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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18. 2020

25. 나의 두 번째 빨간 책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니시야마 마사코 / 유유


25. 나의 두 번째 빨간 책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니시야마 마사코 / 유유 


책과 함께한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전혀 다르다.

-본문 중 


170218 나는 책을 참 오래 읽는다. 걸음도 빠르고 성격도 급한 편이고 행동도 나름 빠릿빠릿한데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싶을 정도로 참 느리다. 그중 하나가 ‘책 읽기’다. 이 책도 읽기 시작한 지는 1월 말이었는데 벌써 3주가 지났다. 책이 재미있어서 훨씬 빨리 읽을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나의 첫 번째 빨간 책이었던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처럼 이 책도 겉도 속도 새빨갛다. 이 책의 디자이너는 이 책에 담긴 사람들의 열정을 이렇게 빨간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첫 챕터는 욕심 많은 두 아이의 엄마 이야기가 나온다. 일에 있어서도 육아에 있어서도 나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경지에 이르고 싶어 하며 그녀의 이야기는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나의 막연한 꿈 중 하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둘을 병행할 수 있을까를 가끔씩 생각해보곤 한다.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그런 걱정들을 하다 보니 아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갈수록 아이에 대한 욕심을 함부로 부리지 못하게 되었다. 예전엔 멋모르고 당연히 낳아야 하고 가능하면 우리 집처럼 많이 낳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 현실을 보면 그렇게 대책 없이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라는 생각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책 만드는 일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니 말이다. 


두 번째 챕터에선 회사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와 닿았다. 그는 몸이나 정신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대목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싶어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했던 것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모두가 책을 만들 순 있지만 모두가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운다고 해서 모두가 피아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책을 만드는 것 또한 하나의 취미생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이어지는 챕터에선 책 만드는 일에 있어서 내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챕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그것을 너무 주장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모든 일에 자기 생각과 주장은 필요하지 않다며 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편집자가 좋은 편집자라고 했다. 첫 번째 챕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잔잔하게 나를 빨아들였다. 그런데 처음 책을 받아보고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선생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책이 진짜 재미있어지는 대목은 두 번째 큰 챕터인 2장에서부터였다. 2장부터는 '이 책 쫌 재미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뒤로 갈수록 그 생각의 농도는 좀 더 진해졌다. 1장까진 그저 '신선하다, 친근하다'등의 생각이 들었다면 2장부턴 이 책 읽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살짝 아쉬웠던 점은 내가 '미시마샤'라는 단어가 가지는 느낌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글에서 '승희'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이 있듯 '미시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일본어에서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책에 정확히는 이 책에 각각의 주인공의 이야기 즉 열정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그 이유는 2장에서 흔들리고 번뇌하고 고뇌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나 또한 그러하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책에서 '책은 식품과 달리 유통기한이 없다.' 이 내용을 보고 나는 '음식에서는 방부제가 많이 들어있는 인스턴트식품일수록 유통기한이 길지만 책에서는 좋은 책일수록 유통기한이 길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에게 또 다른 생각을 낳게 해주는 문구가 많은 책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다. 아래 내용은 내가 이 책을 보며 위에서처럼 다른 생각을 하게 해 주거나 너무 공감되어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적은 것이다. 


"처음부터 결과를 요구할 게 아니라 어디에 도착할지 몰라도 매일 함께 걸어가는 것/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 머리로 알아도 몸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 /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나도 변해야 함을 깨달았다. / 책 만드는 일을 통해 '어른이 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 오래 이어져 온 것은 개인의 생각 범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깊이가 있다. /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도 감춰진 힘이 있다. /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면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휘둘리는 일이 없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늘 주위로부터 무언가를 느끼려는 자세가 있으면 몇 번이든 다시 가다듬을 수 있다. /효율적으로 하면 할수록 사람은 피폐해진다. / 젊은 편집자도 처음부터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라는 말을 숱하게 듣다가 가장 중요한 감성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판다'라는 가치만을 위해서 일하는 로봇이 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일의 소중함/ 압도적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 일만이 미래로 이어진다./ 역사는 유명한 위인만이 만든 것이 아니고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 쌓여서 지금이 있는 거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한 것을 당신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야/ 책의 절반은 머리로 만들지만 절반은 손으로 만든다./ 오래 읽히는 책/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지만 나이가 들수록 책을 사지 않는다돈을 내서라도 책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절박한 욕구를 가진 독자층은 역시 성장 중인 젊은 세대다. / 이곳 출신의 출판인이 많아지길, '편집과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고향에서 일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에 구인공고를 내서 우리 공간에서 채용하는 것/ 구석기시대부터 일관된 책의 역할은 기억 계승 미디어로 사람들을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마음먹으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 지역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직접 문화를 전달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 돈으로 돌아오는 것은 작아도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은 크다. 그러나 마음만 앞세우면 그냥 취미가 되어버린다./ 전 출판으로 생계유지를 하지 않아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옷을 입는 센스가 같은 사람들하고는 대충 설명해도 서로 잘 통한다./ 책과 관련된 자리를 만드는 일에는 새로운 만남 이외에도 다양한 가치가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일자기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 저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어떤 좋은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은 할 수 있다/ 오래오래 남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좋은 것을 더 잘 파악하는 능력이 진정한 편집력이다/ 100년 뒤에도 부끄럽지 않은 책/ 시대와 국적이 달라도 바뀌지 않는 것, 사람의 본질적인 마음에 통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 일하는 방식이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생각/ 이걸 선택하면 저건 포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기 쉽지만 어떤 것을 선택해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의 선택이 인연과 타이밍을 포함해 중요한 포인트였다./ 오늘 쓴 책과 100년 전에 쓴 책이 함께 진열되는 곳/ 욕구와 성과를 사회에게 명확히 전달하고 싶다면 어떤 것과 어떤 것을 연결할지 자신만의 이념과 방법을 가져야 한다. / 그렇게 괴로웠던 회사생활이 사실은 날 크게 성장시켰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따름/ 출판에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만 명을 위한 책만 편집하다 보면 천명을 위한 책을 편집할 수 없다. 그러면 비슷한 책을 만들게 된다. / 숫자를 최우선에 두면 어디에나 있는 흔한 책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다양성은 출판이 진부해지지 않게 한다. " -본문 중에서


위의 이 내용들은 분명 내 글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나'라는 체에 걸러진 말들로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똑같은 책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마음에 드는 구절은 조금씩 또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이렇듯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빼고 더함을 통해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위의 인용된 내용은 내가 쓴 글은 아니지만 나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도 그다음 해에도 이렇게 책을 읽고 쓰고 만들며 살아간다면 그래도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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