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도 유전인가 (상)

by 책여사



중학교 3학년. 교복 셔츠 위에 누런 삼베 완장을 찼다.



지난밤, 나는 침대 위에서 죽은 듯 숨을 죽였다. 옆 침대에서 쌔근거리는 남동생의 숨소리, 방문 밖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엄마의 발소리. ‘엄마가 내가 깨어있다는 걸 알면 안 돼.’ 두 눈만 살아있는 사람처럼 이불속에서 바스락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만 깜빡이며 밤을 지새웠다. 푸르게 밝아오는 아침이 내게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어 준 듯 그제야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벗어났다. 여느 날과 같은 아침. 그러나 영원히 달라진 그날 아침. 아무 일 없는 듯 엄마가 전해주는 도시락을 챙겨 들고 학교로 향했다.



‘뚜벅뚜벅뚜벅...’ 조용한 수업 도중 복도 저편에서 구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내 교실 앞문이 열렸다. 3학년 4반. 해를 받아 반짝이는 초록색 팻말 아래 낯선 선생님 한 분이 서서 작은 쪽지를 펼쳤다.



“이지혜, 잠깐 교무실로-”



예감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 줄이야.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허공을 딛는 듯했다. 중력이 사라진 듯한 걸음걸이. 두려운 예감은 현실이 되고,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는 문장을 온몸으로 체감했던 순간.



‘드르륵-’ 교무실 문을 닫고 나는 곧장 1학년 10반으로 향했다. 내 동생이 있을 교실. 모두가 평온하게 수업 중이던 한낮, 우리 남매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덜컹거렸다.






장례식을 치르고 얼마 뒤, 고모를 만나러 갔다. ‘내 모습 사진관’. 아빠가 사업을 하기 전 고모와 함께 운영했던 곳. 폭이 좁고 속으로 깊은 직사각형의 3층 건물. 길 건너 고만고만한 상가 건물들 사이로 사진관만 우뚝 솟아 내 눈에 쏙 들어왔다. 1층, 2층 사진관 안에서 꼬마였던 내 얼굴엔 처음으로 립스틱이 발라지고 짙은 눈썹이 그려지기도 했지. 거울 속 낯선 모습에서 어느 먼 날을 짐작해 보던 통통한 어린 눈. 어느 날은 공주옷을 입고, 어느 날은 석사모를 쓰고 사진 찍히는 게 마냥 즐거웠던 어린이.


‘아빠가 사업 같은 걸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여전히 여기 있을 텐데...’


한 걸음 또 한 걸음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가까운 길을 에둘러 건넌다. 사진관 문을 열자 ‘짤랑’ 방울 소리와 함께 유리 선반 속 카메라들, 벽에 걸린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커다란 넝쿨무늬 자가드 천 소파. 그 앞의 낮은 유리 탁자 위로 신문지가 펼쳐졌다. 숨을 고르고 어색하게 안부를 묻는 사이 짜장면과 탕수육이 도착했다.



“지혜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도 그렇고, 니도 때가 오면... 니는 남들이 겪을 일을 조금 빨리 겪었을 뿐이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나눌 얘기 같지는 않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골라보지만, 떠오르는 말은 없다. 그렇게 텅 빈 마음 위로 고모의 말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밖은 아직 겨울인데 여기는 온실처럼 따뜻하네요. 꼭 봄 같아요.”



나는 해바라기처럼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쪽으로 목을 쭉 뻗으며 눈을 감고 동문서답한다. 억지로 힘껏 올려보는 입꼬리 틈으로 고모의 눈빛이 읽힌다.



그때 고모의 말은 위로라기보다 차라리 '선고'에 가까웠다. 아빠를 잃은 아이에 대한 동정의 기척은 어렴풋할 뿐. 대신 운명에 대한 서늘하고 담담한 인정이 선명했다. 너는 불행한 아이가 아니라, 조금 일찍 어른이 되어야 하는 아이라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영문도 모르고 받아 든 예언 같은 말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소화할 힘이 없었다. 그저 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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