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by 이승희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05.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속도를 줄여가며 숨을 고른다.

이 길고 험한 순례길이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되새기면서,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해 가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 한 걸음 한 걸음이 이미 목적지임을 되새기면서.

박노해 『다른 길』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중에서


주아님, 저와 같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보낸 일주일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보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보냈는지 말입니다. 평일엔 홍보실 직원으로, 토요일엔 책방지기로 살아왔던 주아님의 삶이 그렇게 힘겨웠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제가 책공방에 다니던 시절, 가끔 했던 ‘아 출근하기 싫다' 투정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제가 그렇게 바라본 것은 평일엔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주아님의 삶에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닿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다릅니다.


오늘은 주아님의 첫 번째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가 옵니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닿아 흔적을 만들고 얼마 안 있어 새로운 빗방울이 닿아 자꾸만 덧입혀지는 유리창의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전의 빗방울이 새로운 빗방울에 의해 덧입혀지는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떠한 생각에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이 덧입혀지기를 반복합니다. 요즘 저의 삶 또한 방향을 잃은 듯 어딘지 모를 아래를 향해 마구 내달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제가 계속해서 기록하며 책을 만들며 살아가기 위해 먹고사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도, 먹지 않고 살 수도 없는 탓입니다. 지금 당장의 삶보다 최소 5년 후 내지 10년 후의 삶이나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어떠한 선택이 현명한 선택일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의 삶도 이렇게 복잡다단한데 세상은 더욱 난리 속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듣는 귀를 질끈 닫아 버리고 싶습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갈등을 지켜보며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적이 될까 하는 것이 아닌 제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쪽 편에 서자니 저쪽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만 같고 저쪽 편에 서자니 이쪽 편에서도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온전한 사실과 양측의 합리적인 주장을 알고 싶습니다. 그 안에서 현명하고 정직하게 나의 판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실은 물론 양측의 합리적인 주장도 제대로 알 수 없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마음은 더 아픕니다.


제가 삼례에 처음 왔던 날에 대해 물으셨지요? 삼례와 저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마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일 것입니다. ‘익산 여산’이라는 면 소재지에서 태어났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녔습니다. 시골 성당이라 사람이 없어 그랬는지 제가 좋아 그랬는지는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 회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JCYA(전주교구 중고등부 본당 학생연합회) 구성원이 되어 한 달에 한 번인지 두서너 달에 한 번인지 전주에 가서 회의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산에서 전주에 가기 위해선 직행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전주시청 앞에 있던 옛 교구청에서 회의를 했는데 저는 여산에서 전주 가는 차표 대신 ‘삼례’까지 가는 차표를 샀습니다. 회의 장소까지 가려면 여산에서 전주까지 가서 덕진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야 했는데 삼례에서 내려서 시내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도보 거리도 짧아지고 차비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삼례는 저에게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주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삼례를 접한 것은 오래되었으나 어렸고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그대와 달리 삼례의 첫 기억은 흐릿합니다. 나에게 길목이었고 앞으로도 쭉 그러할 줄만 알았던 삼례가 저의 삶터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책공방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책공방을 만나면서 제게 무채색이었던 삼례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선명하게 입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책공방에 면접을 보러 오던 날의 기억은 선명합이다. 오늘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보슬비가 내렸고 예의를 갖추느라 구두를 신고 지금과 달리 비포장도로였던 길을 걸어 책공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때의 삼례는 이전까지 제가 알던 삼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삼례를 애정 하게 된 것 또한 전적으로 책공방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이 책공방을 통해 삼례를 제대로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여럿입니다. 물론 제 주변이라 그러할 테지요.


우리가 좋아하는 지인과 술자리를 했던 늦은 저녁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계속해서 삼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는 격한 목소리로 제게 “삼례가 그렇게 좋아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단번에 “그래, 좋다, 왜?”라고 답했고 그러자 그대는 “나는 승희님이 보란 듯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진심으로 저를 위하는 주아님이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제 몸에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붙들고 있는 저의 미련함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 창피했습니다. 그러니 미련함으로 치자면 그대보다 제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삼례가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대가 구) 삼례역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저 또한 자꾸만 변해가는 삼례의 풍경을 마주하며 아쉬움을 넘어 조급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그대의 바람대로 과거의 역사(驛使)가 지금처럼 새 모습이 되지 않고 옛 모습을 남기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이 오래오래 그대 옆에 있어주길 희망했던 그대는 그렇게 되기 위해 무얼 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전이 아니라 퇴거이자 실종이라 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그대는 무엇을 했는지, 그 흔한 사진 한 장 남겨 놓지 않고서 무얼 했느냐 묻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대는 그렇게 되는 줄도 몰랐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도 자신에게 묻지 않았다고 힘이 없었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대의 대답은 백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의 잘못을 탓하고자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고부터 저는 무언가를 희망한다면 그러한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생각하며 그것에 힘을 쏟으려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희망한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저는 ‘몰랐다, 힘이 없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도 했다고,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 미련함의 이유입니다.


제가 삼례에서 이런저런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책을 쓰고자 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아님이 제게 이 편지를 쓰면서 삼례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어 보고 기록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많은 것들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듣고 수많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또 수많은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기록되거나 엮이지 않으면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연말이면 저와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기록으로 남겼던 사진과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주아님에게 보여줬던 사전 같았던 책이 바로 그 책입니다. 그렇게 매년 한 해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며 저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고 위로받고 반성하며 다가 올 다음 해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책을 만드는 과정은 성찰이자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맛보았던 책의 참맛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 ‘책만들기 실험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임을 진행하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참여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최전선의 삶을 선택한 주아님과 달리 저는 요즘 계속해서 후방으로 숨고만 싶어 집니다. 자꾸만 나 몰라라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고 제가 있는 곳이 후방인지 최전선 인지도 헷갈립니다. 그대의 말처럼 내 선택 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를 계속 볼 수 있는 일이 가능하긴 할까요? 매일매일 수많은 흔들림 속에서 살아가는 저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수많은 흔들림에도 쓰러지지 않을 뿐이고 포기하지 않을 뿐입니다. 저의 뾰족한 이야기가 주아님의 마음을 찌르지 않을까 걱정이지만 저의 뾰쪽함이 그대에게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리라 믿고 씁니다.



2020년 07월 12일

비 오는 오후 일곱 시에 이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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