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치욕의 역사라도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건물은 남겨졌고,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땅의 기억은 여전히 다채롭고 풍부하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조화의 기술은 중요하다. 한 공간에 축척된 이야기 자체가 보존되어야 할 핵심 내용일지 모른다. 장소의 의미와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_윤광준의 『내가 사랑한 공간들』 중에서
주아님 안녕하신가요? 지난 편지 속의 주아님에게도 주아님의 편지를 받은 이후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전주를 포함한 전국에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주천이 낯선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TV를 잘 보지 않는 저인데 어제는 하루 종일 TV를 주시하며 놀라고 또 놀라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2020년인 올해는 아마도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제 저녁 부모님 집에 갔던 저는 어제 저녁 비가 그친 후에야 제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물에 잠기거나 망가진 도로가 많다는 소식을 하루 종일 접한 터라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중간중간 꽤 큰 크기의 포트 홀을 만나 당황하긴 했지만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여산 집에서 제가 사는 이서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삼례의 만경강을 건너게 되는데 어제 마주한 만경강은 이제껏 제가 보았던 만경강의 모습 중 가장 거대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TV를 통해 자주 접했던 아마존 강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넘실대는 강 위로는 아름다운 빛깔의 노을이 자리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 많은 양의 비를 쏟아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게 한 하늘은 모습을 바꾸어 맑게 개 마치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한편 이게 자연의 이치이며 위대함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그러한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떠올렸습니다.
비일상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일상을 유지하며 나를 지키며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하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순간에 충실하라)’입니다. 너무 익숙한 문구라 진부해져 버린 이 말을 저는 수시로 떠올리곤 합니다.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책에는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 안에 들어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내 삶의 마침표를 어디에 어떻게 찍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면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는 이치입니다. 앞서 언급한 ‘카르페 디엠’은 미래에 얽매여 현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뜻을 지녔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 어느 때 우리 삶에 마침표를 찍게 될지 모르므로 현재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앞에 크고 작은 일들을 마주할 때면 저는 으레 이 두 이야기를 떠올리며 매 순간을 이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뒷전에 두곤 하지만 저 스스로 각성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제 삶의 중심을 잡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기운이 넘쳐나는 주아님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선미촌으로의 출근 이야기를 하며 잔뜩 신이 났을 주아님을 떠올리며 저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에너지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주아님의 온기로 온기를 넘어 구들장처럼 뜨끈뜨끈해질 세모집을 기대합니다. 제게 일상 공간이 아닌 선미촌이라 저는 주아님의 시선으로 그곳을 보곤 합니다. 이번에도 그대의 눈과 글을 통해 그곳을 들여다보고 상상해 봅니다. 조만간 방문하여 그대의 시선과 저의 시선을 교차하여 그곳을 보고 싶어 졌습니다. ‘집에는 사람이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에서 적극 동의하며 집이든 공간이든 사람의 온기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성매매 업소였던 그곳을 일상 공간이자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까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책공방이 자리한 삼례문화예술촌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양식을 빼앗아 가기 위해 임시로 쌀을 보관했던 창고로 쓰이던 곳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책공방을 비롯한 삼례문화예술촌의 건물과 주아님이 꾸리고 있는 물결서사와 세모집은 결이 다르긴 하지만 과거에 다른 용도로 쓰이던 곳을 허물지 않고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러한 의도는 우리들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지자체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정체성이 모호해져 버렸지만 과거의 삼례문화예술촌은 공공부문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2014)과 지역문화브랜드 대상(2016)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전국에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1호로 불릴 정도로 각광받는 문화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공간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꼼꼼히 살피고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이라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외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공방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하나는 옛날부터 이곳이 책과 무슨 연관이 있었던 곳이냐는 것이었고 이 말은 곧 책공방이 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일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삼례문화예술촌은 영국의 헤이온와이(Hay-on-Wye)처럼 멋진 책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 하에 전국의 책 관련 콘텐츠를 가진 분들을 모셔 와 지금의 공간을 꾸리게 되었고 완주군에서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설명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러면 이후에 책공방에 있는 다양한 책기계들과 저의 출신 여부를 묻는 질문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솔직하게 익산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현재 완주에 살고 있다고 답변하였고 책공방에 있는 기계들은 전국 각지에서 우리 선배들이 사용하던 기계들이며 우리나라의 책만드는 문화를 대표하는 기계들임을 힘주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파주 출판도시를 비롯한 다양한 지자체에서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꾸려지고 있음에도 삼례는 여전히 고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주아님이 첫 번째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처음엔 낯설었던 ‘삼례는 책이다’하는 슬로건이 익숙해져 사람들이 삼례 시장하면 닭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제 삼례 하면 삼례문화예술촌과 책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공간이든 사람의 온기로 완성되는 것처럼 공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공간을 조성할 때는 의도를 갖고 지어져야 하고 그렇게 지어지는 공간은 의도에 맞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우가 흔치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건물을 일단 때려 짓고 나중에서야 공간의 활용이나 활성화를 도모합니다.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습니다. 의도는 뒤로 하고 다목적 혹은 복합 문화공간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지어진 여러 공간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습니다. 언뜻 생각했을 때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면 좋겠다고 의견은 마치 합리적인 의사 결정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기능이 탑재한 전자기기일지라도 거의 한 가지의 용도로만 쓰이거나 어디에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부실하게 쓰여 처치 곤란이 되는 것처럼 공간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나 어울린다는 것은 어디에도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공이 너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여깁니다.
과거에 어떠한 용도로 쓰이던 공간을 허물지 않고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마도 그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일지라도 그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방식대로의 입장을 가지게 함으로써 그 공간의 기억을 덧입히는 것입니다. 삼례에서 필사모임과 함께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4주가 되어가고 있고 오는 화요일에는 책만들기 모임도 시작됩니다. 저는 이렇게 삼례에서 다양한 모습의 책을 만나게 하려 합니다. 선미촌도 예술촌도 부디 처음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던 의도와 계획을 상기하며 공간을 조성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삼례는 책의 다양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선미촌은 예술가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곳으로 거듭나길 꿈꿔 봅니다.
그나저나 주아님, 목과 팔은 어떤가요? 지난번 만났을 때 지금 당장 심각하게 아프지 않다고 해서 병원 가는 일을 뒤로 미루는 주아님을 보며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습니다. 무리가 간 몸은 지금 당장의 통증을 유발하진 않지만 이후의 다른 경로에서의 문제가 커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주아님의 건강을 염려하고 이 사안에 집중하는 까닭은 저 또한 오른손에 병이 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한두 달 가량 하루에 서너 시간씩 마우스를 사용했고 하루에 서너 시간씩은 손 글씨를 써서 그런지 오른손이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욱신거리고 저렸습니다. 주아님의 병이 순간의 부주의에 따른 과실이라면 저의 병은 오랜 기간 누적되어 온 태만에 따른 과실입니다. 원인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듯 저는 정형외과 대신 한의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계속해서 사용을 해야 하니 통증을 완화시켜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 썼다고 그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그동안 꾸준히 누적되어 온 것들이 최근의 상황으로 인해 문제로 발생된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저는 이렇게 항상 혼이 나는 기분입니다. 그간 제 몸을 잘 보살피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우리의 몸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탓입니다. 물론 이는 역으로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주아님 부디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을 허투루 하지 말고 몸의 상태 또한 마음이나 정신만큼 잘 살피길 바랍니다.
제가 선물한 책이 그대의 마음을 빼앗았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앞으로 저와 그 책은 이제 한 몸이 되어 주아님의 기억 혹은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리라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저의 책을 고르기도 전에 그 책을 보며 주아님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심한 듯 그대에게 그 책을 읽었냐고 묻던 제 모습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강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풍경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산신령이 나와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어줄 것만 같아 설렜습니다. 한편으론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마음껏 상상하고 내 안에 존재하는 무진의 모습을 공고히 다졌습니다. 주아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 또한 따로 또 함께 했던 강릉에서의 밤 풍경이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주아님과 나누었던 다양한 대화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곡을 나누다 얕은 지식을 마주한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감탄했던 순간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도 희한하게 맞닿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리고 옥수수 동동주와 함께 무르익었던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빡센 일정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피곤할 테니 좀 자라는 저의 말에 “이야기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던 그대의 귀여운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난 강릉 여행 이후 (어쩌면 그 전 밤샘 토론 이후 인지도) 몸이 계속 피곤한 상태입니다. 쉬어도 쉬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하며 빨리 걷는 것보다 천천히 걷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습니다.
‘실망은 너무 쉬운 화해였다’라는 시구를 마주하고 저는 실망하지 않으려고 화해하지 않는 것이 아닌 ‘실망’이라는 단어로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나 자신과의 화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제 멋대로 마음껏 기대해 놓고 그것이 기대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모습을 드러내면 우리가 했던 기대에 대해 늘어놓고 그 말미에는 ‘실망’을 선언하며 관계를 차단하곤 합니다. 그렇게 그 무언가를 차단하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기대했던 ‘나’와 그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나’가 충돌하는 탓입니다. 그 무언가에 대해 서로 다른 내가 만나면 싸우고 분열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에게 ‘나의 기대는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나의 기대를 저버린 저 대상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며 자기 스스로와 손쉬운 화해를 하곤 합니다. 사람은 물론 다른 많은 것들에도 그러합니다. 주아님이 한 문장에 담았던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많은 글로 쓰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그대가 시쓰는 사람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아님, 우리가 서로에게 거는 기대와 우리의 실존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실망이라는 손쉬운 화해 대신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기대를 했던 ‘나’와 그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나’와의 어려운 화해를 택하길 바라며 그대에게 쓰는 다섯 번째 편지를 마칩니다.
2020년 8월 9일 늦은 밤에 이승희 드림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 서신교환>은 매주 일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시쓰는 임주아의 브런치 주소는 https://brunch.co.kr/@zooalim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