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원 가서 폭식하고 왔습니다 (1)

by 책여사



“오빠... 나 2킬로나 쪘어... 어쩐지 한 달 내내 너무 잘 먹더라니... 어떡해...”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남편 옆 작은 의자에 풀썩 주저앉으며 내가 말했다. 단언코 나는 그에게 대단한 해결책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히 투정 부리다 “살 안 쪄 보여, 괜찮아” 정도의 위로나 받고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뭐 먹지?’로 넘어가면 그만일 일이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그는 번쩍이는 화면을 얼굴에 묻힌 채 잠시 멈췄다. 곧 이어진 그의 말에,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깨닫고 빠르게 후회했다. 남편은 문제가 입력되면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출력해야 하는 AI 봇 같은 사람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AI가 있는 이 시대를 역행하는, AI보다 더 AI 같은 그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았다.



‘카톡!’



“유튜브 링크 하나 공유해 놨어. 한번 봐봐. 72시간 공복 유지, 단식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보면 덜 먹게 되지 않을까?”



어이가 없어서 말도 못 뱉는 와중에 ‘뭐라고?? 그래서 지금, 나더러 72시간을 굶으라고?’를 품은 레이저 눈빛이 반사적으로 발사되었다. 뜨거운 눈빛 레이저 공격에 뒤늦게 뜨끔한 그가 변명의 단어들을 찾는 짧은 순간, 나도 그가 전한 장시간 공복이라는 해결책에 궁금증이 일었다. 72시간 이 걸릴지 100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배꼽 주변에 자리 잡은 영 거슬리는 오동통통한 살집을 해결할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 싶었다. 그러나 그 영상을 혼자 보기는 왜인지 억울해서(?) 이미 몇 번이고 봤다는 남편을 붙잡고 1.25배속으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길지 않은 영상이었지만 공복 유지 8시간, 18시간, 48시간, 72시간이 지나면 몸이 어떤 반응을 하고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는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화면 속에서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는 그의 잘 다려진 흰 의사 가운과 그 뒤로 보이는 탄탄할 것으로 짐작되는 몸의 실루엣에 설득되었으리라. 내 긍정적인 반응에 신이 났는지 남편은 조금 전 맞은 나의 레이저 눈빛에 응수라도 하는 듯 더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하고 말았다.



“단식원 가볼래?”



못 들을 말이라도 듣고 귀를 씻어내려는 듯, 고개를 도리질 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는 내 표정을 본 남편. 또다시 찾아온 ‘아차차’의 순간. 잠깐의 정적 후 인간 AI는 변명인지 자기 방어인지 모를 말을 와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식도 처음부터 그냥 72시간 시작! 하면 안 된대. 그러면 몸에 무리 가니까. 건강한 식단과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공복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대. 혼자 집에서 하기엔 너무 어려우니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해 본 말이지...”



이 내 몸이 60킬로에 육박하던 시절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단식원’이었다. 그런데 고작 2킬로 늘었다고 속세를 떠나 곡기를 끊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나를 향한 그의 말은 처음엔 귓등으로 튕겨 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를 보내버리려고 준비라도 했는지 쉬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나오는 그의 말들을 듣자 하니, 가만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나는 그 세치 혀에 2차 설득을 당해버렸다. 오케이, 그렇다면 단식원이 뭔지, 근처에 그런 곳이 있기나 한지 검색이나 해보자며 애써 침착의 옷을 입었고 다시 의자를 바로 하고 허리를 꼿꼿이 펴 앉았다. 2차 설득에 신이 난 남편의 손가락은 춤이라도 추는 듯 초록색 검색창에 ‘부산 단식원’을 입력했고 당장 지도에 찍히는 단식원만 10개 가까이 되었다. ‘세상에 굶으러 가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니!’ ‘단식원’이라는 낯선 세계가 이다지도 지천이라는 사실에 놀라 입을 ‘오오-’하고 벌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검색 결과에서 제일 처음 보이는 곳을 클릭하고 위치를 보니 ‘어라?’ 우리 집과 남편 회사 사이 번화가가 아닌가? 5일 40만 원, 10일 70만 원, 1주 50만 원부터 주차별로 수백만 원까지. 돈을 들여 먹고 찌운 살을 굶으러 가는데 또 돈을 들여야 하다니. 이 희한한 아이러니에 헛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도대체가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너무나 적극적이던 그는 다음 주 내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나는 좀 쉬려고 일정을 여유롭게 비워둔 차였다고 말했다. 곧이어 휴대전화를 내 손에 쥐어주며 상담 예약을 강권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옛말이 있었던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고분고분 전화를 걸고 다음 날 오전 방문 상담 신청을 마쳤다. 이런 일사천리라니. 이런 찰떡궁합이라니!






다음 날 아침, 남편 동행하에 도심 한복판에 있는 단식원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런 데 단식원이 있어도 돼...? 이게 맞아?’ 편의점은 양반이요, 삼겹살집에 호프집이 즐비한 골목 상가에 자리한 단식원 간판을 마주한 첫 느낌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의아스럽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함께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주로 저녁이 되어야 활기를 띨만한 식당가와 주점들이 즐비한 골목의 아침이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졌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뭔가 수상한 입구 앞에서 어젯밤 통화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에- 문 열어 드릴게요-” 어제 나와 통화한 그분이다. 곧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고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드디어 입장. 허리를 굽히고 ‘계세요~?’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누군가를 반기는 건 아닌 듯한 침침함. 바깥에서 느낀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실내가 우리를 맞았다. 깨끗한 듯 낡은 듯, 묘한 기운을 풍기는 인바디 기계와 러닝머신 사이를 지나 원장실로 향했다.



“안녕하쎄요오- 이리 앉으쎄요.”

늘 상주하시는 건 아닌지 원장실도 찹찹하긴 마찬가지. 형광등을 켜 밝혀놓았지만 왠지 어두운 느낌이 가시질 않는 조도가 신기해 자꾸 천장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 묘한 전체 분위기보다 더 놀라웠던 건 어제 통화한 그 남성분이 원장님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전용 다이어트 캠프’라는 이름에 왠지 걸맞지 않은 남자 원장님이라니? ‘아- 수상하다 수상해...’ 내 머릿속의 부조화를 남편에게 이야기할 겨를도 없이 상담은 시작되었다. 상담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말하는 정해진 루틴이 있으신 듯했지만, 머릿속 부조화 때문이었는지 원장님의 말들은 내게 미처 다가오지 못하고 자꾸만 흩어졌다. 어느 정도 감량을 원하는지, 얼마나 머물길 원하는지 간단히 물으시고 일자별 가격과 프로그램, 식단을 소개해 주셨다.



짧은 소개 후 ‘그저 가둬두고 굶기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반가운 내심이 있긴 했지만, 마음 한편 미심쩍음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에 결제하게 된다면 제가 머물게 될 방을 미리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럼요-” 하고 벌떡 일어서시더니 곧 방뿐만 아니라 어두웠던 시설 곳곳에 불을 밝혀가며 자세히 안내해 주셨다. 공용부로 사용하는 공간은 내가 쓸 일이 별로 없을 거라 여겨 대충 둘러보았지만 오랜 시간 있어야 할 방은 자세히 둘러보았는데 첫인상은 딱 ‘간소하게 잘 정리된 대학생 자취방’이었다. 크지 않은 방 한편에 작은 화장실이 딸려있고 가구는 침대 하나, 화장대 하나, 침대 맞은편 벽엔 작은 벽걸이 티브이가 걸려있었다. 대단히 좋은 시설은 아니었지만 오일정도 머물기엔 충분하다 싶었다. 작은 방구석구석을 휘저으며 샤워기, 변기 수압 체크에 화장대 서랍까지 하나하나 열어보며 꼼꼼히 살피던 남편의 팔을 붙잡고 긍정적인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시 원장실로 돌아와 날짜를 확정하고 5일 동안 머물 수 있도록 결제했다. “그럼 월요일 9시 30분까지 오세요~” 하는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남편과 나는 단식원 정문을 빠져나왔다. ‘홀린 듯이’라는 말을 이렇게 체험하게 되다니. 세상에나.



이렇게 흘러버린 상황에 적잖이 황당스럽기도 했으나 곧이어 든 생각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잠깐, 거기 가면 밥 안 해도 되고, 게다가 청소도 빨래도 잊고 지낼 수 있겠네? 이거 합법적 유배지잖아?’



남편은 전문가들과 함께 지내면서 단식을 배우고 체험하며 이후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몇 차례나 ‘잘 배워오길’ 당부했지만, 내 속마음엔 그때부터 다른 생각만 가득했다. ‘배우긴 뭘 배워... 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으흐흐’ 단식원 프로그램이나 음식 섭취 제한에 대한 걱정 따위는 안중에 없어졌고 마음껏 활자를 먹어치울 생각에 벌써 2킬로가 빠져버린 듯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입소 당일 월요일 아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채운 5일을 보내고 토요일 아침 퇴소. 5일간 타이트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5일간의 자유 독서 부인’이 된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머물 방에 짐을 내려놓은 남편은 쉽게 발걸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본인이 단식원 들어온 것도 아니면서 이런저런 걱정으로 복잡한 머릿속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72시간 공복을 전도하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를 설득할 때의 신나 보이던 그 눈빛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혹독한 유배지에 아내를 버리고 가는 사람마냥 후회막급한 얼굴로 질척거리다니. 난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네. 괜찮겠어? 배 안 고프겠어? 배고프면 그냥 뛰쳐나와. 짐 다 놔두고 그냥 나와. 알았지?”



‘어이구 저러다가 울겠네..?’ 어쩐지 내가 남편을 달래는 입장이 돼버린 게 우스웠지만, “걱정하지 마, 잘 지내다 갈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며 위로하는 것도 좀 지겨워졌을 즈음, 남편은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잡고 있던 두 손을 놓고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애써 웃어 보이며 안녕을 고했다. 남편이 사라진 문 뒤로, 나는 비로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난 정말 괜찮다니까.






막상 머물다 보니 을씨년스러웠던 첫인상도 어느새 사려졌다. 또 단식원 생활은 놀랍게도 내 몸에 잘 맞았다. 물론 나는 체중 감량만을 목표로 들어온 게 아니었다. ‘벽돌 책 두 권 독파’라는 나름의 야망이 있었기에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리터럴리 ‘쏜살’같이 지나갔다.



새벽 6시에 눈을 뜨면 스트레칭과 이불 정리,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하루를 연다.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필사를 하는 아침 루틴은 그대로 유지하되, 10시부터는 이곳의 룰을 따랐다. 함께 입소해 있는 분들과 좋은 경치를 보며 산책하는 시간에는 ‘이런 코스가 있었다니! 남편이랑도 와야겠다!’ 마음먹었고 평일 오전 어중간한 시간에 관광객들 사이를 걸으며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온 듯 즐거웠다. 또 요일에 따라 한의원이나 사우나를 방문했는데 처음엔 ‘이 시간에 책이나 더 읽을까?’ 고민했지만, 본전 생각에 딱 한 번씩 체험이나 해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누가 내 벗은 몸을 보는 것도, 누군가의 벗은 몸을 보는 것도 싫어 안 간 지 오래인 사우나에 눈 뜨게 될 줄이야. 수십 년 전 발길을 끊었던 사우나의 뜨거운 공기가 내 몸 구석구석을 깨우는 느낌이랄까. 온탕 냉탕을 오가며 온몸에 피가 돌고 시력마저 좋아지는 혈액순환의 맛을 본 덕분에 방으로 돌아가 책장을 넘길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유연해진 기분이었다.



오전 루틴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단백질과 식이섬유 위주의 건강한 한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 한 끼, 지금 아니면 못 먹는 귀중한 식사. 공복 운동에 사우나까지 마치고 온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겠지만, 6~7개의 접시에 오밀조밀 담긴 색색의 음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였다. 닭 가슴살이 푸짐하게 올라간 샐러드, 붉은 토마토와 탱글탱글한 모차렐라 치즈, 아삭하고 달콤한 콜라비와 탱실탱실한 샤인머스켓과 딸기. 무엇보다 손을 대면 뜨거울 정도로 갓 쪄낸 달걀과 양배추 쌈은 혀끝에서 녹아내렸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고작 700칼로리 남짓이었지만, 위장을 넘어 가슴까지 든든해지는 포만감에 허리를 쭈욱 펼치고 배를 두드릴 뻔했다.






그런데 육체의 허기가 채워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종류의 배고픔이 밀려왔다. 이제부터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만의 시간!’ 아무리 프리랜서라지만 시간을 몸과 마음 내키는 대로 썼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음을 알기에, 평소엔 촘촘한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스케줄을 쪼개 쓰던 나다. 그렇기에 합법적으로 잘 비워진 이 오후 시간은 거대한 설렘일 수밖에 없었다.



몸은 가볍고, 위장은 편안하며, 주변은 고요하다. 이 얼마나 완벽한 세팅이란 말인가. 식욕이 사라진 자리에 활활 타오르는 활자욕을 느꼈다. 나는 조용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하루 한 끼 식단보다 더 맛있는, 800페이지짜리 만찬을 해치울 차례다. 표지를 넘기는 순간, 나의 진짜 폭식은 시작될 것이다.



(2부에서 계속)



✳︎ 글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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