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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Feb 23. 2022

산티아고는 무엇을 위해 시련을 받아들인 걸까?

신념이란 존재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민음사     



산티아고는 무엇을 위해 시련을 견디어 낸걸까?

나는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는가?




 

40대 중반이 되어 <노인과 바다> 읽는다.  청소년. 청년시절과 깊이가 다르다.

보석처럼 빛나는 한단어 '신념'이 뇌리에서 오래도록 남는다.     


헤밍웨이는 53세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비판이 거세어지면서. 우울증. 알콜 중독으로 시달리다 결국 62세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과 삶에 작가의 치열한 삶과 고뇌가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투영된다. 

     

멕시코만 쿠바 수도 아바나시, 21년 거주한 헤밍웨이 삶이 담겨있어 더욱 섬세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어부 산티아고는 84일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다. 두 손에 수많은 상처들. 두 눈이 기운찬 노인은 “우리한테는 신념이 있지(11p)”라고 되뇌이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멀리 나갔다가 바람이 바뀌면 돌아올 생각이다”(14p) 여느 때처럼 노인은 “사자들”꿈을 꾼다. 포기할 수도 있는 고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신념’에 가득찬 산티아고는 기꺼이 시련을 선택한다. 여기엔 헤밍웨이 다짐 담겨있다. 나의 신념은 무엇일까? 나는 기운찬 두눈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노인을 존경하는 소년 마돌린의 도움으로 85일째 되는 새벽 출항하며. 도전이 시작된다.  신념의 표출이다. 이젠 철저히 혼자다. 노인의 혼잣말이 시작된다. 바다는 다정함과 잔인함을 가졌지만. 자연의 순리대로 어머니와 같이 노인을 안아준다. 바다라는 인생은 다정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바다는 산티아고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살다보면 운이 맞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준비를 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운인 것 같다.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34p) 


노인은 모든 생명체. 자연을 사랑하지만 인간이나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해파리.왕바다거북은 경멸한다.

낚시광이었던 헤밍웨이의 취향과 섬세한 묘사들이 이어진다. 산티아노는 자연속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다.       

85일째 직감적으로 덩치 큰 청새치 한 마리가 미끼를 물었다는 걸 느낀다. 본격적인 청새치와 노인의 대치 상황이 벌어진다. 청새치의 흐름에 따라 노인은 배와 함께 떠간다  인생의 바다라는 흐름에 그대로 몸을 맡기는 산티아고. 어부의 임무에 자연물과 하나가 되어 호흡을 맞춘다. 노인은 배가 아닌 자신의 등에 낚싯줄을 걸치며. 청새치가 최대한 아프지 않게 리듬을 맞춰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지금 고기한테 끌려가고 있고. 내 몸은 밧줄 걸이가 된 셈이야.”(46p) 



산티아고는 어부로서 힘에 부칠 때 "옆에 그 애가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혼잣말을 반복한다. 

또한 청새치에 대한 미안함. 사랑. 존경을 넋두리하기도 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마돌린을 수없이 부르게 만들지만. 인생은 혼자 살아가고 이겨내야만 하는 존재다. 


86일째 "고기야! 난 죽을 때까지 너랑 같이 있을 테다."(54p) 어떤 시련이 와도 나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죽을때까지 함께 가겠다는 산티아고의 다짐이 뭉클하다.청새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잡아당겨서는 안 되겠는걸. 세게 잡아당길 때마다 낚시가 걸린 상처가 넓어질 것이고"(55p) 청새치의 고통을 줄여주고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리듬을 맞춰줘야 한다. 산티아고의 청새치에 대한 안타까움은 계속되지만. 결국은 "난 너를 죽이고 말 테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결국 신념은 어부로서 청새치를 잡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상처투성이가 된 두 손. 쥐에 걸린 왼손. 고통스러운 등 이런 상황에서도  노인은 하늘. 새. 구름. 별. 바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읊조린다. 고난의 삶속에서도 예술을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헤밍웨이가 보인다.결국 "어느 누구도 바다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62p) 그렇다. 모든 자연은 산티아고에겐 친구이자 형제다. 

     

왼손의 쥐가 풀리지 않는다.  청새치는 죽여야 하는 목표물 이지만 대치가 아닌 서로 공존하며 흘러간다. 산티아고에게 손의 의미는 무엇일까? 신영복 <담론>에서 사람은 머리(지식) 가슴(감정) 뿐만 아니라 손. 발(실천)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티아고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가슴, 두 손은 인생의 무기가 아닐까? 나는 지금 머리.가슴 뿐만이 아니라 두손으로 인생을 살고 있나?     



 "틀림없이 풀려서 오른손을 도와줄 거야. 나와 형제 사이인 게 세 가지가 있지. 
고기하고 내 두 손. 그러니 쥐를 꼭 풀릴 거야"(65p)


자연이 잠을 자듯 산티아고도 잠에 든다. 꿈속에 사자 무리가 나타나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순간 무서운 속도로 줄이 풀려나간다. 87일째가 밝아온다. 산티아고는 자신의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 청새치와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두 다리야, 끝까지 버텨 다오, 머리야, 너도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잘 견뎌 다오, 나를 위해 견뎌 줘야 해.“(93p)"난 이놈의 심장을 만져 본 것 같기도 해“(97p) 청새치가 죽는 순간 뜨거운 심장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뜨거운 심장의 요동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할까?

      

드디어 노인은 목표를 이룬다. "발뒤꿈치에 생기는 뼈돌기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걸까.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어쩌면 우리한테도 그런 게 있을지도 몰라."(98p) 뼈돌기는 인생의 장애물이라 생각한다. 죽은 청새치를 배와 나란히 묶어 집으로 향한다. 좋은 일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달려든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104p) 산티아고는 어부의 신념으로 청새치를 잡았기에 패배는 하지 않았다. 


달려드는 상어들과 결투를 벌이면서도 쉼 없이 고뇌를 한다. "생각은 집어치워. 이젠 그저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고기를 지틸 수 있도록 손이나 제대로 풀어 두도록 해"(112p) 머리로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 주워진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산티아고의 내면이 소리친다. 결국 앙상한 거대한 뼈와 대가리. 꼬리와 함께 산티아고는 녹초가 되어 항구에 도착한다.  청새치를 잡는 순간 산티아고의 목표는 이루어졌다. 결국 청새치의 육체는 내주었을지라도 후회도 미련도 없다. 

     

소년은 노인의 죽은 듯 잠든 모습에 울고 또 운다. 상어들 습격으로 청새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파멸을 의미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그렇지 정말 그래. 내가 진 건 그 뒤였어”(125p)

 


“밤중에 내가 이상한 것을 뱉어 냈는데 가슴속에서 뭔가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구나”(126)

 “그것도 빨리 치료하시고요”(127p) 

가슴을 찢고 뱉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껏 산티아고가 얽매어있던 좌절이었을까?헤밍웨이는 산티아고를 통해 자신의 좌절을 송두리째 뽑아내 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젠 뱉어냈으니 금세 치료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식처인 침대에서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 시작과 끝은 “사자 꿈”으로 끝난다.  헤밍웨이의 절망적인 삶을 집어던지고 다시 도전을 시작한다. 현실에 몰입하되 모험과 도전을 시작하고. 끝없이 자신에 대한 고뇌를 되뇐다.  니체의 정신적인 인간 3단계 중 낙타-사자-어린아이 중 현재에 순응하는 낙타 도전하는 사자 자유로운 초인 단계인 어린아이 단계를 통해 사자의 의미를 해석해본다.  



헤밍웨이의 삶이 투영된 산티아고는 생명의 에너지인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인생의 바다를 향해 모험과 도전을 떠날 것이다. 현재에 몰입하되 멈춰있지 않고 험난한 일들이 뼈돌기처럼 방해를 한다 해도 머리-가슴-손-발을 통해 배움과 실천하며 살아갈 희망적인 삶의 자세를 다짐해본다. 산티아고가 시련을 견뎌낼수 있는 힘은 바로 '신념'이었다면. 나의 신념을 무엇이고. 신념을 위해 기꺼이 시련을 받아들일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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