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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Nov 17. 2019

나의 기록은 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다

190918ㅣ 제1강 입학식,  기록의 힘 _김진섭

                                                                                                  2019 제4기 책공방 책학교(9/18~11/6) 기록

참고: 이번 책학교 4기의 기록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사태에 놓인 공방지기 대신 ‘기록자 엄’님이 맡아주었습니다.


나의 기록은

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다



책공방 그리고 책학교와 함께하게 된 사연


 책공방과 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년 여름, 첫 일기장 제작을 준비하며 책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책공방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삼례’가 완주군인지 전주시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여행을 왔다.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빈티지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벽면 책장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그리고 18년 5월, 나는 다시 삼례에 왔다. 이번엔 여행이 아니라 이사였다. 완주 삼례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설레 언니는 나에게 여러 번 ‘책공방이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책공방 바로 옆 목공소에서 6개월간 책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책공방에 다시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한 번 가봤으니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유월 즈음 승희쌤에게 자두를 받으러 간다는 설레 언니를 쫓아 책공방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되었다.     



3년 만에 방문한 책공방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많이 달라진 듯했다. 그렇게 나와 책공방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여행으로 왔던 날 누군가를 만났으나 그게 누구였는지 아니어서 책공방 사람들과의 만남은 첫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책공방 관장님은 몇 년 전부터 일기를 써왔고 나만의 일기장이 필요해 일기장을 만들고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처음엔 그냥 하시는 말씀인가 했는데 옆에 있던 승희쌤이 진짜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책공방과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일이 마치 통과의례였다는 듯이 그 일을 무사히 마치자마자 연달아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이어졌다. 처음 일도 그렇지만 이번 일도 역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끌림에 '해보겠다' 고 나섰다.


책공방과 함께하는 두 번째 일은 바로 이 글을 쓰는 것 즉 책학교를 기록하는 일이다.     




우석대학교 학생들과

책학교 4기를 시작하다

책공방 아카이브 06 ㅣ 책공방, 꿈을 기록하다


  이번 책학교 4기는 우석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이전의 책학교는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다면 이번 책학교는 우석대학교 학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수업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책공방 관장님(이하 ‘교장 선생님’)과 승희쌤과 함께 수업 준비를 했다. 교장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책학교 친구들이 수업을 들을 테이블에 책을 한 권을 놓았다. 이 책은 책공방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며 다이어리 대신 여기에 기록을 하게 할 거라고 했다. 이미 만들어진 책에 기록을 하다니 조금 아니 많이 낯선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 배치도 대각선 방향이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워 오자 두 명의 친구가 도착했고 수업시간인 6시가 조금 넘어서야 우석대 담당 선생님과 학생들이 우르르 도착했다. 모두가 어색하기만 한 첫 만남 그리고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만남이니 만큼 으레 그렇듯 자기소개를 하겠거니 했는데 내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그저 ‘열심히 기록하겠습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앞에 있는 책은 선물이며 앞으로 6주 동안 ‘기록’에 대한 강의와 특별 워크숍을 통해 자신이 직접 책과 졸업 증서를 만들 것이라 소개하니 여기저기서 ‘우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오늘은 책학교 첫 수업이니 만큼 교장 선생님이 직접 강의를 맡으셨고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인생보 주제 문구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여러 번 책공방에 방문하고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도 처음 듣는 인생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정도였다.     




교장 선생님의 젊은 날을 만나다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왜 지금의 이러한 길을 가게 되었는지를 자신의 젊은 날 이야기로 대신하였다. 교장 선생님은 두세 번의 직장생활 뒤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잡지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런 기대와 달리 멋진 사람들만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매일이 야근과 철야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잡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여러 가지가 매력적이어서 10년 동안 일을 했다고 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며 교장 선생님은 잡지에서 나오는 멋진 박물관이나 가게 그리고 서점에 직접 가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30대 중반 즈음 그 결심은 현실이 되었다고 했다.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2주 동안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을 할 계획이었으나 첫날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을 관람으로 인해 일정이 꼬여버렸다고 했다.


도서전이 처음이었던 교장 선생님은 ‘하루 이틀이면 다 둘러보겠지’ 하고 생각을 했으나 행사장은 넓어도 너무 넓었다고 한다. 그 넓은 행사장 안에는 수많은 부스들이 빼곡하게 자리했고 그 부스들마다 이제껏 보지 못한 다양한 책들이 자신을 펼쳐 보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25년 전인 그때부터 그곳에서는 비닐 백이 아닌 천가방에 책을 담아주는 것을 보고 문화 충격을 단단히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행사장을 돌아다닌 지 4일째부터는 몸이 아플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전시장 곳곳을 빠짐없이 보고 싶은 마음에 울며 기며 돌아다녔다고 했다.     


몸이 힘든데도 불구하고 교장 선생님을 움직인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를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도서전에서만 8일을 보내고 오른 한국행 비행기에서 교장 선생님은 한국에 돌아가면 자신의 책을 출판할 계획에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 두근거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설렘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또한 내가 원하는 나의 일기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할 생각을 하며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여전히 나에게 설렘을 가져다주는 일 중의 하나이다. 교장 선생님은 잠을 청하기 위해 위스키를 세 잔이나 마셨음에도 설렘과 흥분이 뒤섞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한국에 도착하셨다고 했다.     



책 잘 만드는 책(2013 개정판)_ 김진섭 지음


인생을 바꾼 첫 책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한국에 돌아와 그 열기가 식기 전에 서둘러 책을 만들었다고 했다. 첫 책이니 만큼 이상이 컸고 그에 비례하여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그 시간은 무척 행복했다고 한다. 이 책만 세상에 내놓으면 자신의 인생이 변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만든 그 책은 자신의 바람대로 인생을 바꾸어 주었지만 그 과정 또한 지난했다고 한다.


원고는 물론 디자인까지 완성해 그것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교장 선생님은 500부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비출판을 하다시피 해서 4,000부를 찍었다. 이것이 출판계의 교과서로 통하는 ‘책 잘 만드는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교장 선생님의 생각대로,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7개월 만에 4,000부가 매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기적을 몸소 체험한 교장 선생님은 이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한번 ‘책공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since 2001 책공방,

모으고 기록하고 만드는 이야기


 그렇게 해서 교장 선생님은 회사를 나와 책공방을 시작하였고 책공방의 역사는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일기를 쓰며 책 그것도 책 만들기에 관심이 많은 나조차도 책공방이 낯설기만 한데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에 책공방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책공방이 하고 있는 일을 ‘전시/체험, (책과 관련된) 출판, 교육, 아카이빙’ 이렇게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소개해주었다. 책학교, 인생보, 자서전, 책 만들기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네 가지 큰 틀을 알고 나니 머릿속 서랍에서 정리가 되어 책공방이 좀 더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어서 '수집도 기록이다', '잡물도 모으면 보물이 된다', '기록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등 멋진 문장을 이야기하며 기록과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평소에 내가 실천하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어서 마치 이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또 교장 선생님은 책공방표 다이어리에 기록한 자신의 기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중에는 여행하며 그린 그림들도 있었는데 잘 그려서 놀란 것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느는 그림실력을 보며 꾸준한 기록의 힘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떠올려도 그려지지 않는 시간의 기록은 정말이지 보물이었다.   

  

그밖에도 지역 어르신들의 기록을 모으고, 젊은이들에게 기록을 장려하고, 직접 손으로 책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이제는 사라져서 쉽게 볼 수 없는 오래된 기록을 전시하고, '1년 1책 자유 출판‘을 진행한다 등등. 교장 선생님의 친절한 책공방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기로 결정하는 일에 비해 실천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할까 말까 고민만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은 나 또한 경험해 본 적이 있어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교장 선생님은 책공방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책 문화를 실천하고 있어 책공방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전하는 일이 자신이 생각하는 책 문화를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삼례 책공방과  교장 선생님의 고난 로드


 책공방을 만나고 내가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책공방 안에 있는 이 수많은 기계와 물건들을 가지고 다른 여러 지역들 중에서 왜 ‘삼례’에 오게 된 것일까 였는데 오늘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200평 이상의 넓은 공간, 6미터 이상의 높은 천장, 문화의 중심지.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곳에서 책공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 책공방이 자리한 이곳의 경우 앞의 두 조건이 안성맞춤이었으나 세 번째 조건이 마음에 걸려 이를 두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생각의 전환을 하여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책 문화’ 하나만큼은 내가 있는 곳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대구에서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나는 홀몸이었음에도 그러했는데 자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온갖 물건들을 다 가지고 내려온 교장 선생님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이곳에 내려와서 견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내 눈에는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 멋지고 대단해 보이기만 했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의 뒷이야기처럼 교장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교장 선생님의 고난 로드는 크고 무거운 기계들을 옮기는 이사 과정부터였다. 지금 책공방의 있는 물건들을 실은 트럭이 수차례 다녀간 후 그것들을 정리하고 배치하는 과정은 온전히 교장 선생님의 몫이었다. 그렇게 6개월 가까이 오픈 준비를 하며 살이 쭉 빠져서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단다. 삼례문화예술촌 개관과 함께 책공방도 문을 열었으나 책공방에 있는 기계나 물건들을 고물 취급하며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마주하다 보니 그동안 보물이라 여겼던 기계와 도구들이 어느 순간 짐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의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도 막연하게 공방에 있는 것들을 보며 ‘이걸 다 관리하시려면 정말 힘이 들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힘듦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뎌 준 덕분에 나를 비롯한 책학교 학생들과 책공방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록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마법이 아닐까


 '기록은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다'라는 마지막 슬라이드의 문장이 나타났다. 이 문장과 함께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화두’ 즉 평생의 질문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집이든 글쓰기든 기록을 통해 나만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고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단 한 사람, 즉 내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된다고 되어 줄 것이다. 교장 선생님을 만난 우리가 붕어빵을 만든다면 모양도 맛도 크기도 똑같은 붕어빵이 아닌 팥의 양이 조금씩 다를지도 모르고 겉모양이 조금씩 다를지도 모르고 앙금이나 반죽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를 수도 있다.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기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기록이든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은 모인다. 그리고 기왕 남기는 것이라면 깨어서 진실된 기록을 남겨야 할 것이다. 모인 기록을 통해 거짓 자아가 아닌 참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교장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기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기록’에 전혀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제라도 눈을 뜨면 된다고 했다. 여기에 앉아있는 열두 명 중 단 두 명이라도 이 시간을 통해 변화된다면 오늘 강의는 충분하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나는 감히 우리 모두가 마음에 크고 작은 변화를 느꼈고, 크든 작든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자 엄-님

편집자 공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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