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19 제1강 기록으로 책을 만들다_김진섭
2018 제3기 책공방 책학교 기록
180519 제1강 기록으로 책을 만들다_김진섭
책공방 책학교 세 번째 장이 열렸다. 책학교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책을 만드는 학교라고 생각하는데 책공방 책학교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내 손으로 수제 책을 만들어 보는 과정이 있고 각자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맞다고 볼 수 있고 이 과정을 다 듣는다고 해서 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틀리다고 볼 수 있다. 책공방 책학교는 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학교는 맞으나 과정만 이수한다고 책이 만들어지는 학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정만 이수하면 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과정을 준비하는 측도 과정에 참여하는 측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치보다 잃는 가치가 많다는 생각에 호흡을 고르기로 하고 앞으로 10기 정도까지는 기초를 다지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 2기부터는 ‘나도 책을 만들어 볼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말랑말랑 과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장은 책공방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기록’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주제를 잡고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너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책공방은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다행히도 제3기 책공방 책학교 ‘기록(아카이브)이 책이다’라는 다소 낯선 주제에도 여러 분께서 관심을 보여주셨고 열 사람의 수강생도 모집하였다. 나는 다소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는 이 과정에 수강신청을 한 분들이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이 과정을 신청하셨을까 무척 궁금했던 터라 신청서가 들어올 때마다 셀레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확인하곤 했다.
간단하게 입학식을 마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미술치료사로 활동하시면 그림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시고 내 손으로 만드는 책에 관심 있는 희정쌤, 독서동아리 활동 시간에 책공방에 방문했다가 기록에 대해 감동하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는 순화쌤, 한 달 동안 사진 찍은 카메라를 잃어버린 후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상진쌤, 생명공학 공부를 하다 지역에 내려오게 되었고 그러면서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가은쌤, 1기 때부터 사람이 좋아서 자꾸만 오게 된다는 이든쌤, 책공방에 여러 번 방문하며 이런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망설이기만 하다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었다는 진영쌤,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청소년 친구들에게 책을 만들어 선물하면서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선경쌤, 어머니께서 10년 동안 쓴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은선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책으로 내고 싶은 글쟁이 보현쌤, 자신이 보았던 감동적인 그림책처럼 멋진 책을 만들고 싶다는 금자쌤, 떠오르는 생각이나 일상의 결과물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우리쌤까지. 각자 자신만의 다른 이유와 생각을 가지고 책공방 책학교에 오신 이 분들이 나는 무척이나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다. 보통 여러 사람이 모이면 몇몇 사람은 서로가 잘 맞겠다거나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오늘 자기소개만으로는 도통 누가 누구랑 잘 맞을지 어쩐지 감이 오질 않았다. 자기소개를 통해 만난 수강생분들은 하나같이 각자 고유의 색깔을 또렷하게 지닌 것 같아 보였다.
첫 대면의 어색함이 사라지기도 전 우리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야 했다. 지난 1기나 2기 때와 달리 3기는 6차시로 짧게 구성되어 첫날부터 입학식과 함께 특별 워크숍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별 워크숍의 강사는 당연히 책공방 교장쌤이었다. 교장쌤은 ‘우리 학교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책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와 봤더니 책 만들어 주는 학교가 아니라고 하고 특별 워크숍이라고 해서 책 만들기를 하는구나 했더니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니 아마도 수강생 분들은 많이 의아했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과 낯선 공간에 앉아 책을 만드는 것을 좀 배워보려고 했는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말은 안 했어도 다들 속으로는 ‘응?’하는 반문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교장쌤은 항상 이렇게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즐겨하신다.
물론 이어서 자신의 의도를 이야기함으로써 의아함은 사라졌다. 책학교 3기를 준비하며 나는 신이 났다 기운이 빠지길 반복했는데 수업시간에서 그 과정은 계속되었다. 지난 1기 때도 2기 때도 교장쌤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예정시간보다 수업이 늦게 끝났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작에 앞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셔도 조금 참으시라는 당부를 드렸고 선생님은 그러겠다고 철석같이 대답을 하셨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시자 여지없이 나와의 이야기는 새까맣게 잊으신 것인지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그 바람에 4시에 마치기로 한 수업은 그 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어진 5시 30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무사히? 수업은 마무리되었고 열 명의 사람들이 한 분 한 분의 색이 담긴 열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오늘 수강생 분들께서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지’였다. 그러게 이게 뭐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떨리게 했을까 싶지만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보면 이 책을 잘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 예쁘게 완성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기대감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 덕분이었는지 각자의 결대로 책이 멋지게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돕고 지켜보았던 나는 오늘 만들어진 열 권의 책에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채워져 자신만의 책이 완성되길 간절히 바랐다.
책공방 책학교 과정 중에 진행하는 특별 워크숍은 책학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책공방 책학교를 기획하며 선생님과 내가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록을 통해서 책을 만들 수 있구나, 책은 또 하나의 기록이구나’ 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의 마음에 심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그동안 ‘Book Works’라는 코드를 가지고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선생님의 방식으로 기록을 해왔기에 지금의 책공방이 있는 것처럼 지역 청년이 무언가의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기록하여 자신만의 콘텐츠를 승화시킨다면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지역이 담길 것이고 그것은 지역의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이러한 기록은 책공방의 기록임과 동시에 나 개인의 기록이 될 수 있고 책공방을 품고 있는 이 지역의 기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책학교를 통해 선생님과 나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관심 갖는 분야를 각자의 방식으로 꾸준하게 기록하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기록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그 책은 물론 그 사람은 지역의 큰 자산이 되리라는 나름의 큰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