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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6. 2023

74. 스물두 가지 기록법이 담긴 친절한 기록 안내서


74. 스물두 가지 기록법이 담긴 친절한 기록 안내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 자기만의방(휴머니스트)     


지난 6월 시작한 <나의 기록학교>를 앞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자료조사였다. 기록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으니 나만의 ‘도서 목록’이 필요했다. 이 책도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다. 최근 7~8년 사이 ‘기록’이 유행을 하기 시작해 이전과 달리 새로운 기록 문화가 정착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이에 따라 자칭, 타칭 기록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다.


내 주변인들은 내게도 책을 쓰라고 권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 나는 (기록에 관해서는) 책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미 나보다 매끄러운 솜씨로 책을 썼는데 굳이 내가 또 같은 이야길 반복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나만의 이야기와 톤이 있겠지만 중심을 이루는 생각이 유사하면 그건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 정도로 기록에 대한 결이 나와 비슷했다. 덕분에 거부감 없이 슉슉- 편안하게, ‘그래그래’하며 곳곳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물론 여기에는 저자의 매끄러운 글솜씨도 한몫했다. 책을 읽는 동안 책이 아닌 잡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는 분이었다. 역시는 역시다. 글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거짓의 글은 있어도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p.10  

   

우리가 기록을 하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질문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인데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기록할 것과 기록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갓은 온전히 기록을 하는 나의 몫이다. 이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기록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요즘의 나는 기록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대목에서 자꾸 ‘닻프레스’의 책 만드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 만드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하는 고민은 ‘무엇을 담을까’가 아닌 ‘무엇을 버릴까’라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역시 기록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이렇듯 기록은 무언가를 남기는 일인 동시에 남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친절한 기록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이리저리 요리조리 기록할 수 있는 기록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다이어리부터 시작해 기록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감정, 여행, 일상, 풍경, 월간 베스트, 1일1줍, 테마, 같은 장소(계절), 공간, 좋은 말, 농담, 문장, (일상의 디테일을 빌려 쓰는) 글감, 이야기, 영감, 아카이빙, 사랑, 기록, 손글씨 등. 무려 스물두 가지나 된다. 중간중간 공책처럼 여백을 두어 다양한 기록 방식을 따라 직접 기록을 해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도 모자라 예시까지 들어가며 매우 친절하게 기록하기를 유도한다.      


다음은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사랑받는 기억이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그건 아무리 시간이 흐른대도 달라지지 않는 진실이에요.  / 다 자란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을 잘 견디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언젠가 내가 나여도 충분하며, 노력하거나 변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걸 가르쳐준 친구나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준 마음은 그렇게 힘이 강합니다. 시간은 흘러도 마음은 남아 우리를 지켜주니까요. / 시간을 쌓는다는 것은, 마음을 쌓는 일과 같아요. 무엇보다 그렇게 쌓인 마음은 힘이 강해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p.175-179


저자는 스물두 가지의 다양한 기록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라’는 이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내 마음에 닿았던 여러 내용 중 이 내용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나에게 ‘그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져다주어서다. 한동안 ‘기록하는 삶에 초대합니다’를 저자 서명 문구로 사용했고 지금도 가끔은 적기도 한다. 또한 책공방에서 책 만들기 수업을 하며, 또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여러 자리에서 나는 나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한다.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질문은 ‘무엇을 기록하나요?’ 혹은 ‘기록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나는 자기 스스로에게 무슨 기록을 하고 싶은지 묻고 자신이 하고 싶은 기록을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앞으로는 여기에 더해 이 책과 저자의 말을 빌려 ‘사랑하는 것들을 기록하라’고 전하고 싶다. 내가 이런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무엇을 기록해야 하냐’고 묻는 독자에게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테니 지금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하라고 말하더라.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라고 말하고 생각한다고.


“어떤 기록이든 결코 숙제처럼 여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 기록은 어디까지나 즐거워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 그러니 완전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가질 필요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게 편한 방식으로 기록하되, 오로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지속하세요.” p.185     


위 내용은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가장 일치했던 부분이다. 기록을 좋아하고 실천하고 추천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하는 부분은 기록의 목적이다. 내가 기록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단 하나 행복하기 위해서다. 가장 중요하면서 단순한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물론 삶 안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기록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 또한 쉽게 간과되곤 한다. 저자가 소중한 지면을 활용해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그 생각이 나와 같아 반갑고 좋았다. 기록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또 어려우면 즐겁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편하고 쉬운 것과 즐거운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모든 시도가 기록이라는 이야기, 기록은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 준다는 이야기,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면 나의 기록을 하고 싶어진다는 이야기 등에도 크게 공감했다. 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 일상에 먼지처럼 떠돌던 불안감이 점차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내게 위로와 확신을 건네주었다. 매일매일 꾸준히 기록을 하다 보면 확실히 나 스스로를 믿게 되고 이에 따라 불안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잦아들고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요즘 나는 '내가 나를 믿어주는 힘만큼 큰 힘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곤 한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믿는 힘이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이고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그렇다면 그 힘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우리는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등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또 내가 나를 믿는 힘은 남이 나를 믿어주는 힘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고 이루어내는 데서 오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은 이렇게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진다. 내가 좋은 책과 아닌 책을 선별하는 기준 중 하나다. 나에게 줄줄이 사탕 같은 생각을 가져다주는가. 이 책은 내게 기록에 관한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저자가 생각하는 기록의 결이 나와 맞아서 참 좋았다. 남들에게 영향받지 않기 위해 비공개 계정에 기록을 한다는 단단한 저자가 멋졌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기록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기록하는 삶을 살아감에도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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