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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08. 2023

73. 이 책은 그의 메모 그 자체다.



73. 이 책은 그의 메모 그 자체다. 

『아무튼, 메모』 / 정혜윤/ 위고 출판


"우리는 돈이 안 되는 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돈이 안 되는 것들의 도움으로 산다. p.53"


메모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기반으로 풀어가는 다양한 메모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으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삶의 어느 한 시기에 ‘메모의 화신’으로 살았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메모의 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메모 덕후가 전하는 메모하는 법이나 메모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또는 다른 기록과 달리 메모만이 가지는 장점이나 특징 따위였으나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그의 메모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많은 문장과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최초의 공간, 작은 세계, 메모장을 가지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했던 다양한 메모를 소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메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 메모는 인내심의 표현이다. 우리는 메모를 재료로 책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작업을 완성하고, 특별한 날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더 나은 생각을 찾고, 노동을 값지게 할 수 있다. 등등’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그의 메모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던 어느 순간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너무 후지다는 생각에 빠져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발버둥 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때때로 다양한 충동을 느끼지만 그러한 충동에 발버둥 치지는 않는데 난 이 ‘발버둥 치는 순간’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내가 아는 ‘발버둥’은 간절함이다. 그러한 순간에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메모’였다. 당시 그는 꿀벌이 꿀을 모으듯 책의 좋은 문장을 모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메모가 자신을 새롭게 해 줄 것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교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은이가 가지는 메모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책에는 메모에 대한 열 가지 믿음이라는 소제목의 챕터가 등장하는데 나는 그보다 위 내용이 더 메모에 진심인 지은이의 마음이 도드라진다고 생각했다. 


메모에 대한 책을 읽는데 나는 메모보다 그의 삶이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그와 같은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느낌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생각할까 계속 생각했는데 책의 후반부에 가니 알게 됐다. 그가 (내 기준) 기울어진 이유는 그가 해왔던 일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해야 했거나 그 앞에 놓인 일들이 그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가 그런 사람이라 그런 일을 마주하게 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일을 자꾸 마주하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는 나는 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 또는 하게 되는 것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이 확장되고 확신하게 된다. 어떠한 사람과 일은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무엇이 먼저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확정할 수는 없는 이야기다. 


그의 메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니 옴니버스로 구성된 소설을 읽은 듯했다. 아주 조금 아쉬웠던 점은 메모와 다른 기록과의 차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의 부재였다. 그런 내용이 있었다면 메모의 매력이 더 돋보였을 것 같다.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주 잠시 메모와 일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말 그대로 아주 잠시였다. 다음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내 생각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만다. (중략)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인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p45



요즘 나는 평소보다 더 기록에 골몰해 있다. 우리는 왜 기록을 해야 할까, 기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하지 않는 삶은 어떠할까 등의 기록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에 다시금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도 한다. 그런 내게 가뭄에 단비 같이 여겨지는 내용이었다. 이 대목 덕분에 복잡하던 생각이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됐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나아진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정체성 또는 주체성을 잃어버려서가 아닐까 싶다. 이 정체성과 주체성은 보물찾기 하듯 어디에 가면 찾고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 듯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기록은 나를 만들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기록은 나의 의도를 찾는 일이다.’ 


요즘 나는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자주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고, 진짜의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런데 다음 내용이 나의 그러한 생각과 맞닿아 있어 반갑고 신기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는 크게 공감했다.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하다. (중략) 우리는 그냥은 살지 않는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산다. /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 지금과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 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은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얼굴과 몸짓, 표정, 눈빛마저 바꾼다.” p.48


그 밖에도 여러 내용이 마음에 닿아 밑줄을 긋고 종이테이프로 표식을 해두었다. 


“현실은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고 구할 것은 구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지 받아들이기만 하라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삶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사랑과 꿈이지 백 퍼센트 현실은 아니라고./ 사랑과 꿈을 마음의 중심에 두는 것 말고 달리 어떻게 이 슬픈 세상에서 나의 삶이라 믿고 있는 지금 이 모습의 삶을, 이것이 유일하고 필연적인 모습이라고 가끔 축하도 하며 살 수 있을지 / 꿈이란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분이 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꿈은 우리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도록 도와준다. 마음이 흔들릴 때 “나는 꼭 이 일을 해야 해.!”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가장 좋은 단어가 꿈이다. 공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꿈을 따라가는 삶이다.


우리 사회는 꿈을 너무 오래 말하는 사람을 억압한다. 너무 오래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을수록 철부지 사춘기 미성숙한 소년쯤으로 여긴다. /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 하기로 한 일이 있다면 세상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해야 한다. 지금 해야 할 일, 그 일을 잘 해내야 한다. /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예요. 건강하게 시작하고 싶어서요. / 내가 내 몸과 가장 잘 지내는 순간은 내 몸을 어디에 쓸지 알고 있을 때 / 자기만의 작은 질서, 작은 실천, 작은 의식을 갖는 것이 행복이다. 메모는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방식, 자신만의 질서를 잡아가는 방식이다. 메모는 미래를 미리 살아가는 방식, 자신만의 천국을 알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 /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정직한 통로를 거쳐서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 나는 내가 그토록 많은 도움을 받았던 아름다운 세상이 파괴되는 것이 슬프다. / 우리의 삶은 결국 평생에 걸친 몇 개의 사랑으로 요약될 것이다. ”  


메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읽을 테고, 메모나 기록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 못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나도 메모 좀 해봐야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면 뭐가 좋을까' 이런 기대보다는 이 책을 도구 삼아 '메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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