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6 제4강 사진으로 기록(아카이브)하다_김지연
2018 제3기 책공방 책학교(5/19~6/2) 기록
김지연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낡은 방’이라는 사진집을 통해서다, 같은 사진집을 보고 교장 선생님은 남자일 거라 생각하고 나는 젊은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떻게 그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셨을까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체구의 여성분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가지는 에너지는 체구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두고 어렸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자신은 오십이 되어서야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서 남들이 생각지 못한 정미소라는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운영하고 사진 전문 갤러리를 운영하며 무엇보다 젊은 사람 못지않게 활발한 작업 활동까지 겸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인간극장의 스토리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강사님께 그렇게 느지막이 사진을 시작했던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꾸었던 꿈이라든가 죽기 전에 무언가를 해보아야겠다 하는 답변을 기대했으나 강사님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사진을 통해 무언가를 해보겠다 하는 희망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지 하는 욕망,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욕구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늦게 시작했음에도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를 자신이 가진 수많은 핸디캡을 그냥 핸디캡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이외에는 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하기에서 앞서 많은 생각을 하느라 주저주저하는 나의 모습,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앞서 많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겠다던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간단하지만 강렬한 자기소개를 뒤로하고 강사님께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계남 정미소가 있던 진안의 할아버지와 인터뷰했던 영상이었다. 허나 컴퓨터가 좋지 않아 영상이 자꾸 끊기는 바람에 영상을 사진처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강사님은 재밌는 영상인데 이렇게 되어 아쉽다고 했고 우리는 우리대로 할아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만난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일꾼들이 일을 한 것을 기록한 고분기, 머슴이 일한 것을 기록한 고용기, 매일 쓰는 가계부인 일용기, 글로 쓴 지도책, 치부책 등’ 다양한 기록을 가지고 계셨고 시골 할아버지답지 않게 기록에 대해 굉장히 철저한 분이라고 했다. 또 재미있는 점은 그러한 것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주시면서도 입으로는 계속하여 ‘이까짓 거 쓸데가 없다’라고 이야기하시며 전시한다고 쓰고 계신 가계부를 빌려달라고 하자 ‘계속 써야 한다’며 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남광주역’에 대한 사진이야기로 이어졌다. 강사님이 어렸을 적에 사촌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들렀던 추억의 장소였던 이곳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1년 동안 매일같이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남광주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것도 새벽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 역 앞에서 열리는 도깨비 시장의 풍경을 찍기 위해 새벽 3시 차를 탔다는 이야기는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그 뒤로 강사님의 수식어가 되어버린 계남정미소 이야기, 너무 힘들어서 사진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이발소 이야기, 구멍가게의 안과 밖을 기록한 근대화상회, 방을 통해 그 방을 이용했던 사람을 상상하게 한 낡은 방 이야기, 올해 전시를 앞두고 있다는 자영업자 이야기까지. 어떤 작업이 가장 인상 깊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질문만은 답할 수 없다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연이 없는 것 없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어느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는 사진 그리고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이 이렇게 계속해서 사진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틈새’를 잘 공략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잘 한다고 해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떤 분야에 어떻게 파고들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물론 기초분야에선 열심히 해야 하겠지만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찾아서 한다면 늦더라도 자기의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표정이 어땠는지 강사님은 우리에게 아직도 망설이고 있느냐 물으셨다. 그리고 이어서 언제 시작을 했냐 보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며 모든 일이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을 먹었을 때 굉장히 충분하게 할 필요가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갖느냐 20년을 갖느냐 이게 문제가 아니고 어떤 것을 시작했을 때 집중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많은 고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매우 매우 중요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강사님은 자신이 사진을 늦게 시작한 반면에 정말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런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셨을까 정말 멋지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정미소 사진을 처음 발표했을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서 지금처럼 이렇게 될 거라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 그 사진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정미소 사진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작업을 하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나이가 많다 보니 다음 작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해 항상 작업을 할 때마다 이게 내 마지막 작업이다 생각하고 임한다는 이야기에는 코끝이 찡해졌다. 강사님께 강의 요청을 드리기에 앞서 방문했던 서학동 사진관에서 그동안 작가님이 작업했던 사진집을 쭉 돌아보고 나는 이렇게 멋진 작가님이 우리 지역에 내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이 시간은 기록으로서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 자리였으나 강사님은 자신은 기록을 하고자 사진을 택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것 중 하나로 기록을 택한 것이고 사진을 위해서 기록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멋진 답변을 해주셨다. 이러한 강사님의 답변처럼 오늘 이 시간은 전혀 예상치 못한 멋진 시간에 마음이 먹먹해져서 그동안 망설이거나 미뤄왔던 일을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강사님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부드럽게 전해주셨으나 나에게는 어떤 회초리보다 매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