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판 아니면 죽을 판* (하)

by 책여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던가.

나를 세상에 부려놓은 한 남자가 스스로 세상을 저버린 후 15년쯤 지난 어느 날, ‘자살 유가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대면했다. 이름 없는 유령처럼 떠돌던 우리 가족의 슬픔에 비로소 이름표가 붙은 날.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우리 집만 유독 불행했던 게 아니었구나.’ 옅은 안도는 짧았고 뒤이어 마주한 숫자에 굳어오는 오금을 못 펴는 나를 붙잡아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십오, 스물다섯 배. 자살 유가족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스물다섯 배 높다는 무서운 통계는 과거 나를 유혹하던 충동질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은 ‘일반인’이 아니라는 폭력적 선고 앞에 영문도 모른 채 세워졌다. 그 무해한 호명은 얼마나 권위적이었던가. 이름 붙이는 자의 권위 앞에 우리는 한 송이 꽃이 되어버렸고 이내 들풀 밟히듯 무참히 짓밟히는 기분을 감내하는 건 오로지 꽃들의 몫이었다.



마치 우리 가족에게 내려진 판결문 같았던 날 선 데이터. 나 역시 언젠가는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으로 발을 내디딜지도 모른다는 예고된 공포는 지금도 마음 한편에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그 공포는 내 안에 기이한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세상이 내놓은 무심한 평균값이 내 삶의 결말까지 대신 쓰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스물다섯 배라는 확률의 감옥에 갇혀, 비극적인 데이터를 증명하는 표본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가운 통계와 싸워 이기기보다, 그저 그 숫자가 틀렸음을 보여주는 고요한 예외가 되기로 했다. 매일 뜨거운 숨을 내쉬며, 살아있음 그 자체로 그 서늘한 예언을 조용히 비껴가겠다고 다짐했다.

죽음의 충동질에 질끈 눈 감아야 했던, 그 서늘한 그늘을 설설 기어야 했던 나의 이십 대. ‘이대로는 못 살겠다!’ 소리치듯 죽음에 맞서 다시 심장에 불을 지펴 올리던 나의 삼십 대. 열다섯에 시작된 죽음과의 한 판 줄다리기는 마흔으로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까? 긴 시간 온 힘을 다 쏟아보고 나니, 이제야 맞은편에 선 죽음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줄을 흔들어 나를 떨어뜨리려던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이라는 줄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팽팽하게 당겨주는 조력자였다.



아빠가 먼저 몸을 던진 그 허공의 깊이를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차갑고도 뜨겁게 버텨낸 지난 시간을 통과하며 이것 하나는 알 것 같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통과하는 삶의 진동은, 죽음이라는 팽팽한 장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옳다. 어차피 죽을 판 위에 펼쳐진 살판이다. 나는 이제 모니터 속 여인처럼 부채를 펴 든다. 발밑에 아뜩하게 깔린 침묵의 심연. 그 위를 가로지르는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 자체로 생의 유희이자, 온전한 의미다. 부채 끝에 걸리는 바람을 가볍게 맞으며, 나는 사뿐히 발을 내디딜 것이다. 저 건너편, 나를 기다리는 죽음의 손을 다정히 맞잡을 때까지. 찰나와 겁(劫)이 공존하는 그곳에 닿을 때까지.




*줄타기 명인 김대균의 영상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5ZK6l-q-B7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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