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5 <나의 기록학교> 열일곱 번째 모임 후기
요 며칠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찾아온 듯했는데 아직 여름임을 증명하듯 푹푹-찌는 날씨가 돌아왔다. 이제 그만 가을이 와주었으면 싶고 가을이 와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더워진 날씨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허나 한편으론 이렇게 어쩔 수 없어서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서 좋은 날씨를 만나면 더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9월의 다섯 번째 날을 ‘나의 기록학교’ 열일곱 번째 모임과 함께 했다. 중반에 이르다 보니 처음 시작했던 기세가 흐물흐물해진 것인지 첫 모임의 기세와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오늘은 각자 자신의 일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 근황 토크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장소로, 누군가는 책 제목으로, 누군가는 단어 혹은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순서도 방법도 각자의 선택에 맡긴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인데 오늘처럼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에는 내가 틀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부터 든다. 그동안 신기하고 흥미롭다고 여겨지던 다름의 포인트가 오늘은 조금 버거웠다.
130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 180-181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모임에 이어 ‘공간’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책에는 인상 깊은 구절이 많았고 이에 따라 함께 나눌 만한 질문도 많았다. ‘동네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집에서 나의 공간은 어디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나의 자리가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자유롭게 질문을 제안하고 그 질문 중 각자의 이유로 함께할 만한 질문을 선정한다. 각자의 생각대로 질문은 만들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과 대화하고 사유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피곤한 탓인지 어쩐지 오늘은 자꾸만 뚝뚝 끊어지는 흐름에 갈망을 못 했다. 공간과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사람과 사람 간에야 말해 뭐 할까.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덩달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손해 보지 않으려 나쁜 사람이 되기 쉽다. 좋거나 나쁨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동화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사람은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는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아주 간단한 과정 안에서도 변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또 사람에 따라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를 신뢰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갈등을 낳는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경험은 공평하다. 내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는 동안 상대방 또한 나의 말과 행동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인식한다. 나를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볼 수 없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면 그 또한 나의 모습 중 하나다.
바쁜 일상 때문인지 두 권 중 한 권을 택하는 부담 때문인지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참여자가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책임한 태도라는 생각에 서운하고 화가 났을 텐데 이제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모임도 삶도 각자 자신이 한 그만큼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러니 누군가의 선택과 결과에 대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일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내 역량껏 벌어지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일상 중에 틈을 내어 이 자리 앉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많이 낸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