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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20. 2023

230712

몇 년 만에 영화를 봤다

230712 몇 년 만에 영화를 봤다


사실은 1년 만이지만 체감상 5-6년 만이고 지프떼끄는 그보다 더 오랜만이다. 한동안 거의 담쌓고 살다시피 했던 책과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마치 잃어버린 나를 찾은 것만 같다. 과거의 나는 책도 잘 읽고 글도 열심히 쓰고 영화도 잘 봤다. 그러던 내가 삶의 고비를 만나 좋아하던 것들을 잊고 살았다.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니 책을 보아도 읽히지 않았고 영화를 보러 나서 지지 않았다. 마음이 평온해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 보았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어느 순간 평온한 마음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떠한 경험이든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이제는 그냥 평온치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독히도 영화를 좋아한다는 친구를 만났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그 친구의 말에 이끌려 지난주 수요일, 몇 년 만에 지프떼끄로 향했다.

몇 년만에 가니 포인트 제도가 바꼈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포인트가 관람권을 세 장과 도장 하나로 돌아왔다. 선물을 받은 것마냥 찐 감동.

영화 시작 시간에 겨우 맞춰 아니 살짝 늦게 상영관에 입장해 가장 구석 첫자리에서 쭈그려서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평온했다.


영화 <군산전기>는 제목 그대로 ‘군산’에 대한 이야기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전쟁 이후에는 미군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다시피 했던 지역이다. 쌀 도박이라 불리는 ‘미두’로 유명했고, 한때는 소비의 도시로 불려 몇몇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군산으로 이주하기도 했단다. 영화에선 군산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군산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인터뷰이로 군산을 사랑한다는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지역을 사랑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연 내가 살아가거나 살아가야 할 지역을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과 지역을 사랑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영화를 보고 나와 다음 영화인 <수라>도 보기로 했다. 사실 나올 때부터 두 편으로 연달아 볼 요량으로 배고플까 봐 옥수수도 야무지게 챙겨 왔다. 휴무 날이면 지프떼끄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도 했던 ‘삼례, 책공방 이승희’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다. 부족한 것 투성이에 지금보다 일에 더 치여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아보니 충만했던 시간이다.

책방 토닥토닥의 SNS피드에서, 지난 6월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영화 <수라>의 소식을 보았다. 그리고 최근 어떠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이 영화를 보아야만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영부영하는 내 마음이 확고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영화를 보다가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다. 간절함을 넘어선 절절함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일군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최고 멋진 줄 알았는데 다른 세계도 책 못지않게 멋지구나 싶고 독보적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됐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나는 ‘책’이 최고로 멋지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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