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 서신교환
완주군 관계자는 "책공방과 김상림목공소는 최초 개관 때부터 있었으니 비중 있게 보기 쉽지만, 8년간 위탁으로 운영되다 보니 잘한 부분과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책공방과 아트네트웍스(수탁기관)는 공동 운명체로 따로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술촌을 이만큼 끌어올린 공은 인정하지만, 대규모 수선을 거친 후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콘텐트를 전면 개편할 계획"이라며 "책공방 못지않은 새로운 콘텐트를 채워 예술촌을 제대로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출처: 중앙일보] 결국 삼례예술촌 떠나는 책공방…"전국이 탐낸 자산 내쫓는 격“
청천벽력 같은 책공방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주아님의 표현대로 저 또한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있습니다. 아니 열탕과 얼음탕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선생님을 통해 책공방 소식을 처음 접했던 날, 저는 완주 청년 모임 친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편안한 장소에서 맛난 음식과 함께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에 함께 가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평소보다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그간 홀로 도를 닦다가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흥미를 느껴가고 있었던 지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 잠시 멍하게 있다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솟구쳐 나오는 이야기를 삼켰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글처럼 얼마 못가 솟구치는 이야기를 참지 못하고 담담히 쏟아냈습니다.
제가 ‘책공방이 쫓겨난대요’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예상대로 분위기는 싸해졌고 ‘왜요?’라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전달받은 대로 ‘수탁기관인 아트네트웍스가 재위탁에서 탈락하게 되었고 책공방과 목공소도 아트네트웍스 소속이니 함께 정리가 된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럼 거기다 뭘 한데요?, 어떻게 책공방과 목공소가 아트네트웍스 소속인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계획에 대해선 어디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고 두 번째 질문은 누구보다 제가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아님 평가 결과가 공개되었는지 물으셨지요? 평가 결과는커녕 2개월 뒤에 찾아올 2021년부터 당장 내년에 예술촌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깜깜합니다. 기사를 보니 담당자는 책공방과 비견할 만한 콘텐츠를 채우겠다고 이야기했다는데 어떤 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정말 어떠한 계획이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전국에는 책공방만큼은 물론 그 이상의 콘텐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콘텐츠를 이렇게 대접해놓고 어떻게 양질의 콘텐츠를 유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아스럽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을 바보로 알거나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저 또한 주아님과 같이 마음이 내려앉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완주 지역민으로 이러한 사태가 몹시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지난날을 자책하게 됩니다. 2018년 1월 아트네트웍스에서 근로계약을 미루는 것도 모자라 주6일 근무와 기본급 이외 시간 외 수당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지금처럼 나와 버렸다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이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저는 작년 12월 31일 부로 예술촌(책공방) 직원이 아닌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이미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예술촌(책공방)은 저의 뿌리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일이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와 환멸을 느낍니다. 책공방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책공방과 완주의 상관성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책공방에 있는 기계와 도구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의기양양하게 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인쇄 및 책 만드는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 우리 지역에 있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주아님의 말처럼 함께 책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이런 사태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데리고 왔으니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맥락이 아닙니다. 그간 책공방이 모 업체처럼 빈 손으로 와서 말만 앞세우고 1년에 써야 할 예산으로 10월도 안 되어 다 써버리고 군의 지시에 불응하고 콘텐츠 발굴에 소홀하고 공간 및 지역 활성화에 힘쓰지 않았다면 즉 책공방에서 책임 있는 사유가 있었다면 지금의 결과는 응당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공방은 선생님이 반평생에 걸쳐 쌓은 콘텐츠를 송두리째 들고 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자 매년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하고 실행했습니다. 2013년 처음으로 시작했던 책공방 북쇼부터 시작해 자서전 학교, 지역출판전문가양성과정, 완주 인생보 등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했고 매년 1년 1책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출판문화를 선도했고 매년 기획 전시를 통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정규 인력은 오로지 선생님과 저 두 명이서 이루어 낸 결과물들입니다.
주아님 저는 사실 이번 서신에서는 최대한 책공방 이야기를 자제하고 싶었습니다. 책공방의 일은 요즘 제게 가장 큰 일이긴 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고독해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위와 같은 기사가 나와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이 일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내부적으로 잘 해결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마도 2017년 말 완주군에서 삼례문화예술촌의 새로운 수탁업체를 ‘아트네트웍스 주식회사(이하 아트네트웍스)’로 선정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군에서는 예술촌의 정체성 유지를 이유로 기존 콘텐츠 중 50%를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책공방이나 목공소는 아트네트웍스가 선정된 후에야 기존 콘텐츠 중 책공방과 목공소가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아트네트웍스가 선정되기에 앞서 완주군도 아트네트웍스도 책공방과 목공소에게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와 선생님은 그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그동안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아 이렇게 남을 수 있었다 생각하고 또 열심히 하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과 결론을 내린 사람들과는 달리 그동안 책공방이 해왔던 일들과 가능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저는 어쩌면 최근 2년의 고(苦)를 뒤로 하고 이제 꽃길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제 나름 근거 있는 긍정의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았습니다. 저쪽에선 이를 갈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속을 모르고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가능하다면 그 꿈에서 깨지 않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에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아무렇지 않다가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합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이 악몽 같은 일들에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도 올해도 감사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저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주아님이 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공방과 제 일에 이해타산의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함께 해주어 큰 힘이 됩니다. 쉽게 열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내어주고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래오래 함께 하여 지금의 일들에 보답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시 오지 않을 이천이십 년
십일월의 첫날을 보내며 이승희 드림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은 매주 일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시쓰는 임주아의 이전 편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