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Sep 20. 2018

우리는 왜 지금  기록을 이야기하는가

180520 제2강 기록의 시작은 바로 나부터_안정희

2018 제3기 책공방 책학교(5/19~6/2) 기록

우리는 왜 지금

기록을 이야기하는가  

  

 ‘아카이브가 무엇인가요?’

세 번째 문을 여는 책학교 3기의 두 번째 장은 ‘기록이 상처를 위로하다’라는 책의 저자인 안정희 작가님께서 맡아주셨다. 지금은 ‘아카이브’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내가 처음 강사님의 책을 보았던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나도 처음 누군가에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듣고 ‘아카이브가 뭔가요?’ 하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카이브’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부터 책공방에서 하고 있는 일이 아카이빙이고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이것이구나 싶어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책공방에서 자서전 학교를 하면서 기록이 중요하고 그 기록을 모으는 일이 중요함을 깨달았으나 내가 깨닫고 느꼈던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있어서 항상 부족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강사님의 책은 마치 교과서처럼 그것이 왜 중요하고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고 ‘맞아 맞아’ 하며 격하게 맞장구를 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강사님은 나중에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은 분 중에 한 분으로 내 마음에 저장을 해두었던 터였고 그러한 경험으로 이렇게 강사님을 모시게 되었다.     

책학교 교장 선생님과 안정희 작가님


 이론 수업에 있어 첫 시간이니 만큼 강사님은 아카이브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아카이브는 기록물이 모아진 자료가 있는 공간을 뜻한다. 그리고 그 자료를 수집•보관•관리하는 일을 아카이빙이라 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아카이비스트라고 한다. 아카이빙을 하려며 또 아카이브가 있으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는 도대체 왜 기록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답으로 누군가는 ‘치유’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기억’을 이야기했다. 강사님은 둘 다 맞는 이야기라고 하시며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었다.     




더불어 우리가 기록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벌어지는 신기한 편집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리는 똑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을 하기 마련인데 이는 서로의 입장 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기억을 보존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사실을 기억하기보다는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우리가 접했던 사실은 명사, 동사, 형용사 순으로 날아가고 그때 당시의 느낌만 남아 그 느낌에 의해 사건이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작은 사회일 경우 큰 문제가 없으나 사회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큰 문제가 되니 그 정보를 안정적으로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사회가 커질수록 함께 커지게 되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조금 놀라운 것은 인간에게 글이라는 것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3천 년 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처럼 누구나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은 인간의 2만 년 역사 중에서 0.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록을 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그것을 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어야 했다. 기록 안에는 자연스레 정보가 담기게 되고 그 정보를 많이 획득할수록 인간은 최고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록과 권력을 서로를 보강하는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기록되지 않은 것은 기억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쟁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똑같은 전쟁을 겪었으나 우리는 서로 다르게 전쟁을 기억하고 있고 그 전쟁의 기록 대부분은 그때 당시 권력을 지녔던 일본이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기록은 가해국과 피해국의 차이도 있으며 국가의 기록과 개인의 기록이 다른 지점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이창래의 장편소설 ‘척하는 삶’과 니콜라스 뉘첼의 ‘다리를 잃는 걸 기념합니다’라는 두 권의 책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다. 강사님은 두 번째 책을 소개하시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도 그 할아버지의 기념일에 참석하고 싶어 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강사님께서 어찌나 흥미진진하게 책 소개를 해주시는지 강사님의 책 소개를 들은 우리는 '저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다음은 오키나와 이야기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면서 한편으론 전쟁의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오키나와에 스물세 곳이나 되는 지역출판사가 있고 그에 걸맞은 서점 그리고 매년 북페어를 연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후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기록이 꼭 필요함을 심어준 강사님의 이야기는  '우리는 왜 지금 기록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강사님은 '문화'를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는 새로 성장만을 추구하며 공장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시대가 아니며 신발이 없어서 신발을 새로 사는 시대가 아니라며. 이제는 문화가 필요해진 때이고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되돌아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네 삶이 어디로부터 비롯되고 대두되었는가를 아는 사람이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남아 있는 분들의 기억도 신통치 않다며 그 시급함도 이야기하였다. 책공방에서 하고 싶은 일들 중에 하나는 장인 선생님들이 떠나시기 전에 책공방에 있는 기계마다 하나하나의 매뉴얼 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강사님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기록으로 기억을 복원해야 하며 복원된 기억의 역할, 우리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등등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줄줄이 사탕처럼 흘러나왔다.     



강사님의 말에는 입말들이 살아 있어서 ‘기록’과 ‘아카이브’라는 딱딱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두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많은 이야기가 내 마음을 울리고 보약을 먹은 듯 마음을 든든하게 하여 힘을 주었지만 그중에서 꼭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문화란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잊어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문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화에 대한 나름의 정의였다. 다른 하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 기록할 수 없는 사람들의 내용들을 담보해야 하는 책임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저마다 다른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을 수 있고 낮게 말하는 땅의 이야기를 키 큰 사람에게 들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것 같지만 실제로 한 사회 속에 살고 있어서 사회의 시대성이라는 것이 의도하지 않아도 이 안에, 피부에 다 들어있게 되므로 나 자체로 시대적 산물이라는 이야기였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자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시대적 산물이라는 이야기도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내 마음을 묵직하게 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그리고 이번 강의를 준비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이번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흡족했던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은 또 하나의 기록, 기록도 책이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