 알프>


내가 스물일곱까지 살았던 집을 우리는 감나무집이라고 부르며 추억한다. 그곳은 삼각 지붕에 아주 낡은 단독이었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마당의 크기에 비해 과한 감나무가 있었다. 현관에서 대문까지 한참 걸어가야 하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정원에서 사람도, 개들도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특히 개들에겐 더욱 좋은 환경이었다. 질주본능이 치밀어 오를 땐 마당을 가로지르며 집 주위를 하루에 백 바퀴쯤 돌았다. 생리작용이 시작될 땐 오줌도 눠주고 똥도 눠주며 감나무에 자유롭게 거름을 공급했고, 가끔 땡감을 맞아 당황하기도 했다. LPG 가스 아저씨가 커다란 가스통을 굴려가며 들어오면 그 꽁무니를 따라 죽일 듯이 짖었고, 한밤중에는 꽐라가 되어 들어오는 옆집 2층 아저씨에겐 욕하듯이 짖어댔다. 그리고 가끔 “개 파시오~” 같은 소리가 어느 골목에선가 들려오면 목을 쭉 빼고 하늘을 향해 구슬피 울곤 했다.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돌아오는 이 정원에서, 개들은 매일매일 같지만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감나무집은 창문이 많았고 단열재의 힘이 다해서인지 외풍이 심했다. 개들의 집은 마당에 연결된 베란다였다. 그곳에서 개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고 언제나 사람이 있는 집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그 겨울의 정말 추웠던 날, 알프는 베란다에 놓아둔 소파에 꼿꼿이 앉아 아빠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우리는 그 마음과 추위를 알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빠가 퇴근했고 다시 출근한 다음날, 알프는 죽었다.


우리는 개가 죽을 때마다 그 마당의 어딘가에 묻어 주곤 했다. 나는 꽃삽을 가져다 구멍을 파려 했지만 땅은 딱딱하게 얼어버려 삽 자국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알프와 함께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동안 눈물이 말라버렸다.


밤이 되자 엄마는 큰 삽으로 구멍을 팠고, 나는 옆에서 알프를 수건으로 잘 쌌다. 그런데 구멍을 파다 보니 뭔가가 걸렸다. 이런, 복실이인가, 쫄쫄이인가, 아니면 똘이인가. 둘 다 웃음이 나왔다.


“덮어, 덮어. 옆으로, 옆으로.”


엄마는 자리를 옮겨 새 구멍을 팠고, 나는 이미 굳어버린 알프를 그 안에 넣었다. 언제나 반들반들했던 이마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자, 흙이 그 아이를 덮기 시작했다. 엄마가 땅을 편편하게 다지면서 말했다.


“우리 그만 키우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다시는... 키우지 말자.”

“으응.” 


알프는 감나무집에서 태어난 첫 아이였고, 감나무집에서 병에 걸렸지만 회복했던 유일한 아이였다. 매년 땡감을 먹고 탈이 나는 아이였고, 이빨을 드러내기 보다는 배를 내놓는 순한 아이였다.


동생은 직장에서 클라이언트와 미팅 중이고, 엄마는 문밖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며, 아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며 울고 있는 나와 함께 우리 모두 그 겨울을 추억한다. 그 정원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알프를.



초고작성일:  2014.1.24 


*2014년부터 정말 매일매일 글을 쓰는 365일작가연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글쓰기 그룹 [매일매일글쓰기]에 올리고 있어요. 

*그 글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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