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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02. 2020

62. 글쓰기는 자기 공부다

쓰기의 말들 / 은유 / 유유

쓰기의 말들 / 은유 / 유유


62. 글쓰기는 자기 공부다

쓰기의 말들 / 은유 / 유유


200220 또 너덜너덜해졌다. 예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갈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책을 두 번씩 읽게 되었다. 원래도 느리게 읽는 게 익숙한 편이라 한 번만 읽어도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을 그것도 메모까지 해가며 읽으니 오죽할까. 내가 읽는 책과 나는 더욱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2, 3년 전만 해도 아니 지금도 때때로 심지어 이번에도 역시 느리게 읽는 내가 탐탁지 않았다. 내가 느리게 읽는 원인이 온전히 나에게 있으며 그것은 나의 능력(집중력, 게으름) 부족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럴까’ 스트레스가 될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나의 읽기 습관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한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읽고 또 읽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내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뜻일 경우 그 내용을 메모했다. 인상 깊은 문장이나 내용이 나와도 메모를 하곤 했다. 내가 느리게 읽는 것이 '정말 잘못된 일이거나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가'하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다.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 뒤론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집중했다. 재미없는 책은 빨리 읽고 재미있는 책은 더욱 느리게 읽었다. 재밌는 책은 소가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읽고 쓰고 곱씹으며 읽었다.


이 책은 내게 무척 재밌는 책이었다. 다만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만한 책이다. 명언집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책에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제3자 이야기를 마주하는 일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통해 제3자의 어떠한 문장을 만나는 것도 만남의 접점을 제공하는 것도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내겐 무척 재밌는 책이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의 삼분의 일 이상을 옮겨 적은 것 같다. 팔이 빠질 뻔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 걸렸노라고 핑계를 대고 싶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머리말이 참 길다. 길고 긴 머리말을 읽으며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픈 말이 참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나는 이런 구구절절이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이런 세세함이 좋다. 그래서 내 글은 항상 이렇게 구구절절인가 보다. 이 책에 보면 ‘내 삶은 글에 빚졌다’라는 문장과 함께 ‘글쓰기 덕에 내가 나로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에 품위를 부여해주는 일이네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내용들을 마주하며 나는 나도 글에 빚지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은 빚. 그리고 고리대금, 사채처럼 그 빚이 계속 불어났으면 좋겠다. 저자는 자신에게 익숙한 삶의 태도가 미련함이며 이 미련함으로 꾹꾹 참다가 결국은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 내용을 보며 나는 내게 익숙한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정직? 꾸준함? 집념? 내게 재밌다도 여기는 책은 이렇게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에게 생각 거리를 가져다주는 책이다.



‘글쓰기는 자기 공부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가 만든 나의 첫 책은 사실 ‘책공방, 삼례의 기록’도 ‘책공방북쇼’ 아카이빙북도 아닌 ‘2013년’이었다. 내가 내 손으로 뚝딱 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과연 이게 될까?’하는 호기심이었다. 설마와 혹시가 뒤범벅되어 시작된 나의 실험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나에게 결과물을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매우 흡족한.


2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마음이 허했다. 기존의 일상이 시시했다. 뭘 해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는 우연히 신문 기사를 하나 보았다. 어떤 신문의 무슨 기사였는지 메모해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이제 막 기록에 습관을 들이던 참이라 놓치고 말았다. 대충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때여서 일상적인 일반적인 글쓰기......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스크랩한 기사였다. 그 내용이 인상 깊어 이를 오래 두고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친김에 뚝딱뚝딱 책을 만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 책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책이 읽거나 출판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온전히 인지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모든 일상에서 ‘이것들이 모이면 책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이 시시때때로 이루어졌다. 무언가 좋은 것을 보면 간직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보통 마음이고 나는 그 마음이 좀 더 큰 사람 중 하나다. 책에서 좋은 구절을 마주하면 메모를 한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메모한 것들을 다시 곱씹는다. 그것도 모자라 그 메모를 토대로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찾아온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또 이것이 반복되자 나중에 이러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완성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나였으니 이 책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저자는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덧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책 보다 얇은 책이고 온전한 자기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 관련 유명 인사들의 글을 소재로 하였다. 이러한 내용 구성을 보며 나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출판이 되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모아서 책을 만들어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생각했다. 이제 열심히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독후 활동을 의미가 아닌 단계로 가르마를 타자면 그 최고 단계는 책 쓰기일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쓰고자 하는 동력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문장은 좋은 문장을 쓰게 한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쓰게 한다. 좋은 만남은 또 다른 좋은 만남으로 이어진다. 좋은 사람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명분을 낳고 좋은 삶은 다른 이에게도 좋은 삶을 살게 한다.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정말 좋은 것인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내게 좋은 책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들이다.

추리고 추린 것이 이 정도다. 정말이다.



본문|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 권한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있다./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 내긴 싫었던  같다.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다물어졌다. /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가장 안전한 수단이다./ 글쓰기에 재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쓰는 일은 지겹고 괴로운 반복 노동인데  고통을 감내할 만한 동력이 자기에게 있는가/ 재능이 있나 없나 묻기보다 나는  쓰는가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여긴다./ 모든 배움의 원리는 비슷하다, 반복을 통한 신체의 느린 변화/ 용기란 몰락할  있는 용기다. 어설픈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쓰고  부끄러운 것보다 부끄러운 편을 택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기 인식이야말로 쾌감  으뜸임을 알았다./ 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  보던 책을 보는 일은  쓰던 글을 쓰게  테니, 세상에 아무 책은 없다./ 어떤 이들은 뒤늦게 배우고 쓰면서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된다./ 자의식은 높고 자기 의견은 없는 사람/ 자기의 사회적 표정과 대결하며 본래의 표정을 되찾는 일이 어른들의 글쓰기일지도 모른다./  가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이해한다. 만물에는 똑같은 법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주한 자기 한계들,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얻은 생각들, 세상은 어떤 것이고 사람은 무엇이다 라는 정의를 내리고 수정해가며 다른 인식들. 그러한 자기 삶의 맥락이 있을  글쓰기로서의 공부가 는다. /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내기/ 설명하지 않고 보여줘라. 다만 여기서 함정은  보여주려다가 글이  끝난다는 .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 가진 자가  갖기 위해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냥  먹고  쉬고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내가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 공감은  삶은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다./  들어 가지런히 정리된  사람의 기록은 삶에 대한 찬미를 불러일으킨다. /  쓰는 나로 살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가슴 밑바닥에서 불만이 솟구쳤다. / 같은 일을 반복하면 뇌의 구조가 그에 맞춰 바뀌기 때문에 계속 연습을 할수록  잘하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이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연습과 노력 외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 인터뷰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삶으로 읽어내는 일이다/ 자서전이라는 말은 오염됐다는 / 공든 탑은 자주 무너지고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하는 삶은 많다. 그런 허망을 알고도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내가 좋다고 남에게 권하는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해 보니 철렁했다./ 인생에서 스친 무수한 인연과 겪은 수많은 사건에 자기 행동의 기원이 있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읽으라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은 이것보다 두 배 많다. 1독을 할 때 밑줄로 한 번, 2독을 할 때 메모하기로 한 번, 메모한 것에 밑줄을 그으며 한 번, 이렇게 글로 쓰며 또 한 번 추렸다. 사실 너무 많은 것 같아 뒷부분은 넣지 않았다. 그 정도로 좋았다. 무언가 제대로 한 기분이다. 난 이 기분이 좋다. 다음에 또 이런 책을 만나면 또 그럴 것이다. 책에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고 독서는 그것을 읽는 행위이지만 그 안에서 자기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을 끄집어 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쓰기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어도 좋을 것이다. 특히 긴 호흡의 읽기가 어려운 친구들에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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