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예수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중략)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어떤 브랜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지금처럼 취향이 파편화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요즘 소비자들이 백이면 백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다. 100명의 고객을 어설프게 만족시키는 브랜드보다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확실하게 만족시키는 브랜드가 더 사랑받는 시대다. _안성은의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중에서
주아님의 ‘폭풍같이 휘몰아지는 나날‘이라는 표현이 안성맞춤인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 가족들과 코로나 관련 이야기를 하다 비 일상의 ’코로나 시대‘가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음을 인지했습니다. 어제는 확진자가 천 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에 어찌 살아가야 할지 난감해지기만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불필요한 모든 만남을 자제하고 멈춤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백 번 맞는 이야기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필요와 불필요를 나누는 기준과 경중이 다릅니다.
"THE WORST YEAR EVER(사상 최악의 해)“라는 문구가 적힌 일러스트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함께 전해 온 자료와 달리 주아님의 편지에는 좋은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어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주아님, 저는 사람들에게 저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저는 조금 더 그러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 마주할 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런 제 의지와 달리 그렇지 못할 때도 종종 있지만 저는 되도록 그러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음이 아파도 힘이 들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복닥거릴 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마음이 들면 지인들을 급하게 호출해서 그 마음을 털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을 반복하며 저라는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대로 털어놓는다고 해서 제 마음의 복닥거림이 개운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그러한 마음을 전함으로써 상대방도 저와 같이 안 좋은 마음이 되는 것 또한 싫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들고부터는 웬만하면 그러한 때일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갖곤 합니다.
지난번 서신을 쓸 때 저는 그러한 상태였습니다. 온전히 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으나 편지를 쓰기로 한 주아님과의 약속은 물론 저 스스로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 담담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저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최대한 솔직하게 쓰고 싶었는데 저의 솔직함이 배려 없음이 되어 주아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커서 미처 주아님의 마음까지 헤아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저의 편지를 받고 주아님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저처럼 말해주길 바랐고 많은 부분에서 저와 닮은 주아님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화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이 바닥이라 벌어진 일입니다. 제 마음이 좋은 상태였다면 주아님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있었을 텐데 제 마음에 그럴 만한 작은 여유조차 없었던 듯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솔직함에 솔직함으로 응답해주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솔직해주길 바랍니다. 아니 지난번처럼 오래 고민하지 않길 바랍니다. 고맙고 좋은 마음을 전하듯 서운한 마음도 가벼이 전하고 가벼이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솔직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주아님과 저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고 때로는 누군가가 잘못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누군가의 잘못은 바로 잡아가며 끈끈해지고 굳건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 되니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약속한 ‘끝’이 가까워질수록 첫 마음과 지난 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편지를 쓰기 전에 항상 제가 이전에 썼던 편지를 읽고 그다음에 주아님에게서 온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이미 한 번 아니 여러 번 읽고도 혹여나 내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진 않을까 고민하며 지난 편지를 읽곤 합니다. 열세 번의 편지를 써오는 동안 대부분의 날들은 ‘이런 내용을 써야지’ 하고 설렜지만 몇몇의 날은 뭐라고 써야 하나 막막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도 지난 편지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은 도움이 되곤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지난 기록을 되짚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것을 즐깁니다. 내가 남긴 기록을 통해 내가 남길 기록을 만들어 갈 때 충만함을 느낍니다. 지난 한 주는 제게 좀 버거운 날들이었습니다. 아직 소화가 되지 않은 기분입니다. 인생의 속도와 제가 그에 반응하는 속도의 격차가 한참이나 벌어졌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책들에 관한 리뷰를 쓰지 못했고 매일매일 쓰던 일기는 일주일이 넘게 밀려 있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이 훨씬 크고 넓다는 말이나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말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주아님의 말과는 달리 저는 요즘 기한에 맞춰해야 할 일들을 겨우겨우 해내며 아주아주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칭찬이 한 보따리 담긴 주아님의 편지를 보며 저는 반성을 했답니다. 이미 아시다시피 저는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에 익숙한 편입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냉철하게 인지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이러한 저의 성향은 남들은 물론 저 자신을 힘들게 할 때도 많고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두가 저와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토닥토닥 대표님들과 함께 준비했던 ‘책공방 릴레이 북토크’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책공방 땡큐 북-쇼’만이 남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책공방은 지금의 자리에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책공방이 떠나는 것을 원치 않고 책공방을 내쫓는 것이 지역에 손해라고 이야기하는데 ‘계약만료’라 어쩔 수 없다는 담당 공무원은 요지부동입니다. 그래도 주아님 덕분에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으니 그 기운을 받아 꽃피는 봄이 오면 책공방에도 저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길 꿈꾸어 봅니다. 그리고 그 좋은 소식을 주아님과 함께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함께 전하는 글귀는 지난번 마마모 모임 때 제가 공유했던 책 내용 중 일부입니다. 브랜드에 관한 내용이지만 관계에 적용해 보아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보다 가장 최우선으로 우리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고, 서로에게 백 프로 만족스럽길 욕심내기보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 백 프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주아님을 떠올렸습니다. 모임 때 전하려 했으나 주아님이 일찍 가는 바람에 전하지 못해 이렇게 전합니다.
2020년 12월 13일을 20여분 남기고 이승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