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다."
대한민국 숱한 다이어터들의 식탐을 내려놓게 만든 가수 옥주현 님의 이 명언은 다이어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활자 폭식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이 말은 통하지 않는 주문이었다. 아는 맛이란 얼마나 강력한 유혹인가. 모르는 맛은 호기심에 그칠 수 있지만, 아는 맛은 의식의 영역에서 생각이란 것을 채 하기도 전에 뉴런의 반응이 빠르게 끝나고 입안에 침이 흥건하게 고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이 굴레를 자각하는 순간 묘한 수치심이 밀려오긴 한다. 하지만 혀끝을 감도는 짜릿한 전율, 심장을 조이는 쫄깃한 식감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어쩌겠는가. 그 정도 수치쯤은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맛을 아는 자’의 숙명이다.
바로 어젯밤 832쪽짜리 《핑거스미스》라는 거대한 요리를 해치운 후임에도 내 영혼이 여전히 입맛을 다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아는 맛’이 차려져 있으니 말이다. 1847년 처음 출간된 고전이자 수년 전 한 차례 완독 후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던 소설 《폭풍의 언덕》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단식원에 들어오기 전 계획했던 식단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아닌 그의 언니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여기서 잠깐. 샬럿, 에밀리,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아그네스 그레이》의 작가 앤 브론테까지. 이 셋은 자매다. 대관절 그들이 나고 자란 1800년대 영국의 요크셔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집안에서 세기를 뛰어넘어 인정받는 영문학의 거장들을 셋이나 배출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 세 자매는 자신들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 성은 ‘벨’로 통일하고 각각 ‘커러(Currer), 엘리스(Ellis), 액턴(Acton)’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이겠지만,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물론 19세기 후반까지도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과 그에 따른 차별은 가혹했다. ‘여자는 소설을 쓰면 안 된다’는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적 편견이 팽배했고, 여성이 쓴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진지한 문학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작품성을 의심받아야 했다. 또한 가사와 집필을 병행해야 하는 역할의 압박에도 시달려야 했는데 이 지점에 대해서는 21세기 현재에도 뾰족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입맛이 더욱 쓰다. 엄혹한 시대의 다중고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여성 선배 작가들의 허기진 열정. 그들이 피땀 흘려 닦아둔 이 길 위에서, 나는 감사와 동시에 기묘한 희열을 느꼈다. 시대를 건너온 그들의 ‘쓰기에 대한 허기’가, 활자를 탐닉하는 나의 ‘읽기에 대한 허기’와 만나 비로소 온전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브론테 세 자매’의 대표작이 새 옷을 입고 하나의 컬렉션으로 출간되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개정판 표지 사진을 찍은 것으로 처음 알게 된 이옥토 사진가. 작가 특유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표지들을 보자마자 이미 내 머릿속엔 작은따옴표와 온점까지 포함한 ‘소. 장. 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책 읽는 것과 더불어 책 사기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북호더*들이라면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제인 에어》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만드는 928페이지의 풍채를 자랑했다. 한쪽 손아귀를 빈틈없이 메우는 폭력적 비주얼은 감히 재미 삼아 펼쳐보기조차 힘든 아우라를 풍겼다. 그리하여 단식원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 도전해 보겠나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앞서 이틀간 《핑거스미스》를 읽으며 측정한 나의 속도는 시간당 60쪽 남짓. 간단히 계산해 봐도 최소 열다섯 시간에서 열여덟 시간 삼십 분은 걸릴 거라는 견적이 나왔다. 남은 이틀 안에 《제인 에어》를 완독 하려면 잠을 줄여가며 기계처럼 읽어야 했다. 그럼에도 결국 끝내지 못한다면 화장실에서 뒤처리하지 못한 채 나온 찜찜함으로 단식원을 나서게 될 것이었다. 그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제인 에어》를 캐리어 깊숙이 밀어 넣었다. “미안하다 제인, 넌 너무 헤비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자.”
사실 이런 내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년 전 읽는 과정이 꽤 괴로웠기에 다시는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폭풍의 언덕》. 바로 그 작품이 2026년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 주연으로 새롭게 개봉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영화화된 《폭풍의 언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20년 처음으로 영화화된 데 이어 193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고전 명작부터, 1992년 중세 일본 배경의 각색 버전, 2011년 흑인 배우가 히스클리프를 연기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버전까지. 지난 100여 년간 수많은 거장이 이 괴상망측한 사랑 이야기를 다시 쓰고 또 썼다. 도대체 이 이야기에 무슨 마력이 있길래 세기를 넘어 사람들을 홀리는 걸까. 내가 아는 그 맛이 과연 여전할까 하는 의문이 마음의 잔불을 지폈던 것이다.
《폭풍의 언덕》으로의 노선 변경이라는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좀 더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어리석고 오만하게도 단식원에 들어오기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외쳤더랬다. ‘저 단식원 들어가 있는 5일 동안 《핑거스미스》, 《제인 에어》 뿌시고 올게요!’라고. 이 한 치 앞도 모르는 사피엔스여. 그래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나의 절박한 사정을 곁들인 투표를 올렸다. ‘단식원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알차서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ㅜㅜ 남은 시간 이틀, 여러분이라면 뭘 시작하시겠어요? 1. 계획대로 《제인 에어》 928쪽, 2. 완독 가능성 높은 《폭풍의 언덕》 592쪽. 투표해 주세요!’ 주사위는 던져졌고 한 시간 후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내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지만, 누군가 등을 떠밀어주길 바라는 비겁한 심정으로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그렇다면 투표 결과는? 45:55. 생각보다 치열한 접전 끝에 내가 원했던 쪽으로 결과가 집계되었고 나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니 합법적 면죄부를 받은 심정으로 좁아졌던 미간과 함께 《폭풍의 언덕》을 펼쳤다.
그런데 이 선택이 탁월하지만은 않았다는 결론은 참으로 빠르게 내려졌다. 고작 336쪽이 더 적다는 얄팍한(?) 페이지 수에 넘어가 스스로의 다짐을 저버리다니. 꼴좋다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과거의 내가 이 책을 덮으며 진저리를 쳤던 이유는 명확했다. 소설 속엔 도무지 정상적인 사고회로를 가진 인간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저주를 퍼붓고, 사랑한다면서 서로를 할퀴어대는 꼴들이라니. 그때는 그 날것의 감정들이 그저 소음처럼 느껴져 읽는 내내 기가 빨렸더랬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곡기를 끊고 비워낸 뱃속으로 들어오는 이 문장들이, 이번엔 전혀 다른 맛으로 씹히기 시작했다. 역시나 기빨리는 맛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지만 한층 깊은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했다. 육체의 허기가 극에 달해서일까. 히스클리프의 그 지독한 집착과 광기가 더 이상 ‘피곤한 소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명, 사랑받지 못한 자의 아우성’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 예의와 체면이라는 껍데기를 다 벗어던진 인간 본연의 굶주림이 활자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캐서린을 향한 그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며칠 굶은 짐승이 먹이를 앞에 두고 보이는 처절한 식욕에 가까웠다. “너 없는 삶은 지옥”이라는 그의 절규가, “탄수화물 없는 5일은 고문”이라고 외치는 내 세포들의 아우성과 묘하게 공명했던 걸까. 이 처절한 사랑을 내 식욕 따위에 빗대다니. 히스클리프, 아임 쏘 쏘리.
이 책을 읽는 아홉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책장을 덮었다 다시 펼치기를 반복하며 숨을 골라야 했다. 빼곡하게 정렬된 플래그를 펼쳐보면 ‘꺼져! 그만해! 닥쳐! 악마! 凸-_-, ㅁㅊ…’ 같은 정제될 수 없었던 감정들이 흑심 부러질 듯한 필압으로 쓰여있다. 사랑과 폭력의 경계에 선, 아니, 폭력에 가까운 그들의 사랑놀음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일었다. 전쟁 같은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책 밖으로 튀어나와 작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책과 나 사이에 어떤 보호장비도 없이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야 했다. 아- 너무나 괴롭도다. 그런데 이다지도 괴롭고 중독적인 맛이라니! 나는 단식원에 와서 선택 가능한 가장 자극적인 맛을 보고야 만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우아하게 음미하는 메인 디시’가 아니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고 짜지만,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마라탕’ 같은 책이다. 속이 쓰릴 것을 알면서도 국물까지 들이켜게 되는 중독적 자극. 심지어 현실의 나는 마라탕도 좋아하지 않는데, 이걸 두 번씩이나 당하다니. 어딘지 분한 마음 한편으로 이런 짜릿함을 선사하는 소설이라면 세 번 네 번도 다시 당할 채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머지않은 미래의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가학적 희열을 기대하며 다시 또 이 책을 펼치고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한동안 미각을 잃은 채 살게 될 운명이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초강력 마라 맛에 내 혀는 피바다가 되었으므로.
(4부에 계속)
*책(Book)과 저장강박을 뜻하는 호더(Hoarder)의 합성어로, 책을 많이 사들이지만 읽지는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사람
✳︎ 글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