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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01. 2023

0530 문화는 이어지고 전해질 때 '진짜'가 된다

서울인쇄센터 「활판공방탐사」북토크 리뷰

0530 문화는 이어지고 전해질 때 '진짜'가 된다

- 서울인쇄센터 「활판공방탐사」북토크 리뷰


서울인쇄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인쇄인 포럼’에 「활판공방탐사」 북토크로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선생님은 ‘기술을 넘어 문화를 전하자’라는 주제로 계승의 문화, 숨어있는 콘텐츠의 발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기록, 진심으로 레터를 대하는 태도 이렇게 네 가지를 이야기했다. 나도 선생님이 전해주신 배턴을 냉큼 이어받아 ‘업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그리고 세대 전수와 공존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공방 1년1책 프로젝트. 2019 활판공방탐사

나는 사람에게도 운이 있듯이, 책에도 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활판공방탐사」는 지지리도 운이 없던 책이었다. 「활판공방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2108년은 책공방에게도 나에게도 참 어려운 시간이었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던 2019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드라이아이스처럼 너무 차가워서 뜨거울 정도로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한 상황에 눈치 없이, 속없이 책 홍보를 할 수 없어 그저 애만 태우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활판공방탐사」는 존재 자체로 책공방과 나에게 큰 선물과도 같았다. 그 어려운 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에게는 물론 책공방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어떻게 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책공방의 정신은 이 시기를 겪음으로써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기에 책 자체로 보자면 참으로 운이 없었다 할 수 있으나 그것과 별개로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북토크 자리를 갖게 되니 무엇이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선생님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었고 계속해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사람 일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많은 일과 시간을 지나쳐 나 또한 오랜만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이야기는 여전했지만 새로웠다.


비슷한 것 같지만 매번 새롭고, 새로운 것 같지만 큰 맥락은 동일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거름 삼아 나는 책공방에서 꿈을 키웠고 자라나는 꿈과 함께 생각과 마음도 커졌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수많은 이야기와 책공방에서의 무수한 시간을 먹고 자라 어느덧 만 10년 차 ‘책공방 이승희’가 되었다.


그동안 선생님은 내게 몇 번이나 이번 강의는 ‘네가 맡아라.’ 혹은 ‘강의 중 일부는 네가 해라’ 등의 이야기를 하셨으나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번도 ‘네, 알겠습니다.’ 한 적이 없다. 몇 번이나 강권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앞에 서곤 했지만 그 시간이 달가웠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참으로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제자였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이번에는 선생님의 제안에 두 말 않고 ‘예스’로 답했다. 참말로 세상은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고, 사람은 겪어 보아야 한다는 말은 맞아도 너무 맞는 말임이 확실하다.


선생님과 내가 나누어 이야기하기로 큰 틀의 강의 계획이 세워지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생님과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 계획을 논의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선생님은 ‘기술자’와 ‘장인 정신’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했고, 나는 ‘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와 ‘세대 전수와 공존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디데이인 오늘, 오랜만에 마주 앉아 책공방과 책공방 출판사에 대한 대책 회의와 앞으로 진행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고 강연 장소로 향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뀐 것인지, 서울이라 그런 것인지, 인쇄인 분들이 그런 것인지,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J라서 그런 것인지, 강의 시작 10분 전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워주고 계셨다. 강의 시작 전 10분이 되어도 참여자들이 오지 않아 마른침을 삼켜야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라 이러한 광경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시간 약속이 칼 같은 참여자들 덕분에 원래 예정보다 5분 일찍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처음으로 이 책을 쓰고자 마음먹었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못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인쇄술이 들어왔던 일제강점기 이전의 박문국이 처음 생기던 때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선생님 이야기의 중심축은 문화는 이어져야 한다는 것과 자신만의 아카이브가 필요하다였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보고 느꼈던 ‘활판도쿄’의 인상적인 포인트부터 시작해 위기라고 느껴지는 순간 인식의 변화를 꾀하여 보자, 각자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이 지향하는 문화의 초점을 맞춰 보자, 어떠한 일의 실행 여부를 결정할 때의 바람직한 기준은 무엇인가, 어떠한 마음으로 나의 일을 대하고 있는가, 일을 하는 과정 중에 하게 되는 수많은 판단에서 우리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하기 싫거나 어려운 일 또한 하고 싶은 일 안에 포함된다는 이야기까지.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라 많이 떨리고 긴장을 했지만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주어진 시간 안에 전했다.


오랜만에 입이 터졌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내가 간절히 바라는 바는 청산유수도 유려함도 완벽함도 아니다. 진정성 있는 메시지 전달 단 하나다.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진심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 다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제는 그러한 이야기가 잘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과 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질문이 이어지고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뒤풀이에 참여해 다음을 기약하는 이야기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책공방 탐사」 책공방 편의 제목으로 ‘문화는 이어지고 전해질 때 진짜가 된다’라고 썼다. 다른 문화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책공방 문화는 특히 더 그렇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제목이었는데 오랜만에 책공방의 이야기와 함께 책공방표 문화가 전해지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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