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1 읽고 쓰기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이어서 읽었다. 다음은 오늘 읽은 부분 중 적어두었던 글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모든 나쁜 일들이란 그 안에 존재하는 좋은 일, 그리고 그런 일들에 수반되는 더 나쁜 일들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거야.〉 (94쪽)
늘 우리에게 뭔가 위안을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침, 그리고 행운과 불운 양쪽을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은 회계 장부가 있다면 가급적 행운을 기록한 대변 쪽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지침 말이다. (99쪽)
세상만사를 두 갈래로 나누는 것은 꽤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옳다, 그르다처럼 딱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밝다, 어둡다처럼 연속적이어서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회계를 공부하며 차변과 대변처럼 모든 것이 명확하게 이분법으로 구분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는데, 그러면 인생이 정말 재미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에서는 차변과 대변 양변이 맞아떨어져 0이 되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배운다. 만약 양변이 맞지 않는다면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 행운과 불운의 합이 0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회계 장부에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끔찍한 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에서 ‘행운과 불운 양쪽을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은 회계 장부가 있다면 가급적 행운을 기록한 대변 쪽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가끔 불운과 불행에 너무 마음을 쏟은 나머지 그 우울의 우물 안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우리에게 찾아오는 행운과 불운을 우리가 미리 알고 환영하거나, 피할 수는 없다.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기록해두었던 글귀 중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을 지닌 ‘베아티투도’라는 말과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밀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겠지만, 언제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운을 기록한 대변 쪽에 마음을 기울이고, 오늘의 행복과 행운에 감사하고 집중하는 편이 훨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믿는다.
항상 모든 변수를 고려하며 살면 좋겠지만, 또 그렇게 살면 얼마나 삶이 고단할까. 나는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내일의 불운과 불행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의 행복에 좀 더 마음을 기울이고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