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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24. 2023

75. 제 몸에 맞는 옷이 최고다

『나를 리뷰하는 법』/ 김혜원 / 유영(다산북스)


75. 제 몸에 맞는 옷이 최고다

『나를 리뷰하는 법』/ 김혜원 / 유영(다산북스)


몇 시간 만에 꿀꺽했다. 어떤 사람들에겐 일반적인 일일 수 있지만 책 느리게 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나에게는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다만 술술술- 읽히지 않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닌 건 맞지만 술술술- 잘 읽힌다고 다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록학교>를 준비하며 여러 권의 책을 구입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책이나 호기심이 가는 책도 있었지만 평소에 나라면 보지 않았을 그런 책도 있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책 중 한 권이었다.


이 책에서 단 하나의 내용만 기억할 수 있다면 이 내용을 기억하고 싶다.


인생의 모든 단계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나에게 맞는 물건이 뭔지,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지, 어디에 가면 갈 수 있는지, 손품을 팔고 발품을 팔고 직접 체험해 보면서 공부해야 한다. ‘No study no gain!’인 것이다. p.85


최근 10년 사이 내가 가장 자주 생각하고 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기 공부다. 시간이 가고 세상이 변할수록 가장 필요한 공부는 다른 어떤 공부도 아닌 자기 공부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그리고 이 공부는 평생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물론 이 공부에는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쌓는 것만 해당되지 않는다. 위 내용은 너무너무 당연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있는 듯해 꼭 기억해두고 싶어서  ‘그래그래, 이 당연한 걸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고 있어.’ 하며 밑줄을 그었다.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있는지 자주 뒤돌아봐야 한다. p.177


취향의 일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의 일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모든 부분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나에겐 한결같은 면이 있다. 위 내용을 보고 나는  “뒤를 돌아보는 것은 힘든 자세다. 그러나 돌아보는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나의 사랑 박노해 님의 글을 떠올렸다. 꽤 오래전에 만났으나 아직까지도 여전히 많이 애정하는 문장이다. 매일매일 기록을 하면서 나는 기록을 하는 일이 뒤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난 일을 곱씹고 되새는 것처럼만 보일 수 있는 기록이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게 하고, 지칠 때마다 그 힘을 길러준다고 믿는다. 저자 역시 기록을 통해 지난 시간의 의미를 찾고,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자 기록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굉장히 힘든 일이 생겨도 평소처럼 행동하면 일상이 돌아온다. 반드시.” _<구룡 제네릭 로맨스> 중에서 p.193


삶에 있어 힘든 시기도 필요하지만 힘든 시기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건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한다. 또한 힘든 시기에 ‘힘내’라는 말의 무효용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면서도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이 책을 읽던 날 마음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책을 잡았던 것도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에라 모르겠다 책이나 읽자’하고 책을 붙잡았다. 그런데 그때의 나에게 이 말이 위로가 되었다. 힘든 사람에게 일상을 유지하라는 말은 어쩌면 혹독하게 들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힘든 시기에 어쩔 줄 몰라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 이 말이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에겐 ‘그래, 아무 일도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져다주어 매우 유용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내 마음에 닿는 문장들도 만났고 나에게 좋은 생각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록에 진심인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이 책의 제목은 물론 표지도 무척 매력적이었으나 책의 내용은 제목이나 표지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 책을 빠르게 읽었다는 건 그만큼 잘 읽힌다는 뜻이고 부정보다는 긍정의 신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잘 만들어진 공산품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잘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 생산된 결과물 같았다. 저자가 기록에 진심이라는 건 충분히 느껴지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은 내용에 비해 너무 과한 옷을 입고 있어 내용을 빛나게 해주어야 할 옷이 오히려 내용의 매력을 가려버리는 듯하다.


표지 디자인이 참 매력적이다. 색감도 좋고 요소 구성도 좋다. 디자인 면에서는 페이지 번호 상단에 있어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고 흠잡을 만한 곳이 없다. 속표지 색깔, 중간중간 내용이 성격이 달라지는 부분에는 표지에 들어가는 컬러를 활용하여 본문을 구성했다. 페이지 번호를 상단에 배치하여 턱턱 걸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여겨지기도 했다.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된 원고를 디자인적으로 잘 풀어냈고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분명 잘 만든 책인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보면 좋을까, 이 책의 어떤 부분을 여러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를 생각했을 때 잘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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