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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15. 2023

77.  “나는 쓰는 사람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출판

76. “나는 쓰는 사람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출판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 번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 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 p.134”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술술 읽히지만 알맹이가 있는 글, 자신이 살아낸 삶에 대한 글.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에게 반했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아니 작가를 만났다. 세상엔 좋은 글도 좋은 책도 많지만 세상의 기준이 나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첫눈에 반할 정도로 멋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엔 그냥 그랬는데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도 있다. 책도 그렇다. 책 소개나 책의 외형만 보고 책을 읽기도 전에 마음을 홀랑 빼앗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을 읽고 나서 더 좋아지는 책도 있다. 이 책이 그랬다. <나의 기록학교> 모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사적인 기록을 찾았고 책 제목, 책 소개, 리뷰 등을 보고 괜찮다 싶어 구입했다. 나는 하재영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전에는 전혀 몰랐고 책을 다 읽고서 나서야 작가가 궁금해졌다.


<나의 기록학교> 모임을 진행하기 전에 미리미리 책을 좀 읽을 계획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내가 읽었던 좋은 책인 『내가 사랑하는 공간들』과 아직 읽지 못해 알 수 없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두 권을 모임 도서로 선정했다. 모임을 앞두고 조급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나의 이야기는 나에 대한, 나를 위한 개인적 기록만은 아니다. 자신 안에 갇히는 나르시시즘적 행위가 아니라 나의 삶을 해석하고 사유하기 위해, 그 다음에는 스스로를 무한히 확대하고 다른 존재와 연결되기 위해 나는 쓰고 싶다. 자전적 이야기라도 그 안에는 사회나 시대, 타자와 관계된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내 이야기에서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기 바란다. p,135 / 216 (작가의 말) 기억하기와 글쓰기의 공통적 속성은 사실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편집한다는 것이다. /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지, 무엇을 부각하고 무엇을 축소할지 결정하는 일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응시할 것인가’하는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책을 다 읽고 살짝 후회했다. 내가 이 책을 미리 읽었다면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기록학교>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물론 윤광준의 『내가 사랑하는 공간들』도 좋은 책이고 내가 많이 좋아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모임, 이 주제에서는 이 책이 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른 말로 전해주고 있었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그 정체성들이 모여 나의 취향과 불호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내 욕망의 많은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p.180-181 / 읽는 데에서 나아가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기만의 방이 가지는 의미는 더 각별해진다. / 고독은 장소를 요한다. 휴대전화를 꺼놓을 수 있고, 창문을 닫아둘 수 있으며,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장소, 실생활과 최대한 먼 장소, 영감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침잠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장소. p.134 /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를 어디인가? p.130”


‘공간은 환경이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공간에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공간과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미 만들어진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그 공간을 재구성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활용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생각이다. 밑줄을 그으며 읽는 처음 읽기 때도 좋긴 좋았는데 그렇게 막 ‘좋다’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두 번째 밑줄 그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전체 읽기를 할 때는 이전에 밑줄 그었던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 자꾸 곱씹게 되었다. 그렇다고 낯설거나 어려운 문장도 아니었다. 그중 하나는 ‘책임지는 삶’이었다. 이 말이 좋아 보고 또 보고 자꾸만 곱씹었다.



“누군가가 승진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사소한’ 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 후자는 전자에게 기여한다. p.143 / 글을 쓰면 쓸수록 가난해졌다. 애초에 직업이 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여겼는지도 몰랐다. 월세부터 생활비까지 거의 모은 돈을 동생에게 의존했다. 나의 글은 가족을 착취한 결과였다. p.84”


어느 때부턴가 나는 내 것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주 어렸을 적에 누군가 세상의 모든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나는 쌀밥을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그때부터 나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내 앞에 놓인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언제가 우연히 접한 하버드 졸업생의 연설을 듣고 더 견고해졌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좋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잘해서만이 아니라 부모의 지원과 희생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그랬는데 이 책에서 이와 같은 결의 글을 마주하니 시선이 머물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쉬운 말로 어려운 이야기를 무심하게 던진다. 작가의 말대로 누군가의 성취가 온전히 그의 것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 명제에 동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이 지금보다 좀 나아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는 물론이고 자신의 실수나 우연의 불일치로 성취하지 못한 것까지 자신의 것이라 여기고 손해를 보았다고 여긴다. (처음 산 가격보다는 비싼 값에 팔았으면서도) 값이 오르기 전에 집을 팔아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주식이 올랐다가 내리면 자신의 원금과 상관없이 손해를 보았다는 식이다. 나는 이런 발상이 두렵고 무섭다.


“읽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사유, 다른 경험을 흡수하는 일이다. p.133 / 책은 전복적 세계, 또는 세계의 전복을 꿈꾸게 만든다./ 각자의 안에는 그가 살아온 집이 있다. 그 집의 생김새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며,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꺼내놓을 때 그것은 다른 이들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그것이 쓰고 읽는 일의 본질이다. p.214”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 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 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p.84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이 집이 온전한 나의 집이 되리라 믿었다. 내가 바꾼 공간이 이곳에서 보낼 나의 시간을 바꾸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p.104/  불운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그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p.121


오래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좋다. 시간이 느리고 태평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좋다. 산이 많고 아파트가 없으며 골목이 남아 있는 것이 좋다. 햇살과 바람을 맞으면서 숲길을 걷는 것이 좋다. / 예전에 살았던 집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장소를 목격했을 때 나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그것은 물리적 구조물, 기둥과 지붕을 잃는 일이 아니었다. 그립지만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곳들. 낡아서 사라졌거나 낡기도 전에 사라진 곳들, 그곳에서 나의 과거도 휘발해버린 것 같았다. 오래된 장소는 사라진 것들을 대신한다. p.180”


읽는 것은 글자가 아닌 이야기이며 누군가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점, 누구나 각자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으나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마음, 좋아하진 않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마음, 나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경험, 간절함을 시간과 노력으로 치환하며 희망을 품었던 경험, 오래된 것과 산 그리고 골목을 좋아하는 취향 등등 내 마음에 쏙쏙쏙 들어오는 구절이 너무 많았다. 추리고 추렸는데도 이 정도다. 사실 조금밖에 안 추렸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어려워 맘껏 욕심을 부렸다. 읽고 쓰는 삶, 책에 대한 사유도 나와 결이 맞았고,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취향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다다 너무 좋았다. 책공방에 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멋지게 초대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해 아쉽지만 곧 때가 오겠지 싶다. 만날 사람은 언제든 만나니까. 그때를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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