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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10. 2020

12. 꿈보다 해몽이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 을유문화사


12. 꿈보다 해몽이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 을유문화사


200508 나는 이 책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꿈이 대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좋은 꿈인 줄은 알긴 알았으나 해몽을 듣고 보니 그 꿈이 본래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는 탓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스무 곳의 멋진 공간을 가보지 않고도 가본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간, 그곳에서 쇼핑을 하면 즐거운 이유, 작품 말고도 볼 것이 많은 예술 공간, 개인 취향과 사회 가치가 제대로 구현된 곳, 보고 듣고 먹고 노는 사이에 안목은 자란다’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로 스무 개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 같이 다 멋진 공간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공간은 강릉의 씨마크 호텔이었다. 그 밖에도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 다짐을 하게 했던 곳이 몇몇이다.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으니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씨마크 호텔을 나중에 가볼 생각으로 정보를 찾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을 만나는 동안 마냥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다. 책에 등장하는 곳은 하나 같이 멋진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이 앞서 말한 호텔처럼 만만치 않은 가격을 치른 후에야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김제 망해사의 해우소나 녹사평역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더 많았다.


공간에 대한 안내뿐만 아니라 그가 공간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유익했다. 꼭 기억하고 싶은 부분 중 첫 번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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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 전국 곳곳에 도시 재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새로움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란 지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중첩된 기억이 구체적 장소를 통해 되살아나는 효과도 그 이유다. 과거의 흔적은 계속 이어지는 삶 속에서 녹아들 때 생명력을 갖게 마련이다. 도시가 남긴 보존할 만한 길과 건물, 시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곳을 보고 자랐을 세대들과 삶을 펼쳤던 사람들의 공통 기억은 그 흔적 앞에서 강렬해진다. / 구체적 사물과 흔적이 있다면 집단 기억의 환기는 쉽게 이루어진다. 공동체란 결국 같은 것을 보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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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동체에 대한 정의가 마음에 와 닿았다. 과거에 비해 공동체를 비롯한 그 문화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과거의 공동체 안에는 ‘개인’이 부재했다고 본다. 그래서 과거의 공동체 복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앞으로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대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알록달록 무지개처럼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를 이루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문화다. 그러한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이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를 알리기 위해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남을 알기 위해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 여러 이야기가 만나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공동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 문화이고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시 재생’의 중심에는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특정 단체나 개인만을 위하게 되는 목적 없이 덜컥 지어지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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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 | 지금까지 봐 왔던 문화 공간의 외형은 멋지고 화려한데 비해 정작 그 안을 채울 내용이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자체 기획에 필요한 인원과 역량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관행은 지금도 이어진다. 내용을 채우는 건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본문 중 | 개인의 취향이 콘텐츠가 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수단이 되는 시대다./ 공간의 즐거움이 원하는 이들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순환의 장이 된다. 피크닉을 만들어 낸 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아는 취향의 선택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취향은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경험에서 나온다. 그 경험을 이끄는 바탕은 교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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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격하게 공감했던 두 부분이다. 각각 다른 챕터에 있던 내용이었으나 이 두 문단을 나는 ‘사람이 곧 콘텐츠이자 내용이다’라고 요약하고 싶다. 세상은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고 앞으로는 과거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이다. 내가 알던 사실이 어느 순간 거짓이 되기도 하고 내가 가진 귀한 물건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우리는 희망보단 불안을 느낀다. 불안을 더욱 크고 깊게 경험하게 될수록 더욱더 확실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확실한 것, 믿을 만한 것이라 여기는 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이나 즉각적인 반응이 도출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세상의 많은 것들이 갈수록 단순해지고 가벼워지고 표피적이 되어가고 있다. 진정 중요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가짜 혹은 낭비처럼 취급된다.


일반적인 도시 재생 사업에 비유하자면 도로를 정비하거나 건물을 짓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여기면서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인력에게 투입되는 비용은 조금만 높아지거나 비중이 올라가면 큰 문제로 여기는 것과 같다.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비가시적이고 수치화되지 않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나 인건비로 사용되는 비용은 소모적인 것으로 여긴다. 물론 여기에는 잘못된 사례로 인해 실제 예산이 낭비되거나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잘못된 사례가 벌어진 것이 문제이지 그러한 방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심하고 다듬어야 할 것을 문제가 되니 폐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멋진 건물에 어울리는 좋은 콘텐츠가 지속되어야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 내용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 주변엔 ‘독창적이라 할 수는 없으나 이전에 없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라고 할 만한 곳이 꽤 많이 생겨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멋진 공간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다고. 이와 같은 공간들이 더 많이 생겨서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 때 우리의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으나 이상하게 마음은 씁쓸했다. 하루에 40만 원이나 하는 숙박비를 마음먹는 것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삶, 집 앞에 스타필드를 즐길 수 있는 삶 등은 나와는 거리가 많이 멀게 느껴졌다.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제 조망의 즐거움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시대에 산다’고 했으나 나는 정말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루에 40만 원하는 호텔은 나에게는 멀기만 한 곳으로 일상이 되기엔 어려운 곳으로 여겨진다. 그가 펜트하우스 대신 15층 아래 객실을 택한 것처럼 나 또한 이곳 대신 저렴한 숙소를 택할 것 같다. 이는 여행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 무게 중심이 달라서 보다는 내가 가진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선택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살면서 저자와 같이 다양한 감각의 즐거움 말하자면 정제된 문화를 자유롭게 누릴 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우리 사회에 50% 이상의 대다수가 누릴 수 있는 삶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와 별개로 그의 글은 좋았다.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명성만큼이나 역시 훌륭하다 할 만큼 묘사는 세밀하고 친절하면서도 간결했다. 새로운 표현, 낯선 표현,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진 공간 묘사가 특히 좋았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미 내가 가 본 곳도 몇몇 곳이 있었는데 내가 실제 가서 보고 느낀 것보다 그의 글을 통해서 만나는 그 공간이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넘치는 것은 모자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라는 마인드인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의 주장은 타당하긴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넘치는 것이 모자란 곳으로 흐르기까지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다가 완전히 말라 버리기 전에 모자란 곳에 수혈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세상을 굽어보며 사는 일들의 쾌감을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어디 그 쾌감뿐이랴. 세상의 모든 것은 경험(간접 경험 포함)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저 위에 사는 사람들의 쾌감뿐 아니라 저 아래 사는 사람들의 고단함도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삶을 접해보기 위함이다. 그렇게 다양한 삶을 접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생각의 폭을 넓혀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사람다운 삶이란 높고 좋은 것을 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낮고 나쁜 것을 알아보고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심에 소홀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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