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일기장을 시작했다
230819
서른두 번째 일기장을 시작했다
새하얗던 일기장에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졌다. 꼬질꼬질해진 일기장을 일기장 전용 보관함에 넣어 두고 초록초록 올리브 색의 새 일기장과 만나기 시작했다. 손 글씨 일기를 못 끊고 있다. 한동안 손이 아파 손 글씨 일기를 쓰지 않았다. 내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풀어놓던 SNS 기록도 자제 중이다. ‘무엇이 중한디’를 가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쓰지 않으니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하지 않으니 중요한 게 점점 없어지는 기분이다.
아팠던 손은 치료를 받고 운동을 하고 덜 쓰니 나아졌다. 아침마다 붓던 손이 안 붓는 날이 생겼다. ‘아 이제 괜찮아졌구나’ 생각하고 다시 손 글씨 일기를 재개했다. 업무일지에 써두었던 메모 같은 일기를 옮겨 적기도 했다. 그동안 밀린 일기를 차곡차곡 다 쓰고 요즘은 매일 매일 일기를 쓴다. 그러자 다시 손이 아프기 시작해서 손 마사지기를 샀다. 아침에 일어나서 15분, 자기 전에 15분. 아직은 테스트 기간 중이지만 손이 아파도 속수무책이던 시간에 무언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무엇이든 ‘적당히’ 그리고 ‘잘’이 중요하다. 이 두 단어는 참 좋은 말인데 너무 오염되어 본래의 뜻을 잃은 듯하다. 앞으로 100권의 일기장을 더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쯤되면 세이모어 할아버지처럼 쓰지 않아도 좋은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쓰지 않아도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