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by 이승희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07.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즉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서이다. / 누가 읽지 않아도 좋다. 읽을 필요도 없다. 한 인간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_다치바나 다카시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중에서


주아님, 친애하는 그대가 있어 다행한 요즘입니다.내가 편지를 쓰는 시간은 물론 그대의 편지를 읽는 시간에도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저는 그 시간이 좋습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편지를 쓰기로 정한 것이 아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요일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요일이면서 시작하는 요일이기에 한 주를 돌아보고 돌아올 한 주를 계획하게 됩니다. 정신없이 2주가 흘렀습니다.


어제 저는 아주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포토샵을 배우러 다녔고 어제 오전에 자격증 시험을 보았습니다.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자리를 두 번이나 옮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처음 자리에서는 효과를 주어도 결과물에 나타나지 않았고 두 번째 자리에는 한동안 잘 되다가 컴퓨터가 자꾸 멈췄습니다. 마우스도 뻑뻑해 선이 부드럽게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당혹스럽고 난감한 마음에 울고 싶은 지경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옮긴 자리는 다른 사람이 일찌감치 시험을 치르고 나간 빈자리였는데 제가 앞서 배정받았던 자리들과 달리 마우스도 PC도 너무 좋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런 자리에서 시작했더라면 안정적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었을 텐데 저에게만 그렇게 이상한 자리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 순간이 마치 요즘 제가 처해있는 상황같이 여겨져 더욱 화가 났습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정확도를 포기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완성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허탈해진 마음으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지인들까지 합류해 ‘지역’을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새벽 네 시였습니다. 그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으니 장장 19시간 동안 깨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 여파로 오늘은 오후가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대의 당부와 위로를 받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원래도 제가 그러한 줄 알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포토샵을 배우면서 다시금 느꼈습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저는 평생 이렇게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에 걸맞은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 기분에 종종 쫓기는 마음이 되곤 합니다. 허나 한편으로 나이가 들어 시간이 아주 많아지면 역사와 미술사, 음악사에 대한 공부를 할 생각에 설레기도 합니다.


클래식을 글자로만 알았던 저는 책공방에서 매일 같이 100.7 클래식 방송을 들으면서 귀가 트였고 ‘책공방 북쇼’라는 공연으로 인연을 맺은 소프라노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슈만의 이야기를 듣고 슈만의 ‘헌정’이라는 곡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책만들기 수업을 할 때 친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이 음악을 듣고 느껴지는 기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제 마음을 울리는 것들을 잘 간직하여 그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대로부터 도착한 지난 편지의 시작 구절이 좋아 저의 작은 메모북에 옮겨 적어 두었습니다. 이제까지도 좋았지만 지난 편지의 시작 문구가 저는 가장 좋았습니다. ‘시인의 목표는,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목표가 있을 것인가, 유통과 실용이 배제된 글쓰기’ 등의 문구가 마음에 콕콕 박혔습니다. 그리고 시인 대신 그 자리에 나와 책만드는 사람을 넣어보았습니다. 읽고 싶은 마음에 샀지만 읽지 못하고 쌓아 둔 책이 두 개의 탑을 이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이 또 사고 싶어졌습니다. 읽고 쓰고 만들며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면서 정작 일상생활 중에 그러한 시간이 자꾸 줄어들고 있어 저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낍니다.


저의 브랜드를 후방에 두지 말고 최전방에 두길 바란다는 내용을 마주하며 언젠가 한의원에서 장침을 맞았을 때의 기분이 되었습니다. 으윽-하고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오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아프지만 한편으로 시원해진 기분이었습니다. 주아님의 말처럼 저도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떠한 회사나 조직에 속하지 않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일로만 삶을 엮어갈 수 있었으면, 그럴 수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의 말이 다 옳습니다. 주아님은 우석대에서 일을 하는 동안 어느 부분에 있어서 단단해졌고 또 어느 부분에선 멀어졌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불안이 너무도 많고 그 불안이 약이 되기보다 독이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주아님, 주아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은가요? 아니 주아님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정의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가요? 저는 저 스스로를 기록하는 사람, 책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록과 책만들기 이 두 가지를 제 삶의 가장 중심이 놓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책공방에서 7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일하면서 저는 매일매일 책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자유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기 위해 기록을 하거나 원고를 작성하기도 했고 책공방을 찾는 다양한 분들과 책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며 책을 만들기도 했고 100년 전에 만들어진 공책에 공방의 일상을 하루하루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 일을 모두 책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다듬어져 인쇄 및 제책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일명 ‘출판의 책’만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인쇄를 해서 엮은 책도 있었지만 인쇄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쓰고 그려서 완성한 필사본이 존재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여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필사본은 점차 사라졌지만 저는 책공방에 있으면서 필사본과 같이 내 손을 거쳐 정성을 다해 만드는 책의 참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지 않는 것처럼 ‘책만들기’도 그렇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길 꿈꿉니다. 즉 책만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이를 업으로 삼기 위해 책만들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엮기 위해 책만들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책만들기 실험실을 통해 책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그러한 의도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내 책을 만드는 일은 나 자신과의 대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이 내용은 뺄 것인지 넣을 것인지, 크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속지와 표지는 어떤 종이를 사용할 것인지 꽤 많은 선택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와 만나는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담고자 하는 내용에 어울리는 형식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또한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에 따라 결과물이 결정되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전에서 실수를 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어찌 보면 별 거아닐 수 있는 풀칠이나 재단, 접착, 금박 작업을 하는 중에 긴장을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재료를 더해가며 책을 만드는 과정은 공들여 탑을 쌓아가는 과정과 같으며 항상 생방송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인생과 닮았습니다.


저는 책공방을 통해 책만드는 세계를 만났고 이 세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이러한 활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각자의 기록을 모아 책을 만들고 자신이 간직하고자 하는 사진이나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이번 기회에 주아님도 책 만드는 즐거움을 함께 하게 되어 저 또한 기쁘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부지런히 원고를 모으고 살피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주아님은 어떠한 사연으로 시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문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시’ 그리고 ‘시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 말입니다.


지난 번 주아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주아님이 제 궤도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저도 주아님을 따라 제 삶의 제 궤도에 오르려 노력해 보려 합니다. 부디 저의 다음 편지에는 쓰려던 원고의 진도를 나갔노라 쓰고 싶습니다. 그대의 다음 편지에도 그동안의 썼던 시를 매만졌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아님 더 이상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지 않고 실천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 번 만났을 때 했던 많은 이야기를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첫 걸음일 것입니다.


2020년 7월 26일

여름답지 않게 서늘한 밤에 이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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