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엔 행운이 선물해 준 여행을 떠나니까
지난 월요일 해고통보를 받았다. 5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꿈을 키우던 곳에서 하루 아침에 직원 채용이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전화로.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더니 상대편에선 통보를 했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다시 연달아 다섯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전화 내용은 조건이 안 맞아 계약을 못하겠다는 것이었고 내가 무슨 조건을 이야기했냐고 하니 몇개월 전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조건을 다시 열거하고 맨 말미에 4대보험을 언급한다. 우리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대게 중요한 얘기는 가장 마지막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 또한 이 ‘대게’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에선 다른 해보다 높게 오른 최저시급으로 인해 실업자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일자리 안정자금’을 주고 있는데 그런 2018년 6월말에 내 앞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때때로 생각해서 뭐하냐는 말을 하곤 한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음을 떠올리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생각해서’가 아니라 ‘생각만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것이다. 생각은 내가 원하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을 통해 얻은 방법들을 실천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깨닫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처해있는 현실이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을 대서 다듬고 나면 저쪽이 또 마음에 안 들고 저쪽을 매만지고 나면 전체적인 흐름이 이상해져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욕이 불타오르기도 한다.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진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았지만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통보를 받긴 했지만 그것이 현실로 적용되는지 여부를 따져보아야 하기에 아직 내가 진짜로 일터이자 꿈터였던 곳을 떠나게 되는지는 미지수다.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냐고, 뭐 이런 일이 다 있냐고 많이들 그러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어 당하고 보니 할 말이 없다. 어쨌든 나의 상황이 이렇게 복잡다단하여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혀도 잠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넋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마음 편히 걱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걱정도 맘껏 할 수 없는 상황에 울어야 할 지 걱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상황에 웃어야 할 지 모르겠다 하니 나의 멘토는 나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띄웠다.
선생님 앞에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슬퍼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분해서 울고 서운해서 울고. 선생님이 나를 동네방네 울보라고 소문을 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멘토랍시고 하드트레이닝을 해주시는 바람에 나를 힘들게 해서도 울었지만 내 마음이 정상이 아니라서 조그마한 일에도 눈물이 많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5년 전에 나는 괜찮은 것처럼 꾸몄지만 괜찮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2009년 6월을 기점으로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지금도 많이 아팠고 그 시간 덕분에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팠던 것이 사라지거나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기다릴 여유가 없었고 나는 또 다른 상처가 생길 것만 같았던 상황에서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렇게 뛰쳐 들어 온 세상에서도 마음에 흡족할 만한 것이 없었다.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는 했지만 머리도 마음도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다.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이번엔 도망치는 것이 아닌 뛰어 오르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도전과 자극이 필요했고 그러한 바람 덕분이었는지 선생님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꿈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서 인지 서로 다혈질에 솔직한 성격이라 그랬는지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기록을 갱신 중이었는데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지난 6개월간 근로조건 및 임금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지만 내 인생에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있으면서 한 해 한 해가 참 다이나믹했는데 올해처럼 다이나믹한 것은 처음이다. 보통 1년 동안 있는 일이 올해는 6개월에 몰아친 듯하다. 현재는 비록 이런 상황이긴 하나 올초에는 생각지 않게 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스페인에 다녀왔다. 꽉 막혔던 숨통이 조금 틔이는 듯 했고 그제서야 세상밖으로 나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흥미로웠다. 이것만도 참 좋은 일이나 어쩌다 보니 다음 달엔 지원금을 받아 일본에도 가게 되었다.
나는 사실 일본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일본에 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쁘다는 일을 굳이 할 필요로는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생각했고 그럼 일단 주사위를 던져 보자 했는데 황금열쇠가 나와버렸다. 그리고 황금열쇠는 나를 일본으로 데려가 줄 것을 약속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조건들이 붙었는데 무슨 일인지 나는 무사통과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황금열쇠 결과 발표가 날 때에도 지금처럼 상황이 좋지 않아 맘껏 기뻐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황금열쇠를 받기 위해 부랴부랴 1차 계획을 세우고 틈틈이 자료조사를 했다. 1차 계획 당시 자료조사를 하긴 했으나 세부적인 조사가 필요했다. 말이 여행이지 내게 이건 출장에 가까운 일과 같은 느낌이다. 뭐 물론 내게 일은 공부의 느낌이 강하다. 내게는 일과 공부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일을 하며 하는 자료 조사가 공부같고 퇴근 후 나를 위한 공부가 일 같이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얻고자 하는 것이 명확히 있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뭐 물론 그 답이 어떤 내용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내가 예상하는 답이 맞을지 궁금하다. 지금 내 앞에 처한 일의 결과에 따라 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 예감하늣 이번 여정 또한 향후 5년 혹은 10년 후에 살아가게 될 현재에 기초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우선 내가 도쿄에서 궁금한 곳을 모두 정리하니 20곳 정도가 되었다. 지난 한 달 간 20곳의 홈페이지 및 SNS를 들락달락 거리며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살펴 보았다. 찾다보면 새로운 곳이 끈임없이 나와 목록이 추가되었다. 또 처음에는 무척 궁금했으나 자꾸 보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컨셉과 다른 곳은 목록에서 삭제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통에 목록은 수정의 수정을 거듭했다. 통역해줄 친구의 스케줄이 확정되지 않아 어느 곳을 몇 곳이나 가야할 지 결정할 수 없어 일단 목록만 만들어 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통역해줄 친구의 스케줄이 나오고 주어진 스케줄 안에서 최대치와 최소치를 뽑았다. 최대 10곳에서 6곳 정도가 되었다. 5일은 짧지 않은 기간이긴 하였으나 내가 꼭 가고 싶은 곳들은 꼭 멀리 있었고 그들이 문을 여는 시간 내가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니 하루에 두 곳이 알맞았다. 하지만 운 좋으면 3곳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실은 모두가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스케줄을 빡빡하게 짰다.
그리고 오늘, 열 곳에 메일을 모두 발송했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내가 일본어로 메일을 보낼 수 있다니 식상하지만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어떤 곳에서 어떤 답변이 올까 기대된다. 이제 통역이 없는 동안 나혼자 눈으로만 볼 곳들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겠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두 곳에서는 답변 메일이 왔다. 환영한다는 메시지였고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변이었다. 시작이 좋다.내일 부터 아니 오늘 부터 태풍이 온다는데 날씨가 참 좋다. 조금 흐리긴 하지만 미세먼지 없고 온도도 적당하고 바람도 아직은 살랑살랑 이다. 내 삶에도 태풍이 오긴 했지만 태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안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나고 보면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태풍에 물건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채비를 하면 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