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1)

by 책여사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안경과 함께한 세월만 30년 이상이니 이쯤 되면 안경은 내 신체의 일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테다. 그런 내가 그 중한 것을 아래층에 빼두고, 게다가 벌거벗은 몸으로 낯선 유리문 앞에 서 있다. 묵직한 문을 한쪽으로 밀어 열자, 오- 여기가 방콕인가 싶었다. 온몸의 모공을 단숨에 가득 채우는 이 습도는 우기의 방콕 여행에서 맛봤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습도가 아니다. ‘아… 너무 넓다. 게다가 너무 많잖아?’ 이 많은 벗은 이들 중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동행들을 찾아야 하다니. 망했다.


“언니이- 몇 번이에요?”


조금 전 아래층 탈의실에서 락커키에 적힌 번호를 서로 확인하고 각자의 락커를 찾아 흩어지며 동행 중 어린 친구가 하이톤으로 말했더랬지. 여유롭게 멀어지던 그의 목소리.


“쫌이따 안에서 만나요오-”


아, 막막하다.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입에서는 쩝과 쯧 사이 소리가 연신 새어 나왔다. 어쩌면 목욕탕에 머물 두어 시간 동안 그들을 영 마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반쯤 체념한 채, 점점 눅눅해지는 걸음을 옮겨 목욕탕 안으로 입성했다.


일단 앉자. 어디라도 자리를 잡고 샤워라도 하자. 어서 빨리 이 내키지 않는 목욕 시간을 해치우자. 그나마 사람이 별로 없는 입구 쪽 좌식 샤워장 한 곳에 목욕 용품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방금 지나온 입구에는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베테랑 이용자들의 목욕 바구니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필통만 한 메쉬 소재의 내 목욕 파우치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장부터 기가 죽었지만 익숙한 척 좌식 의자와 작은 바가지를 하나씩 챙겨 와 한바탕 비누칠을 하고 소독하는 느낌으로 뜨거운 물로 헹궈 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엄마와 목욕탕에 갈 때면 엄마가 하던 루틴을 내 손으로 하고 있다니. 열서너 살 이후, 마흔이 되고서야 처음 온 대중탕에서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 젊었던 여자를 떠올리자니 야속한 줄도 모르고 지나버린 세월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억의 조각들이 구시렁거리는 머릿속을 의식하며 샤워 타월에 녹진한 바질향 바디워시를 뿌리고 거품을 내던 나는 흠칫 멈췄다. 57. 오십칠? 거울 왼쪽 귀퉁이에 숫자가 있다. 비누칠을 하던 손이 느려졌다. ‘이 숫자… 뭘 의미하는 거지?’ 혼자 뜨끔해서는 손목에 헐렁하게 걸려있는 빨간 락커 열쇠에 있는 숫자를 확인했다. 108. 전혀 다른 두 숫자가 마음속 번뇌를 가속화시킨다. 설마 사물함 숫자랑 같은 곳에서 씻어야 했던 걸까? 나 어릴 땐 지정석 시스템 따위 없었던 것 같은데. 대중목욕탕이라는, 내 기준에서는 반문명적인 이곳에 언제 이런 체계가 잡혔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가 남의 자리에 잘못 앉은 사람이 돼버릴까 봐 주변 눈치를 슬슬 보았다. 그러다 내 뒤편에서 신나게 때를 밀고 계신 아주머니께 조심스레 물었다.


“혹씨… 죄송한데… 사물함 번호랑 이 번호… 같은 데서 씻어야 되나요?”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모르는 걸 물을 땐 꼭 서울말을 쓴다. 그러면 상대는 ‘아무것도 모르는 서울 사람이 부산 와서 고생하네’ 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흔쾌히 도와준다는 사실을 약삭빠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뽀글거리는 짧은 파마머리를 한 아주머니는 등 뒤에서 들려온 낯선 이의 질문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목을 왼쪽으로 꺾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정적 후 바로 옆에 앉은 다른 아주머니의 맨 등까지 찰싹찰싹 때려가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오호호홓…! 이 아가씨 보쏘~ 엄마야 야야~ 이 아가씨 진짜 우낀다~ 오호호호호홓.”


‘엇… 녜녜… 더 이상 아무 말씀 안 하셔도 알겠어요…’ 아주머니께서 신나게 웃는 잠깐 사이 이미 알아챘다. 두 번호는 아무 상관없다는 걸. 부끄러운 마음에 그대로 돌아서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가씨요~ 이거랑 이거~ 아~무 상관 없따~ 서울에서는 그라는갑찌이~?”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니 제가 목욕탕을 너무 오랜만에 와서… 감사합니다아…”


어서 아주머니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허겁지겁 몸을 헹구고 탕이 있는 중앙으로 향했다. 온탕과 열탕의 차이를 가늠해 보며 어디에 들어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누군가 멀리서 팔을 휘휘 저으며 “언니이~!” 하고 주의를 끈다. 혹시 내가 저 사람이 찾는 언니일까? 그러길 바라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얼굴 식별이 힘들어 섣불리 손을 마주 흔들지 못했다. 혹시 아닐 경우 치러야 할 민망함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일 테니까.


게다가 온통 피부다. 사람의 몸이 피부로 둘러싸여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만난 지 하루 만에 누군가의 몸 전체 피부를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나도 고스란히 벗은 몸이지 않은가. 동행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만나기 싫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양가적 감정은 양자컴퓨터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갈팡질팡 망설이는 사이 그는 분명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서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쯤이 되어서야 그를 알아봤다.


“아까부터 계속 찾고 있었어요~! 밖에선 언니 안경 쓴 것밖에 못 봐서 더 못 알아봤네요. 그나저나 안경 빼고 다녀요~ 훨씬 어려 보이고 예쁜데..!”


생각지 못한 넉살에 당황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그는 고맙게도 기다려 주지 않고 빠르게 다음 말을 이었다.


“저기로 가요, 지향 언니 온탕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저기 저기! 손 흔들고 있네요.”


십수 명이 이미 몸을 담그고 있는 온탕. 나는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멸치 팩이나 육수 코인쯤으로 보인다. 나에게 온탕이란 모두의 육수가 하나의 탕에 우러나는 현장인 것이다. 그 거대한 육수 냄비의 한 모서리에 우리 세 사람도 한 구역을 차지하고 앉았다. 목까지 푹 담그면 탕 아래의 내 몸이 잘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찰랑거리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괄괄한 성격의 지향언니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근데 자기는~ 부산 산다 그랬었나~?”


“네 네-”


“너허~무 좋겠다아~ 단식원 끝나도 여기 올 수 있을 거 아니야~”


“하하.. 그쵸.. 그런데 목욕탕을 그렇게 안 좋아해서…”


“에~?! 왜에~ 얼마나 좋은데~ 나 여기 몇 번 왔더니 블랙헤드가 싹 없어진 거 있지? 여기 봐봐, 그치? 또 여기 오래 다닌 언니들 피부 매끈거리는 거 좀 봐~ 아~ 나는 진짜 너~무 너무 부럽따~!”


신나서 얘기하는데도 내가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하자 언니는 눈을 쓱 흘기며 물었다.


“왜? 부끄러워?”


그리고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찰싹 때리며 말은 잊는 이 사람… 안타깝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물속에서 자전거라도 타듯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말을 잊는다.


“자기야, 다~ 똑같애~ 나도 젊을 때는 그랬어~ 근데 다~ 똑같이 나이 드는 거야~”


생략과 비약을 넘나드는 그의 말에 눈을 맞추고 조금 웃으며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지향언니의 다독임에도 여전히 조금 뚝딱대는 내게 단발머리 소녀가 넉살 좋게 말을 건넨다.


“언니, 지향언니 세신 받는 동안 저랑 사우나 루틴 하실래요? 제가 단식원 실장님한테 제대로 배웠거든요~”


싱그럽게 잘도 웃는 이 사람은 나보다 한참 어린 게 분명한데 그 여유로움만큼은 대선배급이다. 그런데 내가 그를 20대로 생각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습다. 그녀가 알게 되면 기분이 나쁠까? 좋을까? 그러려니 하면 좋겠다. 사실 그녀는 우리 셋 중 단연 쇄골과 유두 사이 거리가 가까웠다. 가슴이 중력의 영향을 덜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슴이 가볍게 탱탱하다는 말씀. 나는 내 머릿속 제삼자의 눈을 불러 내 가슴을 바라본다. ‘하~ 내 가슴도 언젠가 저랬던가..?’


이 어리고 예쁜 사람에게 덥석 손이 잡힌 채 사우나와 냉탕 온탕을 오가는 동안 반 걸음쯤 앞서던 그의 뒷모습에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새까만 단발머리, 군살 없이 잘록한 허리. ‘저 허리는 원래 저랬을까, 아니면 단식원에서 만들어진 걸까.


온냉탕을 오가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자, 빳빳하게 굳어있던 내 어깨도 서서히 아래로 녹아내렸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제야 고개를 돌려 목욕탕 안을 찬찬히 눈에 담아본다. 정말이지 다 똑같다. 누구 하나 똑같은 몸이 없다는 점에서. 하나같이 다른 몸들이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깊은 주름이 보이는 몸, 빵빵할 만큼 둥그런 곡선으로 무장한 몸, 뼈대가 굵고 어깨가 단단해 보이는 몸. 튀어나온 뱃살이나 처진 가슴을 가리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뜨거운 물에 뭉친 근육을 풀고, 시원하게 때를 밀며 각자의 시간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 완벽한 무심함 속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어린 시절 거울 앞에서 내 결점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켜던 지난날의 내가 조금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노곤하게 풀려가며 이 평화로운 탕 속의 육수 코인 1로 완벽히 동화되어 가던 찰나, 저 멀리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8번~! 108번~ 세시인!!”


순간, 풀렸던 긴장이 다시 척추를 타고 찌릿하게 올라왔다. 온탕에서의 스몰토크로 쌓은 얄팍한 전우애와 다채로운 몸들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곧 모르는 이의 손에 무방비하게 내맡겨질 내 몸뚱아리가 벌써 안쓰러웠다. 나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수확자> 시리즈 마지막 권 <종소리> 꼭지 제목에서 가져옴.



작가의 이전글벌거벗은 광안리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