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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8. 2020

60. 한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

감자꽃 / 김지연 / 열화당


61. 한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

감자꽃 / 김지연 / 열화당


191117 지난봄이었던 것 같다. 서학동사진관에 들러 전시를 둘러보고 이 책을 구입했다. 처음 이곳에 갔던 것은 2013년 겨울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관심이 없어 그랬는지 얼마 안 있어 시작한 연애사업으로 바빠 그랬는지 한 번의 방문은 그 이후 무언가로 번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 ‘계남정미소’를 알게 되고 우연히 ‘빈방에 서다’라는 책을 알게 되고 이 모두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그분께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공방보다 먼저 ‘아카이브’를 실천하고 책공방에서 꿈꾸던 그 모습 그대로 실천하셨던 그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빠져 들었다.


그러던 중 책학교 3기의 주제를 ‘기록’으로 잡으면서 이 분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무의식 중에 이 분을 염두에 두고 주제를 그리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과 계획을 세우던 중 서학동사진관에서 하는 전시를 보기 위해 그곳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자리에 계시던 관장님과 만나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때부터 반가움과 신기함을 동반한 감동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내게 있어 늦은 나이에 사진을 배워 지금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고 계신 관장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또한 하고 싶은 작업들이 너무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이야기하시는 에너지는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이에 내가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어른이 한 분 계시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이 책에는 이처럼 그간의 사진들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담겨 있다.


“정겨운 기억의 징표들이 물질만능주의 앞에서 ‘우리집에서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려 할아버지의 기를 죽이고 있다._본문 중”


길이에 상관없이 어떤 이야기는 가볍고 어떤 이야기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진은 그 자체로도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나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와 같기도 하지만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누군가가 어떠한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나 그것과 더불어 그로 인한 파급력 또한 굉장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에 힘을 싣게 되었다.


요즘 나에게는 아무리 백날을 이야기를 해보아야 소용이 없다고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투의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부정의 생각을 접어두고 긍정의 생각에 닿게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혹은 의미 있는 일에 있어서는 그 주최자나 참여자 이외에도 이를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일이 행해짐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장님이 이렇게 열심히 아카이브 작업에 매진하고 그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는 사실은 이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이런 것도 중요해 혹은 이런 매력이 있어, 이런 것도 있어’ 같은 메시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기록하고자 하는 것들의 귀함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오래되고 낡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것들이 다음 세대에게 오롯이 전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서 이런 것들은 사라지고 있다. _본문 중”


이 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무언가가 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도 있지만 알 수 없기도 하고 안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더 나아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하기보다 나와 다름을 불편해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중에 많은 것들은 사라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이나 간직되고 기록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감자꽃’을 두고 사진 속 인물 중의 한 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감자꽃아 좋아 보여 이를 부케처럼 만들어 사진을 찍고 그도 모자라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감자꽃’은 정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일까. 감자가 영글기 위해 감자꽃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그 쓸모는 티가 나지 않기에 그 쓸모 이외에는 다른 쓰임이 탐탁지 않기에 그리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를 지키고 기록한다는 것도 이와 같다. 그걸 해서 뭐하냐고 말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될 수 있다. 돈은커녕 밥도 안 나오는 일이다. 오히려 돈이 들고 품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선대의 것을 후대에 전하는 이 일은 우리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다. 참 따뜻한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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