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
눈앞에 펼쳐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힘겨운 우리는 안타깝게도 지구 저 반대편은 고사하고 이웃 마을, 이웃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잘 알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기에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함께 슬퍼하기 어렵다. 하지만 슬픔을 나누지 않고서는 위로받을 수 없다. 상대의 슬픔을 안아 줄 수 있을 때 나도 위로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 양희의 인터뷰집 「다큐하는 마음」 ‘서문’ 중에서
지난번 편지를 받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에 담긴 주아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 무언가를 증명해내 보이고픈 마음, 내리꽂고 싶어 하는 마음 등을 보았습니다. 다만, 책공방의 일로 제 삶이 크게 요동치고 우리의 편지 또한 첫 마음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끝과 실패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제 편지에 아랑곳없이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대가 좋았습니다.
주아님, 저는 요즘 제가 걱정스럽습니다. 작은 흔들림에도 크게 요동치는 듯합니다. 위기입니다.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과 가치가 흔들리고 가끔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을 부정하게 됩니다. 내 안의 불씨가 크기나 화력에 상관없이 안정감을 갖게 되면 웬만한 주변의 환경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내 안의 불씨가 안정감을 갖지 못하면 작은 흔들림과 작은 바람에도 크게 요동치게 됩니다.
저는 종종 주아님을 통해 우리 편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은 편지를 읽지 않는 것인지 보고도 못 본 척을 하는 것인지 할 이야기가 있어도 제가 귀담아듣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인지 다들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제 짐작엔 제 주변이라 저와 비슷한 사람들뿐이라 그러하다는 결론입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편지가 ‘느끼하다, 직접적이지 못하다’라는 이야기에 크게 반응했으나 요즘엔 그냥 무덤덤합니다. 너무 큰일을 겪는 중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잘 쓰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 커서 조바심을 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뭐라 하거나 말거나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 방식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슬그머니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나에게 닿지 않는 이야기는 남에게도 닿을 수 없다는 생각과 주변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말과 글이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함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저는 반기를 듭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세상에 필요한 책과 유의미한 책이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더라도 발화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글의 첫 청자와 독자는 바로 우리 자신인 탓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더라도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놓는 것 자체로도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다 보면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단단하고 연약해졌습니다. 매일매일 제 안에서 연약함과 단단함은 힘겨루기를 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작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불씨가 안정치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꾸만 시야가 좁아지고 가까워짐을 느낍니다. 제 삶이 팍팍하니 주변과 이웃을 돌아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달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는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인생이 앞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는 주아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허나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모든 방향을 인지하며 자리를 잡았어야 한다는 생각엔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주아님의 말처럼 모든 방향을 인지하며 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마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를 모두 지나와 지금이 되어서야 드는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모든 방향을 인지하기보다 제가 원하는 방향을 찾고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아마 책공방 선생님의 생각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챌린지에서 받은 연대의 힘을 키워 또다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온기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도 겨울이 온 듯합니다. 너무 작아지고 차가워졌습니다. 이제 그만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했습니다.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이제 저 스스로를 돌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벌여 놓은 일들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저는 어서 시간이 마구마구 흘러 모든 것이 잠잠해지길 바라는 한편 제가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갈 수 있도록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길 바라곤 합니다. 지금의 시간이 괴로운 탓이고 머리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한 일들이 한가득입니다. 뜨거운 마음에 화답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2020년 11월 30일 마지막 날을 시작하며
이승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