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크고 네모난 유리창 너머로 몸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십수 명의 여인들이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곳이 안방이라도 되는 듯 오른쪽 팔과 다리를 구십 도쯤 접어 벽에 기대고 팔은 이마 위로, 다리는 무릎 위로 올리고 누워 있는 저 여인을 보라. 그의 입은 꺾여있는 팔다리의 각도만큼이나 무방비하게 쩍 벌어져 있다. 천장을 향해 드러나 있는 그의 희고 너른 배는 마치 커다란 리코타 치즈에 젓가락으로 뽕 구멍을 뚫어놓은 듯한 일면 먹음직스러운 형상이다. 만약 그가 허락만 해준다면 양 손바닥으로 그 쫀쫀한 찰기와 탄력을 퉁기는 체험을 해보고 싶다. 벗은 몸이 무색하게 천하태평한 자세로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여인은 사실 꽤 전위적인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여인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2층 계단형 벤치에 다리를 꼬거나 젖은 수건으로 음부를 가리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몇 개의 그룹을 이루고 있다. 너도 나도 벗은 몸이 당연한 이곳은 바로 대중목욕탕 사우나실이다. 습식 사우나와 건식 사우나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데 지금 나는 습식 사우나실에서 네모난 유리창을 통해 건너편 건식 사우나실을 바라보고 있다.
내 쪽에서 보기엔 이미 만석 같은 그곳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며 좌우를 살피고 앉을자리를 찾는 눈은 다른 몸들을 그리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이미 앉아있던 사람들도 무심하긴 마찬가지. 열린 문으로 시선을 주는 듯하더니 이내 눈길을 거둔다. 북적이는 자리를 피해 몇 걸음 옮기는 짧은 순간, 나른하게 축 처진 마른 어깨와 두 팔, 등줄기에 흐르는 상아빛 윤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는 이내 들고 있던 수건을 반으로 접고 벤치에 척하고 펼쳐 앉을 영역을 설정한다. 중력과 함께한 세월이 느껴지는 살짝 처진 가냘픈 엉덩이를 수건 위에 올려놓기 전 접혀있던 수건을 다리 사이로 툭 펼친다. 그러고는 나머지 반쪽 수건에 엉덩이를 안착시키고 아래로 펼쳤던 수건을 아기에게 기저귀 채우듯 다시 접어 제 음부를 가리고 가부좌 비슷한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다. 편안한 듯 축 늘어진 온몸의 근육과 표정이 흡사 여성의 몸을 한 석가모니처럼 보인다. 그렇지, 이곳에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내려놓기 좋으리라. 나도 모르게 끄덕끄덕 공감을 표한다.
반쯤 감은 눈으로 창 너머 여인들을 바라보며 숨이 턱 막히는 뜨겁고 두껍고 무거운 공기를 조심조심 마시고 뱉는다. 온몸을 흐르는 땀이 이다지도 반가운 때가 있었던가.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땀 줄기는 두피를 흐르는 동안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내 머리통 모양을 짐작하게 한다. 두피를 타고 이마를 건넌 땀방울 중 일부는 눈썹이란 방어막에 꺾여 관자놀이로 향하고, 기어이 눈썹을 뚫고 눈두덩을 지나는 땀 줄기는 눈으로 직행하기 전 조금은 귀찮은 듯 들어 올려진 양 손바닥에 의해 닦여진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건너편을 응시하며 나는 생각한다. ‘저 장면을 어디에서 봤더라..?’ 한껏 풀렸던 얼굴 근육을 힘겹게 밀어 올려 미간에 주름을 잡고 속으로 갸우뚱한다. 마침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폭의 그림. 피카소의 그림이란 것에서 생각이 멈추고 다시 미간을 좁힌다. 간질간질 제목이 생각날 듯 말 듯 약을 슬슬 올리지만, 하하하 나는 기어코 생각해 냈다. ‘아비뇽의 처녀들!’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의 사창가 여인들을 모델로 했다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원작의 배경은 유곽이었다지만 지금 내게 영감을 준 건 그들의 출신 성분이나 관능의 냄새가 아니었다. 피카소의 그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미술사 최초로 ‘아름답게 보이기를 거부한’ 당당하고 원초적인 몸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각으로 꺾인 팔과 다리, 무심하게 공간을 점유한 제각각의 부피들. 누군가에게 관상용으로 바쳐지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가장 편안한 각도로 해체된 몸들은 이곳 사우나실의 여인들과 무척 닮아있다. 사우나실 여인들에게서도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입체파적 해방감이 물씬 풍겼으니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원작의 기하학적 당당함을 훌쩍 뛰어넘는, 살아 움직이는 큐비즘 그 자체였다. 피카소의 캔버스를 현실 세계로 무한히 확장시킨, 21세기 아비뇽의 여인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땀을 빼고 있는 것이다.
그 위풍당당한 여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나 역시 한 자리 차지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니, 새삼 지금 이 상황이 낯설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후끈한 공기를 뒤로하고 묵직한 유리문을 밀어 사우나 밖으로 나섰다. 숨 막히는 열기가 한풀 꺾이고, 찰박거리는 물소리와 웅웅 울리는 말소리가 탁 트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또 다른 살풍경을 마주한 나는 애써 주위를 분산시킨다. 얼렁뚱땅 옮겨 다니는 시선에는 마른 몸과 퉁퉁한 몸, 젊은 몸과 늙은 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서도 누구 하나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무심함. 그 당연하고도 평화로운 풍경 속에 섞여 들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스르르 편안해졌다. 땀을 뺐으니 이제 어느 탕에 몸을 담글까. 널찍한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던 찰나, 한쪽 벽면을 길게 채운 창문으로 시선이 멎었다. 뽀얗게 서린 수증기 너머로 길게 뻗은 광안대교의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 이곳은 부산에서도 꽤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해수 목욕탕. 불투명한 창밖으로 광안대교가 보이는 오션뷰 목욕탕이라니.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는 걸 내 나이 마흔이 되고야 알게 되다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억울할 자격은 없다. 일단 내 벗은 몸을 누군가 앞에 내놓는 것이 문득문득 꺼림칙했고 타인의 벗은 몸을 보는 것도 그다지 편치 않았다. 아마도 나 말고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을 내 몸, 불러오는 두 가슴도 넓어지는 허벅지와 엉덩이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절. 완연한 이차 성징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내 몸이 낯설고 부끄러워 목욕탕과 담을 쌓기 시작했더랬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갔던 기억은 중학생 때 머물러있으니, 못해도 이십오 년 만의 대중탕 방문이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이야. 일상에서 벗어나 책이나 실컷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오일 간의 단식원 생활은 내게 예상치 못했던 많은 걸 선사했지만 그중에서도 대중탕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내게 사우나 사용법을 제대로 알려준 건 20대의 어여쁜 단식원 선배.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늘씬한 사람이 어쩌다 단식원에 들어왔는지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의 수줍은 듯 친근하고 꼼꼼한 가르침을 받으며 역시 나이 들었다고 다 인생 선배가 아니란 것을 체감했다. 경험해야 한다. 인생이란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것이었다(!). 예쁜 선배에게 전수받은 사우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목욕탕 사용자의 기본 매너는 온몸 샤워로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탕과 사우나를 사용하기 앞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한 샤워로 외부 오염물질을 씻어낸다. 그리고 너무 뜨겁지 않은 온탕에서 15분 정도 몸을 불리며 근육을 이완시킨다. 다음은 사우나. 취향에 따라 건식 또는 습식 사우나실을 선택하고 몸의 상태를 주시하며 5분에서 15분 정도 머무른다. 어떤 단계든 억지로 오래 머물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이 포인트. 내가 있고 싶은 만큼만, 있을 수 있는 만큼만 머물면 그만이다. 그다음은 냉탕. 단, 냉탕에 들어가기 전 사우나로 온몸을 흠뻑 적신 땀을 따뜻한 물로 헹궈낸다. 이것 또한 중요한 매너. 모두가 공유하는 탕에 내 노폐물을 추가하는 건 아무래도 비매너니까.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냉탕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숨을 참고 머리끝까지 냉탕에 몸을 담갔다 빼기를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반복하는 것. 그리고 다시 온탕으로 향하면 한 사이클이 완성된다. 온탕-사우나-냉탕 이 사이클을 두 세 차례 반복하다 보면 삼십 분,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 있다.
그런데 처음 냉탕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17.5도. ‘잠깐, 체온이 몇 도지?’ 붉은색 디지털 숫자가 깜빡이며 탕의 온도를 알려주고 있지만 얼마나 차가울지 가늠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을 살짝 담가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화들짝 놀란다.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들어가도 될까. 살아 나올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고민은 잠시, 선배의 손에 이끌려 발끝부터 종아리, 허벅지와 허리까지 천천히 입수하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보호하듯 왼쪽 가슴 부위에 두 손을 얹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흡! 하고 숨을 참고 머리끝까지 입수. 온몸이 깨질 듯한 충격도 잠시, 아주 잠깐의 입수 후 수면을 가르고 올라오며 숨을 뱉는 순간 이미 내 몸이 차디찬 냉기에 중독되었음을 느낀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이 온몸을 돌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데 약 25초에서 1분 정도가 걸린다. 심박수와 체격에 따라 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216km 이상에 달하는 속도. 그런데 냉탕 입수의 짧은 순간,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이 온몸을 한 바퀴 돌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평소 혈액 순환 장애로 수족냉증을 달고 사는 건 기본이요, 쉽게 붓고 저린 다리에 불평을 하는 것에도 지친 지 오래인 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개운한 혈액순환의 느낌이라니. 시력마저 좋아진 것 같은 이 느낌은 결코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낼 수 없으리라.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발끝을 밀어 넣었던 이곳에서, 나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온냉 교대욕의 짜릿한 마법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곳은 그냥 물이 아니라 광안리 바닷물을 끌어올린 해수탕이 아닌가. 짭조름하고 미끄덩한 해수가 온몸을 감싸자, 지난 세월 내 몸을 향해 겹겹이 쌓아두었던 편견과 부끄러움마저 때처럼 불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25년간 굳게 닫혀있던 내 몸의 암흑기가 끝나고, 비로소 찬란한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순간. 얼어붙었던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이제야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토록 원초적이고 생생한 육체적 무장해제라니! (단, 이 완벽한 혈액순환의 스릴도 심장이 약한 분들에겐 무리가 될 수 있으니, 시도 전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필수라는 점을 덧붙여 둔다.)
온냉 교대욕의 황홀한 의식을 마치고 한결 가볍고 개운해진 몸으로 나서는 길. 뽀얀 수증기 사이로 또 다른 명작이 나를 흠칫 멈춰 세운다. 처음 사우나실에서 마주했던 여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거부한 큐비즘 명화였다면, 지금 저기 폭포수(물맞이 탕) 아래에 자리 잡은 세 명의 여인은 한 편의 경쾌한 현대미술이다. 쏟아지는 거센 물줄기 아래에서 누군가는 굳건한 기마 자세로 뭉친 어깨를 내어주고, 누군가는 폴더처럼 허리를 반으로 접어 등짝을 스매싱당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배를 정통으로 내맡기고 있다. 각기 다른 기상천외한 자세로 폭포수의 타격을 온몸으로 즐기는 그 무아지경의 조형미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각각의 부피와 모양새를 지닌 몸들이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땀방울을 흘리고 생기를 되찾는 곳. 완전하고 안전한 해방의 공간. 나는 이 생생하고 뜨거운 삶의 갤러리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25년 만에 되찾은 이 짭짤하고 개운한 신세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번엔 저 폭포수 아래 내 등짝도 밀어 넣어봐야지. 그리고 오래 묵었을 때도 한 꺼풀 벗겨내 보리라. 세신, 낯선 여인에게 내 몸을 무방비하게 내맡기고야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