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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29. 2020

20. 디자인을 통해 바라보는 생활문화사

생활 디자인/ 오창섭 외 13인/ 현실문화


20. 디자인을 통해 바라보는 생활문화사
생활 디자인/ 오창섭 외 13인/ 현실문화

200528 여러 사람들의 합체를 볼 때면 합체의 중심축인 그들의 지휘자가 궁금해진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어떠한 합체의 힘은 그 구성원으로부터 모아져 지휘자의 손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사물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엮은 것이다. 앞서 말한 지휘자가 궁금해지는, 어떻게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책이다.

독주 무대에서는 연주자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지만 그에 비해 관현악단에서는 다양한 악기와 연주자들을 통해 화음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에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음악에서만 독주와 관현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도 단독 저서가 있는가 하면 공저가 있다. 다만 음악에서의 경우 독주와 관현악단 모두 다름의 색깔로 인정을 받지만 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공저보다 단독 저서를 우위로 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내 생각엔 공저가 관현악처럼 공저로서의 특별한 화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또 공저의 경우 관현악단의 지휘자의 역할로 기획자 혹은 편집자의 역할이 있기는 하지만 관현악단의 지휘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휘자의 역할이 크지 않고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오히려 단독 저서 일 때 편집자의 역할이 더 부각되는 듯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제까지 내가 만나 온 공저의 경우 여러 사람들이 모여 프로젝트 개념으로 이야기를 모으거나 하나의 주제를 두고 각자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묶는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관현악단처럼 공저여야만 하는, 공저여서 더욱 매력적인 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며 공저의 숨은 매력을 찾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디자인문화재단 ‘코리아 디자인 2008’ 기획하여 큐레이터들의 제안과 선정위원들의 선정 작업을 통해 총 52개의 디자인을 선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발전되어 네이버 ‘매일의 디자인’이라는 꼭지로 이어졌다.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그 내용이 모아져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필자로 참여하신 분들은 모두 디자이너이거나 그와 관련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열 세 명이나 되는 필자의 스펙트럼만 보더라도 디자인이라는 세계가 생각보다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한 생각은 책의 목차를 보면 더욱 확고해진다. 이 책이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디자인을 이야기함에 있어 시각 예술로 한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어떠한 물건이어야 한다고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꽃무늬 장식’ 같은 것을 다룬 점이다. 이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더구나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고 디자인임이 분명한데 디자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을 다루고 있었다 . 나에게는 그 점이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느리게 읽기 대가인 내가 며칠 만에 뚝딱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꽃무늬 장식’은 우리에게 익숙해서 엄청 오래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음을 상기하게 해 주었다. 1978년에 등장한 공중전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기에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 줄 알았던 공중전화의 역사가 불과 불과 40년 밖에 되지 않았다니 정말 놀라웠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공중전화는 가정집의 전화보다 앞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누구나 핸드폰이 있는 세상을 살고 있지먼 집집 마다 전화가 놓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상이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즉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연결의 기회가 40년 전에는 소수의 특권이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많았다. 디자인 변천사는 물론 생활사와 문화까지엿볼 수 있어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내용을 소수의 독자만이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공유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런 디자인 이야기는 교양 과목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듯하다. 지금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라떼는(나 때는) 없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나 공부를 대학교 때 한창 파릇파릇할 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럼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재밌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책공방에 있을 때는 책공방 시계만 요술시계처럼 빠른 줄 알았는데 자유의 몸이 되고 보니 책공방 시계와는 게임도 안 되게 시간이 총알 같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렁이고 뭘 좀 하다 보면 세네 시간이 훌렁이다.



이 책의 목차에서는 ‘하루가 일 년처럼 변해 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 수많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도 휩쓸려 가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남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언급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지금 새로운 일이라고 믿고 있는 일들 중 꽤 많은 것들은 어쩌면 과거에 이미 했던 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 책을 만났을 때도 과거에 ‘뿌리깊은 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어서 기록이 중요하고 자료조사가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고 새겼다.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목차를 시대별로 나눈 만큼 시대별류 디자인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시대적 맥락 따위를 가름해주었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소재에 따라 작가가 선택되고(정확히는 작가에 따라 소재가 선택되었겠지만) 작가별로 그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혹은 콘텐츠가 속한 세계가 달랐기에 어려웠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한 사람의 작가였다면 나의 바람이 합리적이었겠고 그것이 나의 바람으로만 남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의 책처럼 작가별로 달라지는 태도, 스타일을 만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 책은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본문 내용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내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던 내용을 옮겨 본다.


본문 | 1963 모나미 153 볼펜
볼펜은 대단히 간편한 필기 도구 중 하나다. 볼펜 이외에도 많은 필기도구가 있다. /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디자인이 ‘모나미 볼펜’ 이다. / 모나미 153 볼펜은 육각주 모양의 몸체, 원추 모양의 촉 덮개, 간편하게 작동되는 조작노트, 스프링, 잉크 심 등 총 5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결한 외양과 더불어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딱 필요한 것만 갖춘 구조로 기능적으로도 완벽한 수준이다. 총 길이는 13.5cm이고, 육각주 몸체에는 ‘monami 153 0.7’이라고 적혀 있다. ‘몽 아미 mon ami’는 ‘내 친구’라는 뜻의 불어이고, 153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다’는 신약성서 요한복음 21장 11절의 내용에서 착안해 붙인 숫자이며, 0.7은 필기 굵기를 말한다. /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나미 153 볼펜은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모나미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생산한 볼펜 브랜드’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모나미 153 볼펜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볼펜의 대명사 모나미 153볼펜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추측건대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같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안에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잘 편집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불어 필요한 정보를 찾는 일은 기술보다는 관심과 애정의 힘이 더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일을 하기 전에 나는 뜸을 굉장히 많이 들이는 편이다. 어찌보면 효율성이 참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내가 탐탁치 않은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인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상기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톤 높은 목소리는 잠깐 시선을 집중시키겠지만 오랫동안 신뢰감을 주기에는 많이 모자람/ 금방 질리기 때문/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진 색깔이 더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신뢰감을 준다.’ 위의 내용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들어왔던 내용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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