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Aug 14. 2020

58. 기록은 힘이 세다

스무 살 도망자 / 김담연 / 전라도닷컴

스무 살 도망자 / 김담연 / 전라도닷컴


58. 기록은 힘이 세다

스무  도망자 / 김담연 / 전라도닷컴 


191023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사건을 마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힘든 일을 겪게 되면 그 일을 외면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그렇게 어떠한 사건이나 시간 혹은 사람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속- 시원히 이야기하고 털어버리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크고 작은 외면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일이 어떠한 일이냐 보다 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인지하는가가 더 크게 작용하는 일일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기록을 한다는 것은 기록을 하는 대상에 마주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의 결과물은 저자에게는 물론 이 책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건 혹은 시간을 이해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 책은 광주의 5•18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나는 뉴스타파에서 ‘전두환 프로젝트’를 보던 중이었다. 또 그때쯤에 공방에 방문하셨던 어떤 분께선 과거에 전두환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었음을 굉장한 자랑처럼 이야기하였다. 정말 낯설었다. 그때 당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하기사 이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과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5•18 진압작전(그 사람의 단어)에 동원된 군인이었음을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다. 그러한 여러 가지 것들 속에서 내가 한 생각은 ‘우리는 정말이지 서로 너무 다르다. 함께 살아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이었다.


서로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련의 경험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다름’은 차원이 달랐다.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다름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격변의 시대를 지나 온 우리나라의 경우 세대별로 경험한 세계가 천지차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우리 조부모 세대에는 태반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고 밥을 굶었던 사람들이었다.


다른 집은 다 보리밥 먹는데 우리 집은 쌀밥을 먹었던 것이 자긍심으로 남아 있는 분들을 꽤 여럿 보았다. 여동생들은 다 보리밥을 먹고 자신의 어머니도 보리밥을 먹는데 장남이라는 이유로 자기 혼자만 쌀밥을 먹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종종 본다. 나는 그분들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지만 무언가 개운치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니 그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80년대생인 내가 30년대, 40년대, 50년대 태어나 살아온 분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록물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다르다. 하루 종일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반면 하루 종일 이 책을 통해 그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일은 전자에 비하면 조금 수월한 편에 속한다.


기록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실감하게 해 준 내용을 옮겨 본다.


“상식과 교양으로 유통되는 역사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소설이나 수필 등을 꼼꼼히 읽어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져 있다./ 사람 이야기가 빠진 전쟁 이야기는 섬찟한 기록이다. / 병사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터와 전쟁 밖의 간극이 메워질 때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 _본문 중


다 지난 이야기인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은 물론 선량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정치인들은 막말을 해대고 그러한 엄청난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을 했던 사람들의 후손에게 선대의 그런 행적에 대해 묻자 ‘이제 그만 좀 해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독립운동가 집안은 다들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는데 그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문제가 잘 정리되지 못하면 그 문제로 인한 피해자에게 그것은 상처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기 마련이다.


기록은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생각이나 감정과 경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그러한 기록을 통해 그 누군가로 대변되는 세대나 집단에 대해 알게 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그들의 입장에서 쓰인 진실한 기록을 읽는 일은 다르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는 누군가에게 나의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생각이든 감정이든 아이디어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 글을 보는 사람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록은 어쩌면 말보다 더 효과적인 이해의 도구이자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기록은 권력이다. 어떠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때와 나왔을 때가 다르고 이처럼 책으로 나왔을 때와 나오지 않았을 때가 다르다. 사람들이 특히 잘난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 기록의 힘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도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남겨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정작 진짜 기록이 필요함에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미처 기록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신경을 쓰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잘난 사람들의 기록만이 남은 세상에서 그것을 진실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물론 지금이야 인터넷과 핸드폰의 편리함으로 누구나 기록을 간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록은 여전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을 출판한 ‘전라도닷컴’은 광주에 자리한 지역출판사이다. 이 책을 마주하며 지역 출판사의 역할은 진정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록에서의 편집 작업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책을 읽다 보면 ‘낙타를 주저앉게 만드는 마지막 바늘 하나’와 같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적합한 비유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비유나 표현이 실제 저자의 말인지 편집 과정에서 부가된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내가 아직 쓰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 쓰고자 하는 나의 직업은 ‘기록자’이다. 나는 이러한 기록을 잘 남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하나는 이야기를 할 사람과 들을 사람이 그 이야기에 믿음으로 얽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거 하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의 본문 중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살아남는 것이란 함부로 믿지 않으며 의심해 보는데서부터 가능했다.’ 나는 기록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이러한 자세로 나아가고 싶다. 정말 이게 맞는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남들의 이야기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우직하게 나의 방식으로 기록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다가 요즘 핫-한 도시재생이 못마땅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요즘 ‘도시재생’에는 이야기가 빠져 있다. 도시재생에 이야기가 빠져선 안 된다. 아니 도시재생의 중심에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야기)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 뒤에라야 건물 따위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도시재생은 이야기가 빠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가 빠지거나 다른 도시와 엇비슷한 그림을 그려놓고 일단 공사부터 들어간다. 원도심에 얽힌 이야기 수집이 먼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전문가와 더불어 철저하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다짜고짜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을 먼저 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건물은 그다음에 목적에 맞게 지어도 충분하다. 고치는 것보다 수리하는 것이 돈이 더 많이 들고 까다롭더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57. 책의 일부이나 전체일 수 있는 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