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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24. 2020

27. 서점 하고 싶게 만드는 책

탐방서점 / 편집부(금정연, 김중혁) / 프로파간다


27. 서점 하고 싶게 만드는 책

탐방서점 / 편집부(금정연, 김중혁) / 프로파간다


170317 이런 책을 바랐다. 독립 및 동네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 이런 책방들의 이야기가 묶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고 얼마 안 되어 그런 책이 나왔고 그런 책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웠던 것은 그 책은 화자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담았다. 공간의 주인의 이야기보다는 화자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크게 전해졌다. 그래서 그때 그보다는 책방 주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엮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 또한 내 생각만은 아니었고 이렇게 떡하니 그런 책이 나왔다. 그래서 참 반가웠다. 내가 생각했던 바를 다른 사람도 생각했고 이것이 실현되거나 무언가 결과물이 나온 것을 볼 때면 그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감과 함께 큰 위로가 되곤 한다.


책이 나오자마자 선생님은 책을 사 오셨고 내게도 읽어보라 하셨다. 나는 나중에 아껴가며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나중에 읽어야지'하는 마음만 가지고 실천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이번엔 책학교 준비를 시작하며 부랴부랴- 급하게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급한 마음과는 달리, 예전에 느꼈던 그런 반가운 마음과 달리, 책장을 덮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책학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을 살펴보아야 했다. 자료를 살피기에 앞서 자료 조사를 통해 살펴봐야 할 자료 목록을 정했고 이 책 또한 자료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책 읽기가 취미일 수도 있지만 내게 취미와 동시에 일의 일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백 프로 즐기지 못하고 때때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재미난 책을 읽는데 한 달 가까이 되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중간에 다른 책도 읽고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기도 많이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렸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책방 주인장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책공방에 일하면서 관람객을 맞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는 참 여러 가지의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타인의 입장을 백 프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때때로 비슷한 상황을 맞고 때로는 그 반대편에 서게 될 뿐이고 그러면 그때가 되어서야 그 입장에서 생각하고 과거 상대방의 입장을 짐작할 뿐이고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입장을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성인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주인장들이 많았다. 이렇게 비슷한 생각들을 만나게 될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존재 자체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읽는 데는 참 오래 걸렸지만 이 책은 내게 그렇게 의미 있게 다가왔고 이야기 챕터, 챕터가 스쳐지나가지 않았다.




이 책에서 처음 내 마음을 움직였던 대목은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님의 메시지였다. 이 분은 사람들을 어떻게 맞고 있느냐는 질문에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타적인 곳이 천지인데 우리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한 뒤로 아직까지 이 생각에 변함이 없다.


대부분의 상점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반가운 듯한 살짝 하이톤의 인사를 받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 무언가를 묻거나 처리한 후에는 항상 더 필요한 건 없느냐, 만족스러웠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이러한 서비스가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불친절만큼 까지는 아니지만 이러한 지나친 서비스 또한 불편하다. 그래서 상점에 가더라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


내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맞는냥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냥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덜 친절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친절할 때 친절하고 안 친절해도 될 때는 안 친절하고 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하고 안 친절해도 되는 사람에게는 안 친절해도 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책 많이 읽느냐는 질문에 도망가고 싶었다며 자신은 다독가가 아니며 책도 느리게 읽는다는 고요서사 대표님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나 또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분께선 이 이야기에 덧붙여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그 분야의 많은 관심과 재능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너무 몰라서 관심을 가져보려는 노력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보려 하기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이야기하면 '아 그렇군요, 잘못 봤네요' 하기보다는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또는 무언가를 달리 해야 한다고 충고하며 상대방의 표현이 잘못됐거나 서툴고 자신은 잘 본 것이라는 태도를 취하곤 한다.


나는 이런 경우는 종종 마주했고 그럴 때마다 정말 내 표현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하게 되곤 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부분일 뿐 고요서사 대표님이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 수도 있고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우리는 항상 나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나의 시각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 상대방의 시각은 어떨까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을 백 프로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염두에 두는 것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밖에도 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며 내 마음을 움직였던 대목들은 많았다. 허수가 많은 5만 명의 행사보다 열렬한 소비층 1만 명이 모이는 행사가 더욱 뜨거운 것이 당연하다, 그저 자신들만의 '재미'에만 빠질 게 아니라 독자들의 피드백을 고민하며 자기 색을 담아내는데 고민이 치열해져야 한다는 '유어마인드'의 이야기. 서점 하나하나는 미약할 수 있어도 이런 서점들이 뚜렷하게 띠를 이루면 우리 책문화의 스펙트럼이 조금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점은 이제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책문화를 펼치는 거점이 될 것이라는 '비플랫폼'의 이야기. 자기가 다치면 자기가 만든 세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방어적 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를 만들어 낼 능력이 중요하다, 6개월을 버틸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일단멈춤'의 이야기. 책이 좋아 책방에 들어왔지만 정작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없다, 서점을 책 읽는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책은 읽으면 상한다며 참 아이러니하다, 직원들이 기쁘지 않은 게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책에 대한 실력이나 얼마나 많이 아는지 보다 일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는 한강문고 사람들의 이야기. 서점에서 나는 수익으로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 서점을 하며 활력이 생겼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땡스북스'의 이야기. 타인의 스탠더드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우치누마 신타로의 이야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최고를 단 하나를 꼽자면 '속상한 적은 있어도 후회한 적은 없다'는 '고요서사'의 이야기였다. 나는 이 말이 '어렵고 힘들어도 짜증이 나도 재미있고 의미 있고 보람되어 좋다'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역설처럼 여기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다들 돈도 안 되고 생각보다 일도 많고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서점 하길 잘했다고 하고 즐겁다고 하고 기쁘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책공방 일이 많고 힘들고 여러 가지 단점들이 있지만 그러한 단점들을 다 커버할 정도로 보람 있고 즐겁다. 물론 때때로 단점들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장점들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자의 경우가 많거나 혹은 크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그동안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빵 만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빵이 있어야 살긴 하지만 빵만 있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는 책공방에서 빵도 먹고 빵에 쨈도 발라먹고 계란 후라이랑 햄, 치즈 얹어 토스트도 해 먹고 희한한 소스도 발라 먹고 있다. 빵이 크기가 좀 작은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다양한 것들과 어우러짐에서 나오는 조화로운 맛은 아무데서나 쉬이 맛볼 수 없는 것이고 그 맛에 나도 점점 중독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런데 그런 맛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니 최근 마음에서 일어났던 동요들이 잠잠해졌다.


한강문고의 대표님께선 사람이 가장 힘들 때는 돈이 없을 때가 아니라 마음이 불안할 때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돈이 없을 때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 어려움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자기의 즐거움을 자기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땡스북스 대표님의 이야기처럼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서 잘 관리하는 것 또한 내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 나온 분들이 계속해서 지금의 자리를 잘 지켜주길 좋은 의미에서의 성장을 해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일을 잘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결국 나는 또 앞으로도 잘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말았다. 이 책은 서점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 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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