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Aug 08. 2020

54. 아주 그냥 술술술- 읽힌다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 홍동원 / 동녘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 홍동원 / 동녘


54. 아주 그냥 술술술- 읽힌다

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 홍동원 / 동녘


 20151126 목 넘김이 좋은 술이 있듯이 읽힘이 좋은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페친들의 사진을 통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바로 구매했다. 내가 구매한 다른 책들이 그렇듯 선생님께서 먼저 보셨다. 나는 책을 느리게 읽고 선생님은 빨리 보셔서 자연스레 그리 되었는데 본의 아니게 검열 아닌 검열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신 선생님의 반응은 쉽다는 것이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간을 보듯 나도 초반부를 읽다가 후욱 빠져들 뻔했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디자이너라는 이 멋지다고 했다. 한 사람이 하나만 잘하기도 어려운 데 두 가지를 하니 대단하다고. 내색은 안 하셔도 내가 보기엔 홍 선생님의 글빨을 은근히 부러워하시는 듯했다. 


 나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앞서 말했듯 그게 가능한 책이었다. 치즈케이크 마냥 정말 부드럽게 술술 넘어갔다. 중간중간에 이해를 돕고자 들어간 사진자료를 보느라 글을 잠시 멈추어야 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마뜩잖을 정도였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겐메이의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섹션이나 여러 가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 느낌은 그랬다. 아마 쉽고 명료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디자이너는 글도 디자인하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선생님과 홍 선생님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 가지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외치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을 쫓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두 분 모두 스스로를 까칠하다고 이야기하신다는 점이다ㅎㅎㅎ 알면서도 그러신다는 것이다. 반면 두 분이 확연하게 다른 점은 바로 글이다. 선생님의 글은 전문적이다. 쉬운 말로 딱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씹어 먹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면 교과서처럼 유용하게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홍 선생님의 글은 말랑말랑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전혀 관련 없는 일반인들도 이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디자인 분야의 사람들이야 뭐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디자인에서 오래 일하신 분이라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디자이너 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리 시시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만약 디자인 분야에 갓 입문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대부분 홍 선생님의 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홍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멋쟁이에 이렇게 글까지 잘 쓰시고 더구나 롱런까지 하고 계시니 롤 모델로 삼기에 흠잡을 데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홍 선생님을 만나게 되니 나도 모르게 가까이 계시는 우리 선생님과 비교하게 되었다.


나는 비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서 꼭 우열을 따지고 순위를 매기려고 하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때에 따라 그러한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 문제다. 결론은 나는 우리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홍 선생님은 홍 선생님대로 서로를 인정해주며 이렇게 각자의 목소리를 각자의 방식으로 내어야 하고 그 제각각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세상은 제 모습을 갖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공방은 또 나는 그러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책공방 북쇼에 대한 고민을 할 즈음에 내가 이 책을 사서 선생님께 안겨드린 것이 한몫했는지 선생님께서는 나도 모르게 홍 선생님 모셔서 북 토크쇼를 해보자고 스케줄을 짜 오셨다. 이미 홍 선생님과 이야기를 마쳤다고 하셨다. 올 초였던가. 추운 날씨에 홍 선생님께 책공방은 찾아오셨다. 그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저자 싸인보다 귀한 디자이너 싸인을 받았다며 좋아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다.  다시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그때처럼 다시 추운 날씨가 되었고 홍 선생님께서 다시 우리 책공방에 오시게 되었다. 처음엔 한 해의 시작 무렵에 이번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처음엔 우리 공간을 보기 위해 이번엔 우리의 초청을 받고 그것도 북 토크쇼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해 책공방을 찾게 되신 것이다.


내 한쪽 마음에선 사람들이 많아서 홍 선생님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꼬물거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수 정예의 인원이 모여 몰입도가 높은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꼬물대고 있다. 이 두 마음 덕분에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래서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이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아니 이 두 마음이 아니더라도 나는 즐겁다. 왜냐하면 이 북쇼를 처음 준비하며 선생님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렇게 책 만드는 데 관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모셔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책공방 북쇼는 그렇게 책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그런 만남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짐을 인연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것이 사람과 사람 관계만이 아니라 책과의 만남 또한 사람과의 만남만큼이나 귀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떤 책을 만나 읽게 되는지도 참 중요하다. 나는 앞으로 홍 선생님과 우리 선생님이 친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럼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샘솟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53. 나의 네 번째 빨간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