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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26. 2020

28. 빨리 읽기 성공한 책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미시마 쿠니히로 / 갈라파고스

28. 빨리 읽기 성공한 책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미시마 쿠니히로 / 갈라파고스


170324 '반갑다 친구야' 하고 싶을 정도로 책공방과 참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출판사의 이야기라 무척 흥미롭게 보았다. 이 책을 보기 시작하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두 가지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었다. 하나는 선생님처럼 나도 빨리 책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책을 읽으며 기록을 하지 않아 보자 하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성공이고 하나는 실패다. 기록을 안 하고 읽어보자 마음먹었건만 수첩과 볼펜을 들게 만든 구절을 소개한다.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에선 정해진 일만 하면 되지만 벤처회사에서는 정해진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간에서 잡일이라 불리는 일을 포함해 모든 것이 자기의 일이다. 말하자면 일이 무한하다. 대신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휴가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벤처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매일이 긴급 상황이다. 매우 바쁘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만이 벤처 회사에서 일하는데 적합하다. 즉 일을 다음과 같은 인식으로 하는 사람이다.‘


지금 내 상황을 너무나도 잘 대변해주고 있어 속이 다 후련했다. 책공방에서는 내 일 아닌 일이 하나도 없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내가 '이렇게 해보세요' 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네가 좀 해봐' 아니면 '말로만 하지 말고'다. 그렇게 참 많은 일들을 해왔다. 청소부터 기획서 쓰기까지 기타 등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참 많이 힘들었다. 몸은 하나인데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더구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내 수준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해내고 싶었다.


몇몇 일들은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몰라 힘들었고 어떤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해서 내려놓을 것들은 내려놓고 상황에 따라 중요한 일들을 중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 휴일도 마찬가지였다. 주 6일 근무는 물론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다가 작년이 되어서야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주 5일 근무를 하고 최근이 되어서야 그나마 칼퇴근이라는 것을 종종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내가 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는 일에 한계가 없기 때문에 하는 보람이 있다. 오히려 한계가 있는 일이라면 재미없다.‘ 책공방에서 다양한 일들 중에는 내가 못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책임감과 함께 자유를 주셨다. 덕분에 나는 많은 일들을 함에 있어 내 스타일대로 일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스타일을 수용한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에서 내 스타일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스타일대로 일하는 나를 두고 선생님은 '똥고집이네, 성격이 더럽네' 하시지만 크게 제지하거나 하지 않으신다. 그렇기에 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 안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나이니 어찌 이러한 내용을 그냥 넘길 수 있었겠는가. 고개를 끄덕이다 못해 온 몸을 끄덕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항상 재미있게 일하는 줄 알지만 오리가 호수에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물밑으로 쉬지 않고 헤엄을 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이 재미있는 것은 맞지만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어쩌면 더 많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공방에서 일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겠노라고 멋지다고 말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때때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가끔은 나 스스로도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그 눈부신 부분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리얼한 사정 따위를 알지 못한다.' 이 또한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나의 리얼한 사정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이러저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 있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안에 담긴 내용도 내용이지만 표현 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나도 이런 표현을 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때 내가 표현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는지 이 책에 내게 좋은 표현이 많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복합적이겠지 싶다.


명문가의 문장에 이보다 뛰어나 표현들이 많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장이지 내가 그들의 문장을 차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나의 상황을 잘 대변해주듯 이 책에 나온 표현들이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대변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입을 착실하게 놀려가며, 진지하게 마주 대하는 노력, 미래의 출판을 쌓는 한 걸음, 자신이 발을 담근 세계, 눈앞의 효율,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감동받아 ~라고 말했다, 응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보통은 맛볼 수 없는 '기쁨',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일하는 기분, 대수롭지 않은 변화, 마음에 들어할 행동' 이러한 것들이다. 나는 이러한 표현들을 마주하면 '눈에 닿게 하는 활동'이라는 표현 안에서 '마음에 닿게 하는 활동'이라는 표현을 찾게 된다. 내게는 이러한 문장이 좋은 문장들이다. 그렇게 특별한 표현도 아닌데 나는 이러한 것이 참 좋다. 


내게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책의 본질은 낡지 않는다'라고 했던 부분이다. 겐메이가 좋은 디자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책에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한 내용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100년을 가기 위해'라는 관점에서 발상을 하고 몇 년만 버티려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럼 100년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며 여러 가지 일의 판단 기준을 여기에 둔다고 했다. 또한 몇 년 후는 목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통과지점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어릴 때는 보통 '나중에 크면' 무얼 하고 싶다는 이야기나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나는 '메멘토 모리'를 자주 떠올린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의 영향이 크다. 그 책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창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이러한 생각을 했었던지라 그 주장에 나는 크게 공감했고 그 뒤로 줄곧 그 생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 '100년'을 생각한다는 대목이 나의 이러한 사고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사소한 것들로 마음이 상할 때 먼 훗날 기록으로 존재할 나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면 내 앞에 놓인 사소한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얻게 된다. 


이 밖에도 '통증이 있을 때 그 부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 팬이 떨어지면 포지션 각각의 재미를 알리는 것이 아닌 축구 자체의 재미를 알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팔릴까 와 어떻게 해야 독자를 기쁘게 할까는 미묘하게 다른 질문이다' 등 마음에 훅훅- 들어오는 대목들이 참 많았던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무척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을 기록하며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책을 무척이나 느리게 읽는 나로선 엄청나게 빨리 읽은 것이다. 물론 선생님께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야 한다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내게 간만에 휘-익 하고 읽는 책이며 나도 선생님 말처럼 세 시간은 아니지만 몇 시간 만에 책을 읽을 수 있음을 확인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저자 후기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얼마만큼 강한 의지가 있더라도 그것을 '진실'로 만들어 주는 '스승'이 없다면  절대 일이 진행될 수 없다." 이 내용 또한 크게 공감했던 대목 중 하나였다. 내가 이러한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은 담은 글을 쓰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선생님 덕분이다. 요즘 '이승희가 오만방자해졌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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