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대와 나의 안부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 서신교환

by 이승희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 서신교환>


11. 그대와 나의 안부


‘불평등’이라는 괴물에 이빨을 달아주는 것은 상품화’(데이비스 그러스키)라는 말이 떠오른다. 교육, 건강, 서비스를 돈을 주고 시장에서 사야 한다면 자원과 구매력의 경쟁력은 커지게 된다. 반면 반드시 돈을 내지 않고도 혹은 아주 적은 돈을 내고도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가 많다면 불평등의 악영향은 최소화되거나 불평등 그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
_ 김영미의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중에서
(인문잡지 한편 1 세대)

주아님, 다친 다리는 어떤가요? 안녕하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로 안부를 물어야 할지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른 아침, 밤새 안녕 확인차 sns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만나고부터 우여곡절이 많아진 것인지 우여곡절 많은 사람들끼리 만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보다 더한 그대 덕분에 저는 이번 편지에서도 그대의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한 보따리 늘어놓고 싶어 집니다. 허나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으로 귀가 아프고 배가 부를 것 같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대라 믿고 생략하도록 합니다.

제가 편지를 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전 편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일주일 전에 도착했던 그대의 편지를 다시금 읽으면서 편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곱씹습니다. 그리곤 이어서 지난 2주 간의 제 일상을 돌아봅니다. 이것이 저의 편지 작성 루틴입니다. 오늘도 역시 그 루틴에 따라 편지를 작성하고자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말썽이던 것이 또 속을 썩입니다. 주아님 만큼 대형 사건까진 아니지만 그간 저에게도 소소하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은 좀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컴퓨터가 고장이 나버린 것입니다.

어제 일러스트 자격시험이 있었는데 제 실력이 부족해 엊그제 오후부터 벼락치기로 연습을 했습니다. 시간이 좀 길어져 피곤이 스멀스멀 밀려오던 시점에 ‘마지막으로 한 문제만 더 해보고 자야지’하고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멈춰버렸습니다. 장시간 작업을 할 때에 종종 겪었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컴퓨터를 껐다 켜면 되겠지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이었던 어제는 오전에 시험을 치르고 부모님 집에 갔다가 오늘 오전에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삐빅삐빅- 이상한 소리와 함께 윙윙- 시동만 걸고 컴퓨터가 켜지지 않습니다.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해 보니 멀쩡하게 켜지기에 다행이라 여기며 편지를 작성하려 하는데 또다시 멈춤 사태가 발생해 컴퓨터를 껐다 켜고 하는 과정을 열 번쯤 반복했습니다.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두 시간 가까이 지났고 기분 좋게 편지를 쓰려던 제 마음도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렇게 컴퓨터와 실랑이를 한 판 벌이고 나니 진이 빠졌습니다.

이를 어쩌나 잠시 쉬었다 더 이상 매달려 있을 수 없어 초심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 편지를 썼던 날처럼 아날로그 방법으로 편지를 써보기로 한 것입니다. 마침 지난번에 주아님에게 선물 받은 연필이 생각나 그 연필로 편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니 다시 신이 나 포장을 뜯고 연필을 깎았습니다. 편지를 쓰는 과정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해서 영상도 찍으며 첫 문장을 딱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 길이 덜 든 연필이 저를 거부했습니다. 대여섯 줄 정도 시도하다 글씨가 마음대로 잘 써지지 않아 평소에 사용하던 연필로 갈아탔습니다. 허나 주아님, 이 친구와 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이니 너무 서운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마도 저와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주아님처럼요. 연필로 글을 쓰는 일이 참 오랜만입니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연필(정확히는 샤프)로 글씨를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항상 볼펜을 사용합니다. 연필이 가지는 물성의 특별함도 좋고 연필 고유의 필기감도 좋고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장점도 좋지만 쓰고 나면 한참 후에 희미해져 버리는 것이 싫어 꼭 필요한 때가 아니곤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컴퓨터가 맛이 가는 바람에 이렇게 연필로 편지를 쓰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컴퓨터로 초안을 쓰고 옮겨 적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컴퓨터로 쓸 때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앞서 무작정 써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중간중간이나 이후에 단어와 문장 그리고 순서를 가다듬게 되는데 이렇게 펜으로 쓰게 되니 쓰기에 앞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얼마간 쏟게 됩니다. 당연한 일인데도 그 과정이 신기합니다. 핸드폰이 일상화되고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이 다양한 앱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이 없었던 과거에 비해 더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이나 다양한 기록이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지금의 사회적 연결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하지만 무언가를 지탱할 만큼의 힘은 지니지 않은 듯합니다.

주아님에게 이 제안을 받고 여기에 대해 생각의 물꼬를 트고 한동안 ‘사고와 매체’에 대한 생각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편지나 이메일을 주고받는 과거와 달리 카톡이나 문자를 이용하게 되니 대화의 길이는 짧아졌고 대화의 내용은 단편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쓰는 이 편지처럼 이야기가 아니라 ‘뭐해, 뭐 하고 있어, 나 이거 좋아, 싫어’와 같이 단문의 메시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익숙해지고 이로 인해 영향을 받아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않고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모든 글이 길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긴 글이 필요한 때도 있고 짧은 글의 매력만큼 긴 글의 매력 또한 있는데 단문만이 소통이 가능해진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일상은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제가 SNS에 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짧은 글에 취약하기도 하지만 일종의 저 혼자만의 반란이기도 합니다. 초반에는 매체에 맞게 짧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도무지 저랑은 잘 맞지 않아 마음을 내려놓고 저 하고픈대로 구구절절- 쓰곤 합니다. 이러든 저러든 보는 사람만 보는 건 마찬가지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제 마음이 우선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무섭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다 어느 순간 좌절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모두 내동댕이 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듭니다.

그대의 이전 편지에서 물결과 물왕멀 3길, 세모집의 이야기를 잘 보았습니다. 주아님도 저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몫입니다. 언제까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문득문득 걱정을 합니다.

온 세상이 난리 속입니다. 의사들은 정부의 의료 정책을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고 출판계와 서점들은 도서정가제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멈춘 지금도 택배를 비롯한 플랫폼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무더위에도 자신들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대절해 서울까지 가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방역 1위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표에 먹칠을 해놓은 지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재난문자를 통해 전주, 익산, 군산에서 꽤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는 소식들 접하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2주 전의 장마로 온 지역이 그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들이 찾은 곳은 왜 수해 현장이 아닌 광화문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어째서 교회의 목사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입니다.

의사들은 공공의대 설립과 원격진료 허용, 한약 급여화 반대를 위해 파업을 하겠다고 하며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출판계와 서점계에서는 도서정가제 반대를 위해 여론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도 이에 대해서는 같은 마음이라 목소리를 더했습니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일시 정지 멈춤 상태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을 비롯해 갈등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한쪽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코로나가 오나 업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의료계, 출판(서점)계, 택배노동자 중 가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택배 노동자들 같아 보이는데 이들은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는데도 업무를 멈추지 못하고 그저 버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연일 각자의 입장을 내어놓기 바쁜 각축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저는 요즘 독서모임을 하며 청년을 주제로 한 도서 중 ‘청춘팔이 사회’와 ‘인문잡지 한편 1 세대’라는 책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2주에 한 권씩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청년(을 비롯한 세대) 문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평소에 얕은 관심을 두던 분야였는데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한편으론 무언가를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의미가 파생되는 일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주장함에 있어서 그 무언가가 나만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 정말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인지 한번 더 고민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주아님, 연필로 쓰다 보니 두서가 없긴 하지만 글이 정말 술술술 써집니다. 요 며칠 계속해서 저를 답답하게 했던 것들을 풀어놓으니 얼마간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많이 불편하겠지만 아프지 않다고 이 정도는 괜찮다는 말은 물론 생각도 쏙 집어넣고 뼈가 잘 붙도록 꼼짝 마시고 누워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하는 것들 말이에요. 아픈 다리로 인해 몸의 불편함이 마음의 불편함으로 번지지 않고 하루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처서의 더위를 견디며
2020년 8월 23일 오후에 이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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