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글 프로젝트- 단추를 보라
<단추를 보라>
그녀는 글쓰기 책을 펼쳤다. 2월 1일. 주제, 그녀의 단추가 풀려 있었다.
“흠. 흐음.”
잠들기 전에 내일의 주제를 읽어버린 건 대실수였다. 압박감이 밀려왔다. 아 어렵잖아. 머릿속에서 흐르는 장면은 무척 뻔했다. 작가가 아닌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자존심이 있지 이런 걸 쓸 순 없어.
왜 미리 읽었냐고, 이런 기분으로 잠을 잘 수 있겠냐고 뇌가 물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응, 잘 수 있어. 왜 못 자, 별명이 잠보면서. 눕자마자 서서히 잠이 드는 그녀를 느끼며 뇌는 혼잣말을 했다. 잠보면 뭐해, 허구한 날 꿈을 꾸는데. 그래서 네가 잠을 많이 자도 피곤한 거야 으이구.
한 남자가 나타났다. 형사였다. 몇날 며칠을 자지 못했나. 어서 들어가 자고 싶다. 눈앞에 개방형 복도가 펼쳐진다. 형사는 열쇠로 문을 따다가-어느 동네인데 요즘 열쇠로 문을 따지-동작을 멈췄다. 둔탁한 소리, 신음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그는 옆집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은 조용해졌다. 괜히 눌렀나. 그냥 집에 들어갈까. 자고 싶다. 돌아선 순간, 끼이익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하얀 얼굴이 등장했다. 한쪽 눈 근처에 멍이 들었다는 사실을 그는 바로 알아챘다.
이쯤이어야 하나? 그녀의 단추가 풀려 있어야 하는 게? 내려다 봐! 시선을 내리라고 목으로! 가슴으로!!
“누...누구세요?”
“옆집 사는 사람인데요.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해서요.”
여자의 얼굴에 뭔 상관이냐는 글자가 뜨자마자 형사는 덧붙였다.
“아 제가 형사라서요.”
여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 안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 둘다일지도.
“별 일 아니에요.”
이 말은 진실일까.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계속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형사는 여자의 얼굴을 보며 고민했다. 그러나 눈이 점점 감겼다. 게다가 자신한테서 어떠한 냄새, 오래 씻지 못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저 요 옆 503호 사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하세요. 도와드릴 테니.”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서 형사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형사는 숙면을 취했을 것이다. 몇 밤을 샜을 테니까. 냄새 걱정을 한 걸 보면 사우나도 못 간 게 분명하다. 근데 지금 사우나가 문제냐? 단추 어떡할 거야! 풀든 풀리든 여자를 봐야 할 거 아니야. 내일 글 안 올릴 거야???
눈을 뜨자 형사는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이미 밤이 된 것 같았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물샤워만 했다. 얼굴을 짓이기는 듯이 쏘는 스킨을 또 대충 바른 후 소파에 걸쳐져 있던 티셔츠를 주워 입고서 문밖으로 나왔다. 그래야지. 일단 나오는 거야. 그러면?
옆집 여자가 아파트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몸이 너무 바깥으로 나간 것 같은데?
“조심해요.”
그런 말 하지 마!!! 그냥 다가가라고.
형사는 말없이 그녀의 옆에 섰다.
거리를 두자 좀. 둘이 친해? 아니잖아.
형사는 말없이 거리를 두고 그녀의 옆에 섰다. 여자는 형사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러나 피우고 있진 않았다. 형사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당겨 내밀었다. 그녀가 불과 형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잡고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1m마다 붙어 있는 금연 스티커.
으이그 저번에 부녀회장 아줌마가 와서 한소리 했었잖아. 알면서 라이터를 왜 꺼내. 형사는 라이터를 집어넣고 주춤거리며 그녀처럼 복도 난간을 붙잡고 섰다.
“아래에 뭐 있어요?”
“있긴요.”
여자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 복도 등에 비춰 빛이 났다. 그러나 다시 빛은 사라지고, 웃음도 끝이 났다. 알 것 같았다. 그쪽 얼굴에 멍이 들었음을 여자도 형사도 잠시 잊었더랬다. 형사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아니,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뭘 물어보려고? 됐고, 단추 안 볼 거야?
형사가 손을 움직이자 복도 등이 다시 켜졌다. 무슨 말이든 해야 이 어색한 침묵이 깨지겠지. 그렇다면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
“저기...”
“네?”
여자가 다시 형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의 빛이 그녀의 정수리, 눈, 코, 뺨, 입술, 목덜미, 그리고 위에서 하나, 둘 단추가... 눈. 형사는 내려가는 시선을 억지로 붙잡았다.
“금방 사라질 거예요.”
“...”
“그리고 있어도 예뻐요.”
에라이, 이 등신아!!! 놀고 자빠졌네!!! 그녀는 소리 없는 고함을 내지르다가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반. 10시 반에 그녀의 가족은 외가로 가야 한다. 그녀는 후다닥 일어나 부팅 버튼을 눌렀다. 글을 쓸 시간이다.
그녀의 단추가 풀려 있었다.
초고작성일: 2014.2.1
*2014년부터 정말 매일매일 글을 쓰는 365일작가연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글쓰기 그룹 [매일매일글쓰기]에 올리고 있어요.
*그 글 중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