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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20. 2020

61. 나의 첫 은유

출판하는 마음 / 은유 / 양철북

출판하는 마음 / 은유 / 양철북


61. 나의 첫 은유

출판하는 마음 / 은유 / 양철북


191202 지난 5월 대구에 갔었고 ‘더폴락’에 갔었다. 그때 이 책을 데려왔다. 글이 술술 읽힌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서문이 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생님 책만큼이나 서문이 참 길었다. 그 긴 서문이 어찌나 알찬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를 꼽으라면 서문을 택할 정도다. 서문에선 출판, 책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데 외국의 경제학자 이야기를 끌어 온다. 필요 이상 거창하다는 느낌이었다. 헌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이 참 어울린다. 설득력이 있다. 책을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고 이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하여 더 큰 세계로 만든다.


“편리를 누릴수록 능력은 잃어 간다. 물건을 귀히 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할수록 ‘총체적’ 삶에는 무능해지고 만다. / 무능과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례와 불통을 낳는다. ” _본문 중


한동안 이 내용을 곱씹으며 살아갈 것 같다. 연간 3만 명이 방문하는 공방에서 6년 6개월간 있었으니 아마도 약 20만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작년부터는 6만 명이라고 하니 더 많을 수도 있겠다. 20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90% 이상은 관람 예절에 무감각했고 약 10%의 사람들만이 관람 예절을 아는 것 같아 보였다. 위의 인용된 내용 중 앞부분은 프랑스의 경제학자의 말이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저자의 말이다. 나는 후자의 말에 더 깊이 공감했다.


무능과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례와 불통을 낳는다.’
 _본문 


ㅈ관람 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수도 없이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투로 부정의 말을 전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그런 말을 듣는 사람도 좋지 않았겠지만 나 또한 유쾌하지 않았다. 제발 알아서 지켜주었으면 했다. 나에게 그 일은 필요악 같이 여겨져 전혀 즐겁지 않았고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더 달갑지 않았던 것은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전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었다.  대부분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이 반응이 왜 나는 달갑지 않았을까. 나 또한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종종 이야기도 했었다. 처음엔 몰라서 그랬으니 그럴 수 있다고 사람들을 이해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사람들의 ‘몰라서’는 알려고 했으나 알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걸(것 까지) 알아야 해? 혹은 그런 것 따위 알고 싶지 않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내 말이 조금 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러하다. 갈수록 사람들은 듣지 않고 읽지 않고 즉시적으로 반응하는 데만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존감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다. 그 이유는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다양한 인물을 접해 그들의 여러 입장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름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이러한 간접 경험이 줄고 그에 따라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 생각하기도 벅찬데 내가 왜 다른 사람들까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정말이지 딱밤을 한 대 시원하게 갈겨 주고 싶다.



이 책에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열 명의 사람들을 저자가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하여 전해주고 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탓에 더욱 재밌게 보았다. 나는 이와 같은 책이 ‘출판’이와의 다른 분야에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해해야만 한다.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책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올 확률보다 적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층은 책을 만들었거나 만들고 싶은 즉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독자층이 어느 정도 두텁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경우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온라인 서점 MD의 마음’이었다. 그는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MD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팔리는 책은 팔리는 책이지 좋은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나쁜 짓을 해도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다’라는 기준이 주관적이라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나에게 좋은 사람과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인 것이지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 나에게도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사회적으로도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만 좋은 사람이지 사회적으로는 좋은 영향보다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나에게 좋은 것과 사회적으로 좋은 것을 구분 지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나보다 사회에게 좋은 것을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는 개인이 이루므로 내가 잘 사는 일이 사회가 잘 사는 일이 되기도 하지만 나만 잘 살고 사회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챕터는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른 책이나 언론을 통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하다고 하기에도 안 유명하다고 하기에도 뭐한 사람들이다. 일명 아는 사람들 더 정확히 책이나 출판에 관련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재밌게 읽었던 이야기는 두 번째 챕터인 ‘저자의 마음’이었다. 나와 선생님의 관계처럼 조금 특이한 직원과 사장님의 관계를 이루고 있어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터라 나는 이 챕터부터 읽기 시작했다. 정말 재밌고 반갑게 읽었다. 일상의 메모가 문장이 된다는 이야기, 기억은 사라져도 메모는 남는다는 이야기, 활자로 모아두지 않으면 흩어진다는 이야기 등 내가 했다고 해도 믿을 법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접하며 가슴이 뛰었다. ‘나도 내 책을 한 권 만들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고민을 시작했고 올초에 확고해진 꿈이나 바쁜 일상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라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테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오늘 당장 원고 작성을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가 이 책을 다 읽고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며칠 전에 가제와 기획의도 몇 줄을 정리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을 해 볼 참이었는데 작년에 나를 괴롭게 했던 걸림돌이 재등장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지금 만들고 있는 책공방 책의 원고가 지금보다 아주 훨씬 나아졌을 것만 같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생각과 나의 말과 인터뷰어의 말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내용이 어수선하고 안 그래도 구구절절이 더욱 그리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내가 부러 구분 짓지 않아도 독자는 다 안다는 것을.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이야기했느냐 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들 ‘은유, 은유’ 하기에 베스트셀러에 대한 거부감처럼 일부러 만남을 피해왔다. 하지만 다음 은유를 하루빨리 만나고픈 마음이 되었다. 아마도 그의 팬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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