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원 가서 폭식하고 왔습니다 (2)

《핑거스미스》

by 책여사




속세의 중생들이 식곤증을 이기려 애쓰며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있을 월요일 오후 3시. 왁자한 먹자골목 상가 2층, 콘크리트 벽 하나로 속세와 단절되어 있는 단식원의 공기는 예상보다 더 차분하고 고요했다. 그러나 내 앞에 놓인 소설책 《핑거스미스》는 위풍당당한 물리적 존재감을 과시하며 한시바삐 자신을 읽어주길 바라는 듯 달떠 있다.



832페이지, 책 등 두께만 해도 4센티가 넘는 데다, 한 페이지당 종이 무게가 1그램쯤 되는지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기본 정보에 실린 책의 무게는 834그램. 한 손에 책을 들어 올리고 그 무게를 가늠해보고 있자니 집에 있는 작고 소중한 핑크색 덤벨이 떠오른다. 아주 공교롭게도 책 아래쪽에 둘러져 있는 반짝거리는 핑크색 띠지와 거의 같은 형광 핑크빛 몸을 한 나의 덤벨. 기껏해야 500그램에 지나지 않는 녀석은 내가 언젠가 손을 뻗어 잠시나마 그를 중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사실 그런 날은 흔치 않다. 만약 그런 일이 잦았더라면 내가 오늘처럼 단식원 방 한 칸을 차지하는 일일랑 없었겠지. 그런데 덤벨 본인보다 무거운 책을 한 손에 들고 흥분한 콧구멍을 감추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본다면 그는 ‘다음 생엔 벽돌책으로...’하고 한숨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확실히 《핑거스미스》는 단순한 독서용 책이 아니라 독서 근육을 키우는 훈련에 적합할 벽돌책이다. (아니... 덤벨책?)



꼬르르르— 책 폭식 예고에 반항이라도 하는 듯, 평소보다 훨씬 빈 공간이 많을 내장기관들이 빈약한 신음소리를 내며 방 안의 조용한 적막을 깬다. 평소라면 당장 냉장고 문을 열어젖혀야 할 신호였겠지만, 네 평 남짓 앞으로 5일간 머물기로 되어있는 작은 내 방엔 냉장고가 없다. 지금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꼬수운 탄수화물이나 과당 들어간 달콤한 군것질거리가 아니라 세라 워터스가 직조해 낸 19세기 런던의 안개 자욱한 이야기뿐. 나는 과연 현실의 배고픔을 잊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푹 빠져들 수 있을까?



-



요즘 재미 삼아 해보고 있는 일 중 하나는 나의 읽기 속도를 측정해 보는 일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지 체크하며 읽어나가는데 측정 방법은 간단하다. 1시간 타이머를 맞춰두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머릿속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의 흐름이 종종 의식되긴 하지만 마음으론 되뇐다. 평소대로 읽는다, 빨리 읽고 싶은 마음 때문에 메모를 하지 않거나 플래그를 붙이지 않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평소대로 읽는다. 이래저래 스스로를 타이르며 도둑맞은 집중력을 다시 활자 사이로 데려다 놓는다.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쥔 검은색 연필을 책 표면에 가로로 누이고 연필 위 각기 다른 간격으로 자리한 자음과 모음의 집합체를 나의 안구는 착실히 읽어나간다. 읽는 구간에 맞추어 한 줄 한 줄 슥슥 따라 내려갈 때 종이와 연필이 만드는 가벼운 마찰음은 언제 들어도 리드미컬하다.



삐빕, 삐빕, 삐빕. 1시간이 경과되었다는 알람이 울리면 연필을 내려놓고 잠시 읽기를 멈춘다. 플래그로 지금까지 읽은 곳을 표시해 두고 페이지를 확인한다. 《핑거스미스》 60분*N회. 시간별 진도를 기록하기 위해 책 제일 앞 면지에 붙여둔 정사각형 노란색 포스트잇에 시간은 바를 정(正) 자로, 진도는 페이지 수로 기록한다. 1시간 53쪽, 음— 낫 배드. 소설 도입부는 인물의 성격과 배경,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좀 느리게 읽히는 편인 데다 좋은 문장 만나면 플래그 붙이랴, 등장인물들과 말싸움하느라 짧고 긴 메모 덧붙이랴, 단순히 눈으로 읽기만 하는 게 아닌데 이 정도 속도라니. 시작이 좋다. 은은한 혼자만의 만족감을 잠시 음미하고 다시 타이머를 맞추고 읽기를 반복한다. 2시간 104쪽, 3시간 160쪽, 4시간 232쪽. 오! 평균적인 속도를 웃도는 구간을 만나면 기분이 더 좋다. 물론 나도 안다. 빨리 읽어 치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게임하듯 읽는 이 재미, 헛둘헛둘 벽돌책을 격파해 나가는 이 여정이 주는 도파민을 당분간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넷플릭스 왜 보냐? 벽돌책 격파하면 되는데. 여기에 찐 도파민이 있는데!



-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치고 원작을 뛰어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랜 경험에 나 또한 동의한다. 일례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보자.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는 원작 소설의 방대한 후각적 묘사를 감각적인 영상미로 훌륭하게 재현해 낸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18세기 프랑스 빈민촌의 비린내와 귀족들의 향기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하여 몰입감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나도 영화를 본 후에 소설을 찾아보게 되었고 세간의 평에 대부분 동의한다. 잘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면 원작에 대한 기대도 없었을 테고, 굳이 소설을 찾아 읽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영화로는 두 번 보고 충분하다 느꼈다면 소설 《향수》는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여섯 차례 이상 읽었고 앞으로도 또 읽게 되리라 예감한다. 읽을 때마다 달리 보이거나 새롭게 발견되는 문장을 마주하며 감탄하는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어찌 다시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핑거스미스》 원작,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어떨까. 2016년 개봉 당시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파격적인 스토리와 탐미적인 영상미로 호평받았더랬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하고 170여 개국에 수출되는 저력을 발산하며 국내외 할 것 없이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니. 이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과 내가 국적이 같다는, 그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오천만 국민들의 척추를 바로 세우고 가슴을 펼치게 해 준 작품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실 조금은 기대했다. 원작 소설을 능가하는 흔치 않은 영화가 바로 <아가씨>이길. 832페이지, 나의 길고 긴 이 독서의 시간이 그것을 증명하는 장이 되길.



-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대화가 없어지듯, 책을 먹어 치우는 동안 세상의 소음은 차단되었다. 위장을 비운 물리적 허기가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지적 허기로 완벽하게 대체되었다. 꼬르륵 소리와 함께 시작한 독서였지만 《핑거스미스》 이 요물 같은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뒤로 갈수록 재미를 더해가는 대단한 페이지 터너의 위력 덕분에, 유산소 운동이라도 하는 듯 내 심장은 득-근, 득-근 세차게 박차를 가했고 기분 좋은 한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리고 질투했다. 이다지도 잘 쓰다니! 그리고 한 번 읽고 헤어질 소설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렇다. 원작 소설보다 나은 영화가 되어주길 바랐던 나의 소박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라 워터스라는 이 작가를 만나게 해 준 박찬욱 감독에게 나는 반드시 특별한 감사를 전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휴대폰에 나침반 앱을 켰다. N!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잠시 묵념. 무슬림이 메카 방향으로 절을 올리듯 박찬욱 감독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방향으로 정중히 절을 올렸다. 보통 산 사람에게 올리는 절은 한 번으로 족하지만 나는 한 차례 더 절을 올렸고, 이 절은 번역가를 포함한 출판 관계자분들을 향한 것이었다. 아— 이런 귀한 작품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게 해 주시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



단식원 입소 첫날 식사 후 4시간, 둘째 날 아침저녁으로 8시간, 셋째 날 새벽부터 4시간. 꼬박 16시간 동안 읽기에 몰입하며 소설 뒤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와의 인터뷰, 옮긴이의 말, 판권지까지 832페이지를 말끔하게 먹어 치운 후 몰려오는 포만감이란. 이것은 진짜 위가 채워지는 포만감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줬다. 유기체로 태어났으므로 안 먹고 살 수야 있겠냐만은 어느 정도 신체적 배고픔은 정신적 포만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과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여닫는 나에게 꼭 맞는 특효약을 찾았다. 냉장고 대신 책장, 폭식 대신 폭독(?!). 혹시라도 몸이 기억하는 습관대로 냉장고를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질지 모르니 앞으로는 먹어 치우고 싶어 안달 날만한 먹음직스러운 책들을 냉장고에 싱싱하게 보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 지성미로 가득할 나의 냉장고여.



이렇게 된 이상 세라 워터스 읽기를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다시 한번 휴대폰을 들어 이번엔 AI 앱 제미나이를 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 책이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마지막 작품이었다니.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 쓰게 되었다는, 현실마저 심상치 않은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 방금 차올랐던 독서의 포만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시 한번 나의 활자욕에 타닥타닥 불붙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당장 씹어먹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데뷔작 《티핑 더 벨벳》과 후속작 《끌림》까지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까지 완료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캄캄해진 방. 몸은 단식 중이나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과식 중인 이 기묘한 밤. 침대 위 수면용 안대를 하고 누워있는 내 입꼬리는 이미 내일 만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마중 나가 있다. 낯선 침대 위의 잠이 이다지도 달콤한 이유는 굳이 말해 뭐 하겠는가.



(3부에 계속)



✳︎ 글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발행됩니다.
작가의 이전글단식원 가서 폭식하고 왔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