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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0. 2020

55.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책

장인의 공부 / 피터 콘 / 유유


장인의 공부 / 피터 콘 / 유유

55.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책

장인의 공부 / 피터 콘 / 유유


또 한 달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이 책은 빨리 읽고 싶었다. 나는 힘이 들 때 책을 읽는다. 책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뚜렷해진다. 예전에 좋아했으나 지금은 별로 인 것들도 있으나 대체로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샀던 신발이나 옷들이 낡아져서 똑같은 것을 사고 싶은데 없어서 무척 아쉬운 때가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똑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쟁여두고 싶기도 하다. 유행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것이 탐탁치 않다. 이러한 생각은 옷뿐이 아니다. 좋아하는 브랜드와 출판사, 즉 믿고 보고 믿고 사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는 평소 유유 출판사 책을 좋아한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책 중 여러 권이 유유의 책이다. 이 책도 역시 유유의 책인데 유유도 좋고 제목도 좋고 디자인도 좋아 구입했다. 구입 당시에는 사실 참고용이었다. 일년일책 관련하여 원고 작성 및 편집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른 맥락이긴 하나 일부 같은 결이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때는 원고 작성도 편집도 거의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원고 작성보다는 마음 다지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을 단순히 직업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인생 전반에 걸친 무언가로 바라보는 글쓴이의 태도와 시각이 참 좋았다. ‘공예’를 두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이야기하는 면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현재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나 이 책의 시작은 그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공예(목공)를 접하고 하나의 일로 더 나아가 삶의 한 축으로 선택하기까지의 고민과 상황이 충실히 담겨 있다.


어떠한 부분은 위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는 지독히 운이 좋았던 특별하고 특출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희귀암 진단 후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받아 완쾌를 하였다는 이야기, 한참 후에 재발을 했으나 이전에 받았던 치료법이 검증이 되어 다시 치료를 받아 나았다는 이야기,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생각지 못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만들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그러했다. 물론 좋은 일이고 너무나 축하할 일이나 드라마틱한 전개에 ‘이 사람이라서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이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이기려 했다. 이건 마치 행운이 연달아 일어나는 영화를 보고 이런 일은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중간의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기에, 그가 힘들고 어려웠던 일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더라도 마음의 힘이 넘치지 않는 때에 마주한 이런 이야기는 내 기운을 더 빠지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좋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예와 같은 몰입의 활동이 삶에 얼마나 큰 영향 그것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실천하게 되길 바란다. 나의 책 만들기는 공예이기도 하고 공예가 아니기도 하지만 내게 몰입을 가져다주고 나의 자아실현을 돕고 나아가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이것이 내가 평소에 일을 일로만 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책 만들기는 나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무한애정을 쏟다 보니 부작용의 쓴 맛을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을 일 이상의 것으로 대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이 책을 만나는 동안 나는 평소에 쓰던 메모북을 세 권이나 갈아 치웠다. 물론 첫 번째 메모북이 중간 즈음일 때 이 책을 만났고 지금 쓰고 있는 메모북은 사용한 것보다 사용할 것이 더 많다. 그래도 어쨌든 메모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고 이 책은 나중에 힘이 들 때 또 꺼내봐야지 하며 고이 모셔두고픈 마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한 문장들을 기록한다. 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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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는 ‘왜’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공예를 배우는 이유는 공예가 자기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근본적인 진실로 귀결, 이 책에는 왜 공예가 자기 변화의 길일 수밖에 없는지 공예나 창조적인 작업이 자기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과는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다루려고 한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평생에 걸쳐 형성되는 것 / 장인이 된다는 건 깨달음에 이르는 것/ 어떤 분야의 길을 걷게 시작하니 그 길이 내가 어떤 선택과 고민을 경험할지를 결정/ 사람은 창조적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며 만족을 느낌/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잘 살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 좋은 삶이란 살다가 우연히 만나는 샹그리라가 아니라 내 손에 쥔 재료로 직접 만들어 가는 것/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은 삶의 근원/ 결국 취향이란 선호와 불호를 통해 자신을 정리하는 일/ 우리는 개별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속한 사회의 질서를 소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망뿐 아니라 목표, 전략과 전술, 정체성과 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 그리고 규범적이거나 일탈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고도로 복잡한 정신지도를 해석하고 선택하며 삶을 탐험한다. 내가 누군가와 상호작용할 때 상대방의 말과 행동은 내 마음에 물리적인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으며 이 흔적은 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훗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과 신념에는 전염성이 있다. / 삶은 순간순간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의해 펼쳐진다. 정신지도를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수록 이 결정이 우리가 추구하는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는 진정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 / 건강한 조직이란 사람들이 희망과 비전, 가치와 의미 그리고 이를 협력적인 방식으로 추구할 자유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기는 관계를 뜻한다. _키오딕 / 글로 사고하기가 가진 최고의 강점은 전달 가능성,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성이다. 글은 사물보다 쉽게 아이디어를 퍼뜨릴 수 있다. 글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쉽게 흡수될 수 있는 형태로 전달된다.” _ 본문 중


저자를 비롯한 우리가 공예에 매혹을 느끼는 이유, 우리 삶에 공예가 필요한 이유는 정신적 굶주림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일이 흥미롭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럴 거야’ 하는 추측을 하고 이런 일은 이러한 원인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나의 생각은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릴 때도 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런 과정을 거쳐 나의 생각을 넓히고 때로는 깊게 하며 확장한다는 사실이 유의미하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사고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렇게 내 안의 내가 성장하는 과정을 즐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한다. 좋은 책을 만나 나는 좀 더 나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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