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2 제3강 좋은 기록과 좋은 기념은 다르다_지보람
제3기 책공방 책학교(5/19~6/2) 기록
모든 기념이 기록이 될 수 없듯이 모든 기록이 유의미한 기록물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오래된 책이나 기록물들은 많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유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유의미한) 기록물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 강의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좋은 기록물은 시간이 흘러서 좋은 기록물이 된 것이기보다는 대체로 그때 당시에도 흥미로운 기록이 시간이 흐름과 함께 더 중요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록과 좋은 기념은 다르다’라는 주제는 지난 책학교 1기 때 강사님으로 모셨던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님께서 이야기했던 내용 중 하나이다. 책학교 3기의 세 번째 장의 주제를 이것으로 한 이유는 오늘 강사님으로 모신 지보람 선생님께서 수집물을 찾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 강사님은 ‘기록물 수집가’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분이다.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행되었거나 그 당시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기록물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금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보통 어떻게 해서 그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호기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오늘 우리도 강사님이 어렸을 때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강사님은 우리가 묻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궁금해할 것을 척척 알아채시고 이야기를 풀어내 주셨다. 강사님은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을 전공해서 지금 이런 일을 하게 된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강사님은 한국의 대부분의 학생과 청년들이 그러하듯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 대학에서는 시험을 위한 공부, 그 이후에는 취업을 위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어떠한 목적이나 관심분야가 아닌 점수에 맞춰 선택을 한 것이라 그다지 별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 여행 중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오늘 우리가 만난 강사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강사님의 인생의 변곡점이 되어주었던 ‘올드 코리아’라는 책은 영국의 화가이면서 작가인 ‘엘리자베스 키스’가 서방세계에 한국을 소개하고자 썼던 우리나라 여행 탐방기이다. 한 작가가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쓴 이 책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이 책은 정말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나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때 당시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 담겨있어 그들의 옷차림새를 볼 수 있는 자료로 유용하다. 강사님은 PPT 자료를 보고도 ‘우와’하며 감탄사를 내뱉는 우리에게 여기 실물이 있으니 편하게 보라며 허락해주셨다. 이 귀한 책을 우리가 함부로 만져도 되겠느냐 하니 침만 묻히지 않으면 된다고 해서 우리를 웃게 했다.
그 밖에도 300년이나 된 ‘하멜 표류기‘와 지금도 이런 책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정성을 들여 만든 ‘아이 코리아’를 비롯한 다양한 책을 실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밖에도 한글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한불 자전, 게일의 한영사전, 발레의 천주교회사, 남영군의 묘를 도굴한 것으로 유명한 오페르트의 ‘한국 소개서’, 존 로스의 한글성경, 조선 역사서인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 등등 약 30여 권 정도의 책을 소개해주시고 그 책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그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이야기와 책에 담기거나 책과 관련 있는 에피소드를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다.
우리는 마치 어렸을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눈을 깜박이며 강사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귀한 책도 그 책이 왜 귀한 줄 모르면 그냥 책일 뿐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을 구분 짓듯 강사님은 우리를 강사님이 알고 있는 재미난 세계로 이끌어 주셨다. 책공방에서 하는 책학교에 신청하신 수강생 대부분이 책을 좋아한다면 좋아한다는 분들인데도 다들 이런 책은 처음 본다며 우리 어릴 적에 역사 교과서에 나온 사진이 바로 이 책에 있던 사진이었다며 다들 신기해했다. 교장쌤은 이미 이런 책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계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책의 짜임새나 책의 디자인을 보시며 감탄을 하셨다. 그때 당시에 발행되었던 책을 통해 그 시대상을 바라보는 시간은 역사시간을 방불케 했고 이러한 이야기야말로 책학교에 걸맞은 이야기이자 시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쓸데없는 일을 해서 무엇을 하냐는 뜻으로 그것을 해서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는 이야기를 종종한다. 솔직히 오늘 강사님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이야기를 모른다고 해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랑 전혀 상관없을지 모르는 이 시간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세상의 다양한 분야 중 하나의 분야를 들여다보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아마도 많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똑같은 책이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또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는 100년 전 누군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덕분에 또 누군가가 그 책을 잘 보관했고 오늘 만난 강사님께서 그 책을 구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덕분에 100년이 지난 시대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나는 100년 후의 미래에서 현재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니고 잘 팔리지 않아도 세상에 필요한 책이 있듯이 직업에도 돈을 잘 벌거나 편한 직업이 좋은 직업이 아니고 돈을 잘 벌지 못해도 몸과 마음이 좀 힘들어도 세상에 필요한 일(직업)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강사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 장인정신을 갖고 밀고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물론 과거와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을 가지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른 성공이 아닌 미래에도 과거를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의 즐거움을 쫓아갔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응원해주었다. 나를 비롯한 수강생들이 각자의 즐거움을 위해 장인정신을 갖고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그렇게 된다면 우리 지역이 조금 많이 재미있어지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나는 나이가 적든 많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고수로 모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아닐까 생각에 나는 내가 가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