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
목욕탕을 쩌렁쩌렁 울리는 호출에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온탕에서 기껏 데워놓은 얄팍한 평온함이 물 밖으로 솟구치는 내 몸을 타고 물방울처럼 흩어졌다. 참수형이라도 기다리던 죄수처럼 두려움을 감추려 애쓰며 한 발짝 한 발짝 번호를 호명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은밀하게 쳐진 반투명의 연핑크 샤워커튼을 걷자 물 빛을 반사시키며 반짝이는 비닐이 씌워진 4개의 침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갖가지 목욕용품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고 1인 1 침대를 거느리고 있는 세신사 아주머니들을 보자 이거 꽤나 본격적이다 싶었다. 게다가 위아래 검은색으로 맞춰진 그분들의 속옷이 유니폼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를 신뢰감이 피어올라 조금은 다행이다 싶었다. 제일 안쪽 침대 머리맡에 선 세신사 아주머니께서 핑크색 때타월을 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흔들며 이리 오라는 듯 나를 맞아주셨다. 오… 블랙 핑크..!?
두 개의 침대 위에는 이미 두 사람의 몸이 뉘어져 때밀이 당하고 있었고 비어있는 침대 하나 위로는 막 세신이 끝났는지 점점이 흩어진 누군가의 검은 허물들이 즐비했다.
"이리, 천장 보고 누우이쏘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축축한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누인 몸 위로 촤악- 미지근 뜨뜻한 물이 한 바가지 뿌려지고, 철퍼덕- 무겁게 물기 머금은 수건 한 장이 내 가슴부터 음부까지를 덮어주었다. 촵촵촵- 뭔가 빠르게 섞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얼굴 위로 차가운 오이 팩이 흥건하게 올라왔다. 싱그러운 향이 긴장을 좀 더 풀어준다 생각하는 순간, 발가락과 발등이 덥석 잡혔다. 발등과 발목 사이를 싸악 싸악 오르내리는 손길에 나는 한껏 쫄아들 수 밖에 없었다.
“아파요오~?”
때타월이 피부에 마찰되는 감각은 아픔과 시원함 사이, 묘한 경계에 있었다. 얼굴에 올려져 있는 오이 팩이 떨어질까봐 차마 입은 못 열고 손목을 살짝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오케이 사인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이윽고 까슬한 이태리타월이 온몸을 타고 거침없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채 낯선 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민망했다. 내 몸의 모든 관절부가, 어쩌면 온몸이 가랑이가 되버린 느낌이랄까.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겨드랑이는 물론 무릎 뒤 오금과 발가락 하나하나를 스치는 손길에 문득문득 수치가 깃들었다. 거울 앞에서 흡- 하고 들숨을 쉬며 배를 집어넣고 무릎을 굽혀 올리며 넓은 허벅지의 절반을 도려내는 상상을 하던 내가 아무런 보호구 없이 도마 위 한 마리 생선이 되어 껍질 벗겨질 상황에 올라있다니. 왠지 비현실적인 현실에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베테랑의 노련한 손길 앞에서는 그 어떤 자의식도 무용지물이었다. 익숙한 손길로 무릎을 세워 올리고, 발목을 꺾어 내 발바닥을 자신의 가슴팍에 대고 집중해 때를 밀고있는 사람, 엉덩이를 찰찰 때리며 "뒤집으쏘-", "팔은 요래 짝- 뻗고"하고 툭툭 던져지는 투박한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몸은 그저 하나의 수동적인 물성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철저히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 이리저리 뒤집히는 사이,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세신사 아주머니께 내 몸은 그저 씻고 닦아내야 할 하나의 수많은 몸 중 하나일 뿐이지 않겠는가.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타인의 노동에 몸을 맡긴 세신 침대 위에서, 나는 오랫동안 외면했던 몸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 다 됐으예."
설마 나… 잠들었던 거야? 혼곤함을 떨쳐내려 도리질을 치며 나른해진 몸을 일으켰다. 세신사 아주머니의 경쾌한 등짝 스매싱과 함께 거의 떠밀리듯 침대에서 내려와 눈을 비비며 인사를 하고 곧장 샤워부스로 향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물로 온몸을 다시 한번 헹궈내니 껍데기를 한 겹 벗어던진 온몸은 전에 없이 가뿐했다. ‘아… 감사합니다 인사 제대로 하고 올 걸!’ 지금 내 기분을 세신사 아주머니는 아실까? 다음번 세신때는 눈을 맞추고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인사 하리라 다짐하며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다시 온탕으로 향했다.
"언니… 거의 녹아서 돌아왔네요! 엄청 좋았나보다!"
다시 마주 앉은 탕 속에서 우리는 한결 더 편하게 시시콜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묘하게 여유롭고 당당하던 그녀의 태도, 유독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곧게 떨어지는 몸 선의 비밀이 곧 밝혀졌다. 오후에는 발레를 배우러 간다기에 요즘 유행하는 취미를 섭렵하는 힙쟁이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뮤지컬 전공자였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그녀의 몸은 단지 젊어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뿜어내기 위해 매일같이 단련하고 있는 하나의 악기였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무대 위로 옮겨갔다. 마침 내가 최근 보았던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반짝였다. 어제 단식원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뜨거운 탕 속에 마주 앉아 뮤지컬 이야기를 하게될 줄이야.
"아니, 언니도 그거 봤어요? 저 그거 보고 완전 울었잖아요!!"
"저 진짜 그 원작 소설 읽으면서도 울었는데, 무대 보면서는 아주 오열을 했다니까요!"
누가 더 많이 울었나 베틀이라도 하듯 격정에 휩싸여 이야기는 이어졌고 서로의 번들거리는 눈알안에서 뮤지컬 관람 현장이 재현되는 듯 했다.
<한복 입은 남자>는 세종대왕 가마 사건의 이면을 다룬 미스터리 역사 소설이다. 세종대왕의 가마가 부서진 사건 이후, 역사 속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천재 과학자 장영실. 소설은 그가 사실 죽거나 버려진 게 아니라 세종의 도움으로 머나먼 서양으로 건너갔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 르네상스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조선의 천재가 서양 문명의 중심에 섰다’는 벅찬 설정에, 부록에 실린 다빈치와 장영실의 스케치, 그리고 거장 루벤스의 실제 그림 속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한복 입은 조선인 등 절묘한 역사적 사료들이 더해져 픽션에 묵직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동서양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대한 서사를 따라 읽는동안 얼마나 숨가빴던지.
뮤지컬을 보러 가던 날, 은근한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원작 소설의 섬세하고 복잡한 디테일과 방대한 서사를 세시간 남짓한 무대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게다가 내 옆엔 책의 첫 장도 들춰보지 않은 남편이 있었고, 우리 자리는 배우들의 표정은커녕 이목구비도 겨우 보이는 2층 중앙석이었다. 그런데 막이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우려는 말끔히 증발했다. 극이 진행되는 중 나는 물론 여간해서 눈물 보이지 않는 남편까지 나란히 훌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겨울 늦은 밤이었는데도 극장을 빠져나올 땐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워진 몸을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텍스트를 읽을 때의 감동이 활자와 상상력 사이를 조밀하게 채워가는 과정이라면,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했다. 상상으로만 그렸던 배경이 무대 위 현실로 재현되어 있었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는 멀리 앉은 나에게까지 날아와 그대로 꽂혔다. 이 감동을 함께 나누고 있는 다른 관객들의 뜨거운 호흡까지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전이되는 듯했다. 날것의 감정이 내 피부에 직접 와서 꽂히는 듯한 압도적인 타격감은 정말이지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텍스트에 갇혀있던 인물들이 온전한 육체를 입고 펄떡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다니. 이런 새로움이라니!
"배우들 에너지 진짜 장난 아니죠. 그 넓은 무대를 몸으로, 목소리로 막 다 채우잖아요!!"
상기된 얼굴로 조잘거리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뽀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활자가 육체를 입고 뿜어내는 그 압도적인 에너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꼭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마법이 아니었다. 나는 뮤지컬 배우는 아니지만, 활자가 현실의 내 몸을 살려내는 기적을 줄곧 경험하고 있으니까.
사춘기 시절, 둥글게 변해가는 선도 제멋대로 부풀었다 꺼지는 마음도 내게는 그저 버겁기만 했던 나였다. 틈만 나면 거울 앞에 서서 결점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켰고, 어떻게든 그것을 가리려 부단히도 애썼다. 그 시절의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결말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결코 가질 수 없는 타인의 몸을 갖는 것이었다. 그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 앞에 나의 하루는 늘 낙담으로 끝이 났다.
서사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20대 후반 느지막이 읽기 시작한 수많은 책들이었다. 활자 속 타인의 서사에 기대어 지내는 동안 내면의 방은 조금씩 밝아졌고, 나를 찌르기만 하던 뾰족한 시선도 꽤나 부드러워졌다. 누군가 써 놓은 단단한 문장들이 무너진 내 안에 새로운 기둥이 되어주었고, 껍데기를 비춰보기에 급급했던 불안한 마음도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활자가 내 몸을 바로 보는 눈을 길러준 덕분일까. 오늘 세신 침대 위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나를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배에 힘을 주거나 움츠러들었을 그 적나라한 순간에도, 나는 그저 한 마리 편안한 생선이 되어 전문가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묵은 각질과 함께 씻겨 내려간 것은 어쩌면 내 몸을 미워하던 오랜 관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어휴, 슬슬 나갈까요? 더 있으면 어지럽겠어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탕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몸이 마치 새것처럼 가벼웠다. 탈의실로 나가면 비어있는 벽면 곳곳을 가득 채운 커다란 전신 거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울 속 벗은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며 젖은 머리를 탈탈 털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